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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Sep 01. 2023

하나 둘 사라져 간다

"그거 들었어요?"

"어떤 거요?"

"어제 날짜로 희망퇴직 하신 분들이 100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그중에는 전 수석님도 있고요"

"제가 아는 전 OO수석님이 맞나요? 맞네... 임직원 검색해도 나오질 않네..."

(인사도 못 드렸는데)


 회사는 항상 '성장'을 도모해야만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성을 보여줄 때에만, 가치를 인정받고, 그 가치에 따라 새로운 사업의 기회와 신규 채용의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내가 입사할 즈음인 약 15년 전, 스마트폰의 황금기가 도래할 때 많은 인력을 뽑았었다.


"빛담씨, 개발 잘해요?"

"어...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잘할 수 있습니다."

"괜찮아, 들어와서 배우면 돼"


 실제 기술면접 간 나와 면접관이 주고받은 내용이었다.

지금 같으면 저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대부분의 IT회사에서는 "코딩 시험"을 통해, '될 놈'보다 '된 놈'을 뽑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나를 비롯한 선배들이, 아웃풋을 못 보여줬기에, 이러한 현상이 보편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하튼, 내가 입사할 때, 많은 신입사원들이 푸른 꿈을 안고 여기저기 꽤나 수월하게 입사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물론, 그 당시에도 취직은 어려웠으나, 솔직히 지금 세대보다는 좀 쉽게 입사할 수 있었던 세대라고 나는 이야기 하고 다닌다.


 이렇게 그 당시 한 번에 많은 인력을 뽑아 정규직으로 채용을 하여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던 회사도, 몇 년 지나지 않아 기업의 주력 캐시카우인 스마트폰의 성장세는 꺾였고, 신입사원의 채용규모는 000명에서 00명, 그리고 그 이후는 집계하기도 곤란할 정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한 결과로 인해 내가 있는 부서의 막내는 바로 입사 12년 차인 '내'가 되었다.


 12년 전, 푸른 꿈을 가슴에 품고 회사에 나와 긴장하고 쭈뼛거리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 당시 오늘의 주인공 전수석 님은 매니저 역할을 하고 계셨고, 나는 그분과 직접 일은 하지 못했지만 옆 프로젝트에서 함께 봐오며 농담정도는 주고받을 사이가 되어 갔었다.


 회사의 성장이 멈춘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회사 내 구성원들의 기회에도 제한을 받기 마련이다. 

많은 주니어급의 인재들이 있었지만, 그를 이끌어가던 과장이상의 간부급들은, 줄어든 성장세에 대한 피해를 직격탄으로 맞은 세대가 되었다. 그들은 본인이 매니징하던 Territory들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원래 그들보다 더 높은 직위에 있던 부장급들이 그 영토를 통합하여 관리하게 되면서, 현업에서 손을 놓고 매니징만 전념하던 관리자들은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들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전수석 님을 비롯하여, 많은 시니어급 인재들은,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기껏 해봐야 마흔 중반에서 마흔 후반. 이제 아이들은 학창 시절을 거쳐 정말 빠른 사람은 대학 초년생정도 일려나..? 이런 상황에서, 본인들의 영토를 빼앗긴 관리자들은, 점차 시니어 급으로 연차가 쌓여가는 후배들과,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부장급 사이에서 그야말로 샌드위치가 되어 눈칫밥을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쩌다 매니징의 기회를 얻어 팀빌딩을 하려고 해도, 요새 젊은 친구들은 "실행 가능한 리더"를 선호하지, 올드패션드 한 "관리형 리더"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거 같다. 본인은 할 줄도 모르면서, 남만 시키기 바쁜 사람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깔고 있기 때문이었다.


 점차 기회를 잃어가던 시니어급 인재는, 2023년, 이제 50을 갓 넘긴 중년의 나이가 되어갔다.


 내가 젊음을 바쳐 일한 회사에서,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는 느낌을 어떤 느낌일까?

마치 나의 모든 시절이 부정당한 느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챙겨주는 특별 보너스야 뭐 정신 차리고 계산기 두드리는 시점에서야 의미가 있지, 인사과에서 나왔다는 멋진 옷을 입은 후배 녀석이, 이제는 초라해진, 왕년에 잘 나가던 기억을 갖고 있는 나에게 <나가달라>고 이야기를 할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이것도 예행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누구나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 즉 운이 좋아 좋은 기업에 취업했어도, 그 회사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누구나 그곳을 나올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아마 언제나 느끼기에, <준비가 안됐다>라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애들 대학만 보내고 나갈 거야"

"애들 결혼만 시키고 나갈 거야"

"노후자금 조금만 더 만들고 나갈 거야"


등등, 우리는 그 순간이 오면, 이런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나가라고 하는 거대하 조직 앞에서, 명분 쌓기에 분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활동은 아주 당연한 자기 방어권인 것이고. 언제나 회사는 개개인의 사연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전수석 님, 어 오랜만이에요"

"빛담, 별일 없어? 회사일 재밌어?"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수석 님이 그냥 의례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재미없죠... 언제까지 회사 다녀야 할지 막막하네요"

"그래도, 그때가 좋은 거야, 빛담 너는 뜨는 해자나. 아직 많이 남았다고. 나는 지는 해고"

"저는 지금이 고점일지도 모르죠, 앞으로 내려갈 일만 남았을지도..."


 동료와 커피를 받으러 커피 전문점에 갔는데, 전수석 님과 알고 지내던 고객사 직원과 커피를 주문하는 걸 목격하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애늙은이> 말투로 친근함을 표시한 나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동안, 회사에서 보여주신 열정, 존경하고, 감사했습니다> 라며, 90도 폴드인사를 드릴걸 그랬다. 나는 그때가 전수석 님과 끝인 줄 몰랐던 것이었다.



 전수석 님에 대해 남들은 꼰대라고, 혹은 능력 없는 관리자라고 혹평하는 이들도 많았다.

나는 나에겐 잘 대해주셨던 좋은 선배로 기억에 남아있다. 물론, 그와 일을 안 해서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본인이 그 사람을 겪으면 본인의 기준이 된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많은 선배들 그리고 동료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떠날 것이다. 그중에는 <나>도 물론 머지않은 시점에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동료의 시간을 아껴주는 일을 하고자 한다.

그게, 돈을 주는 고객사는 물론이고, 함께 일하는 협력사에도 나의 원칙은 함께 공유된다. 내가 일하고 있을 때, 많은 분들에게 나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실 수 있도록. 내가 회사를 떠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아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빛담과 일할 때가 참 좋았어"  


점차, 빛을 받는 자리는 줄어만 간다. 그러다보면, 나가야 할 사람이 <내>가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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