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 May 19. 2023

나와의 약속

 회사에 들어왔을 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복지''는 교육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많은 교육 중에도 '외국어' 교육이 가장 좋았다. 

 입사하자마자는, 영어회화 점수 획득을 위해 회사에서는 많은 돈을 들여 영어 회화 커리큘럼을 만들었었고, 그 결과 나는 열심히 스크립트를 외우고 시험에 응시하길 여러 번 반복했었다. 사원 선임 때에는 한창 중국 사업에 다들 적극적이라 회사에서 중국어 회화 교육을 권장했었고, 그 결과로 실제 중국어 회화 자격도 잠시나마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에도 다른 공부들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영어단어 외우고, 옳고 그른 문법 맞추기 문제가 나는 왜 그렇게 재미가 있었나 모르겠다. 여하튼, 다른 과목들은 몰라도 외국어 공부 하나만큼은 좋아했던 거 같다.


"아빠는, 공부 안 하고 왜 우리만 시켜?"

우리 둘째가 맨날 나한테 일요일만되면 하던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던 말'이라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깨달았다. 내가 평소에 하고 다니던 말 중에 무의식 중에 가장 쉽게 뱉던 말이 '나는 원래 공부 안 좋아하니까'라는 말이었다.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그랬을까?'라고 언젠가 스스로 반문해 보던 때가 있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다. 시험을 잘 보고 못 보고를 떠나 나는 열심히 하던 학생이었다. 적어도 주어진 환경에서는 최선을 다하던 사람이었던 거 같다. 공부가 싫지는 않았다. 잘 안 돼서 짜증이 났을 뿐, 남들보다 책 읽는 것도 좋아했고, 오래 앉아서 긴 지문들도 열심히 읽어가며 공부를 잘하고 싶어 했던 학생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언행 불일치'를 가장 먼저 해소하고자 내가 선택했던 것이 예전에 기고했던 '일본어 학습지 공부'였었다. 기지개 (brunch.co.kr) 

 이전 글을 찾다 보니, 제목과 내가 썼던 내용이 잘 싱크 되지 않아 스크롤을 내리면서도 한참 찾았다. 무려 올해 1월 말일 올라왔던 글이었다. 

 


 올해 2월부터, 나는 매주 일요일마다 우리 아이들과 식탁에 모여 앉아 각자 해야 하는 공부를 함께 하기 시작했다. 식탁이 크지는 않아서, 서로의 책을 절반씩 나누어 공간을 양보하며 공부를 했는데, 큰애는 영어과외 때 해가야 할 숙제를 주로 했고, 작은애는 미취학이었어서 서점에 가 영단어 따라 쓰기 책을 하나 사 와서 그걸 같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내가 이렇게 일본간체자를 쓰면서, 계속 주저리주저리 외우고 하는걸보더니 자기네도 눈치껏 열심히 그 시간은 공부하더라. 물론 엄청 싫어하면서 말이다. 


"아빠는, 왜 일본어 공부를 해?"

"응, 아빠는 일본 여행을 가는 게 그렇게 좋아. 일본어 잘해서 많이 여행 다니려고"

"우리도 9월에 일본 가지?"

"그럼~ 그때 장모님하고 우리 가족들 다 함께 가니까, 아빠만 믿으라고~!"


 아빠와 같은 식탁에 앉아 공부를 한 영향일까? 우리 큰애가 그 이후로, 스스로 학교 앞에 있는 '한자 교습소'에 가서 한자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 지금도 다니고 있고 생각보다 흥미 있게 잘해 나가는 거 같다. 둘째도 동사무소에 한자 무료 강의가 있어 야무지게 등록해 두고 다니게 했는데... 얘는 그다지 재미없어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도, 둘째는 학교에서 나온 숙제를 혼자 야무지게 잘하더라. 많이 뿌듯했다. 나와의 공부가 조금이나마 아이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쳤으리라 스스로 기뻐하면서 말이다.


"와... 프로님, 일본어도 공부해요?"

"네, 저 올해부터 '밀도' 높게 살기로 했어요, 그간 너무 편하게 산거 같아요"

"지금 여기서 밀도를 더 올리면 어떻게 사시려고요...ㅎ"


 주말에 일본어 학습지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학습지 완료까지 속도가 나지 않아, 주중에 회사에서 짬날 때 단원을 마쳐나가는 내 모습을 보더니, 옆에서 일하는 동료가 살살하랜다. 근데, 진짜 이번 건 재밌어서 스스로 한 거라 그런가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았다. 물론... 학습지 말미에 갈수록 내가 아예 모르는 문법들이 계속 나와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일단 어떻게든 이번 학습지는 다 이겨 내고 싶었다. 


 그렇게 첫 학습지를 받고 오늘 드디어 48개의 단원으로 이루어진 전체 커리큘럼을 모두 훑었다. 사실 내용이 방대하여 지금 공부한 것 만으로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동사의 활용이나 어미의 변화등에 있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일단 한 바퀴는 다 돌았다. 정말 많이 쓰고 많이 외웠고, 이제 단어도 어느 정도는 눈에 들어오고, 일본 간체자로도 조금씩 쓸 수 있게 되어가는 거 같다.


 한 발짝 더 나아가 9월 1일, JLPT N4급 시험도 응시했다. 누군가는 쉬운 시험이라고 이야기들을 하지만, 나에게는 꽤 큰 올해의 Mission이 될 거 같다. 이번 학습지를 우선 뗀 자신감으로, 이제는 N4급 시험 준비를 위해 기출문제등이 포함된 문제지로 핵심 공부를 시험 보기 전까지 이어나갈 생각이다.


 중국어를 공부할 때는 그렇게 중국에 가고 싶더니, 일본어를 공부하면서는 일본에 더 가고 싶은 거 같다. 며칠 전 서울역에 카메라를 들고 농땡이를 부리며 사진 찍으러 갔던 적이 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에 타서 어디 가야 할지 몰라하길래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도움을 줬던 일이 있다. 정말 뿌듯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일단 지켰다. 비록 그 안에서 공부의 결과에 대해선 타협이 있었겠지만, 과정에 대해선 꽤 진지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건 올해 9월 N4급 시험응시 Mission이 남았다. 내가 7살 때, 아버지가 술에 취해 집에 오셔서 나에게 쥐어준 옥돌의 글귀처럼,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만족"할 생각으로 임해보려고 한다.


 "종화야, 나 약속 지켰다. 바로 너한테 말이다. 네가 해낸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정말 초대받았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