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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Aug 09. 2023

언제나 헤어짐이 있는 법

인사도 못 드린 게 아쉽다.

 우리는 생각보다 꽤 큰 '관성'을 가진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어렸을 적부터 해오던 책상정리 방법, 처음 중학생 때 만든 이메일주소와 그 당시 집전화번호 기반의 비밀번호들 (물론 이런 것들은 이제 작별해야 한다... 세상이 험해져서 해킹의 우려가 있다.) 

 샤워를 할 때 몸을 씻는 순서라던지, 스스로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을 지닌 채 우리는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성 및 습관은 마치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언제나 우리 주변에 그대로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거창하게 소개글을 올렸지만, 오늘은 그냥 별거 아닌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글로써 나의 감정을 기록해 볼까 한다.

    


 중학교 때, 여자애한테 인기가 많은 남자애가 하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머리숱'때문에 인기가 많았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그때 그 친구는 머리숱도 많았는데, 머리가 거의 '난초'(?) 수준으로 힘이 좋아서, 젤을 바르고 스타일링하면 그대로 먹는 참 훌륭한 머리 자원을 가진 친구였었다. 


 어린 마음에, 나도 따라 해 보겠다며 젤을 바르고 거울 앞에서 30분 동안 이것저것 쇼를 해봤는데, 내 머리칼은 힘이 그때도 없어서 이리저리 축축 들러붙어 볼품 사납게 되곤 하였다. 그땐 너무 어려 나이를 조금 더 먹은 대학생쯤 되면 더 머리칼이 힘이 있어질라나.. 싶었었다.


 대학생이 되어, 두발 자유화의 시기를 맞게 된 이후, 나는 처음으로 파마라는 걸 해보게 되었다. 사실해 볼 생각은 없었는데, 그냥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그 당시 아르바이트로 벌었던 거금 '6만 원'을 가지고 친구 들손을 꼭 붙잡고 미용실에 들어가 펌을 받았었던 기억이 난다. 역시 머리칼에 힘이 별로 없어 볼륨감이 좋지 않아 그다지 예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군에 입대했건만, 정말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아도, '내색할 수 없는' 소대장으로서 참고 또 참느라, 가뜩이나 힘없는 두피는 더욱더 안 좋아지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이발소나 미용실 가는 거 자체가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라면 십분 공감할 수도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부모님 댁에서, 결혼을 하며 출가를 했고, 성남 구시가지, 신시가지를 거쳐 현재 거주하고 있는 서울 암사동으로 오게 되었다. 일단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나의 꽤 큰 스트레스는 '미용실 선정'이었는데, 어차피 나는 결혼도해서, 선이나 소개팅을 받을 것도 아니고, 머리칼도 힘이별로 없어 스타일 내기도 어려우니, 그냥 옆뒤만 깔끔히 잘 잘라주면 되는데, 그런 미용실 찾는 것도 생각보다 드물었다. 

 

 이번달은 여기, 저번달은 갔던 곳에서 옆옆집, 이런 식으로 '미용실 투어'를 다니며 정착을 하게 되었고, 아쉽지만 정착할만하면 다시 이사를 가느라 새로운 곳에서 또 탐색을 해야 했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온 게 2016년 10월이니, 나도 꽤 오래 이곳에서 살았나 보다. 다행히 이사 오고 처음으로 투어를 갔던 미용실 원장님이 오늘 에세이의 주인공이시다. 


 처음 미용실을 고르려고 기웃기웃거리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선 인기 많은 미용실은 패스, 왜냐면 웨이팅이 길어져서 내 맘에 안 들더라. 조금 덜 붐비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몇 군데 둘러보보며 걷다가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 단지 상가 앞에 있던 '한적한' 미용실에 들어가 커트를 하게 되었다.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그냥 깔끔하게 잘라주세요"


 항상 나는 저렇게 이야기한다. 옆 뒷머리가 조금 더 빨리 자라다 보니, 구레나룻이 지저분해지기 전에 미용실에 가서 커트를 하는 목적이라, 남들처럼 디테일하게 주문하지 않는다. 


 다행히 이 원장님께서 너무 '모나지' 않게 잘 잘라주셨고, 내 두피나 머리칼 상태를 '품평'해 주시지 않아 아주 만족해하며 미용실 투어를 마칠 수가 있었다.


 한 달 두 달 세 달.. 그렇게 월마다 해당 미용실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나만의 '대나무 숲'을 만들 수가 있었다. 회사에서 겪었던 안 좋은 일들, 친구사이의 쩨쩨했던 일들 등, 남들에게 이야기하기 곤란한 것들을 커트하는 동안 편하게 털어놓을 수가 있었고, 원장선생님도 아주 잘 공감해 주셔서 동네 친구를 새로 사귄 느낌이었다.


 원장선생님 또한 나에게 부분적으로 '대나무숲'을 만드셔서, 진상고객이라던가, 본인의 가정사에 대해서도 털어놓으실 때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머리 자르러 가는 게 이젠 부담이 되거나 하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냥 머리 자를 때 되면 해당 미용실을 가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달에도 어김없이, 커트를 하러 미용실을 차지.. 나갔는데, 뭔가 못 보던 간판이 놓여있고, '신장개업'을 축하하는 난들이 문 앞에 놓여 있었다. 투명 창문 틈으로 슬쩍 원장선생님이 있나 살펴봤는데, 안 계신 모양이었다. 아마 일전에 이야기하신 가정사로, 사업을 접으신 모양이었다.


 개인적으로, 저번달 커트를 하러 갔을 때 본인의 사정을 알려주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햇수로 따지면 8년째 단골손님이었는데... 그간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있다 없으니까' 머리 커트를 할 시기가 되어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나에게도 해당 미용실 원장선생님은 '관성과 습관'이었나 보다. 그냥 앉아서 안경만 벗어 두면, 알아서 커트해 주시던 선생님이셨는데, 이제는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가서 이것저것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뭐, 다시 또 적응하여 문제없이 나만의 미용실을 찾아가겠지만, 그래도 인사도 못 드리고 이렇게 연이 끊어진 것이 아쉬운 마음으로 남아 있다.


 원장선생님께서 항상 건강하시고, 어머님도 같이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다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그간 수다쟁이 남자(?)의 이것저것 하소연도 잘 맞장구쳐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짧게나마 이렇게 글로서 표현해 보고자 한다.


"그간 제 머리 커트해 주셔 감사했어요, 원장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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