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같은 일인데
한 달 전의 일이다. 내가 속해있는 부서의 장이, 사내 메신저 방에서 부서 내 인력을 소싱한다는 공고를 전 그룹원에게 알렸다.
반응은 좋지 않았다. 다들 회사생활 짬밥이 얼만데, 안 가려고 하는 프로젝트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아휴, 거기는 본사가 아니라, 헬스장도 이용 못하잖아요"
"거기는 사내식당도 없어서 밥값도 비싸고"
"사람 갈아 넣는 곳이라면서요..? 주말에도 계속 나와야 하고"
가고 싶은 곳이라면 아무리 안 좋은 조건들이 많아도 내 맘에 드는 '단 하나의 장점이 있다' 면 용기를 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정말 무한히 많은 단점을 발견하여 그것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크게 다른 사람들과 틀리다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겐 올해는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매너리즘이 상당히 강한 해다. 내가 맡은 과제가 3년이 되기도 했고, 어느 정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자리도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럴 때가 가장 위기라고 생각하 곤했기 때문에, 다른 프로젝트의 사정도 항상 안테나를 켜고 리슨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나 또한 부서장이 모두에게 제안한 그 프로젝트가, 내가 '가고 싶었던' 프로젝트는 분명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장점 이외에는, 모든 것들이 다 단점으로 느껴져 선뜻 손을 들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정말 주말에 항상 일이 있을 정도로 현재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는데, 내가 <굳이> 지금 손을 들고 불기둥으로 뛰어들 것인가. 나는 그러한 <용기>와 <에너지>가 있는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새로운 프로젝트에 선뜻 손을 들진 못했지만, 나 스스로는 고객사 대응 및 분석 설계 및 개발관리 업무에 더해, 직접 화면개발도 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많이 갖고 본인의 개발 실력에 대해 다시 한번 냉정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모든 걸 병행하며 가다 보니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였고, 그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는, 현재는 <마라톤> 이라는 목표를 설정할 정도로 푹 빠져 운동을 하게 되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직접 모든 것을 분석 설계 및 개발을 하며 느낀 점은 <역시 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었다. 부족한 점도 물론 있지만, 어느 부분을 역시 잘하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가 아주 명확하게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었다.
며칠 전, 부서장은 똑같은 과제에 대해, <차출>이 아닌 <품앗이>의 개념으로 모든 그룹원에게 협조를 요청하기 이르렀다.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파견 아님. 강요 안 함. <포기해도 됨>. 할 수 있는 만큼 해내는 구조. 부서원들의 많은 협조 부탁합니다.'
신기했다. 분명, 해당 과제에서 수행하는 일은 똑같은데, 부서원들의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나 보다.
왜냐면 나부터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나는 동료 및 부서 형들과 이야기한 끝에, 부서장에게 해당일에 대해 <자원> 하겠다고 신청했다.
놀라운 사실이 무엇인 줄 아는가? 이번에는 자원한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자원하게 된 결정적인 멘트는 바로 <포기해도 됨>이라는 멘트였다. 이 부분에서 정말 부서장의 탁월한 워딩 선택이 빛을 발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도전이 두렵다. 내가 생각하는 <도전>에 대한 Pain Point로는 도전 자체가 두려울 수도 있지만, 현재의 상태를 두고, 본인의 선택으로 인하여 미래에 후회를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본전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회사원은 회사원이다. 아무리 평가를 기반으로 연봉이 올라가고, 덜 올라간다 하더라도, 밖에 나가 프리랜서 혹은 본인의 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남들과 연봉이나 처우등을 비교할 때 <거기서 거기>다.
새로운 도전을 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지금 붙어 있는 과제에서, 마음 맞는 한두 명과 술 한잔 기울이며 편하게 회사생활하는 것도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본적인 회사원 마인드로는, 스스로 <불구덩이> 같은 프로젝트에, 평가 조금 잘 주겠다고 자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서장은 이런 심리를 잘 파악한 후 올바른 제안을 한 것으로 보인다. <포기해도 됨> 이라니, 쉽게 부서장 혹은 리더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리더들은 팔로워들에게 <해냄>을 강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막상, 포기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지원한 사람들이, 쉽게 포기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느 정도 본인들의 강점을 어필하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손을 든 사람들일 것이다. 바로 나처럼.
분명 해야하는 업무가, 같은 일임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구성원들의 실패에도 <책임을 지우지 않겠다>라는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많은 사람들이 본인들의 본업과 겸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몰린 것이다.
이런 스킬은, 꼭 내 브런치에 저장해 두고 싶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하기 싫은 일들>을 강요해야 할 때, 이렇게 Loose 한 조건들을 들이밀고, <그냥, Just For Fun> 할 수 있는 멋진 제안문을 만들 순간이 온다면, 그렇게 해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모아 팀빌딩을 해야만, 그곳에 참여한 구성원들이 부담 없이 즐기면서, 스스로의 목적에 따라 본인들이 얻을 이득을 계산하며 업무에 기여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저 꼰대처럼 <팀에 도움이 되어야 하니, 참여해라>라는 식의 명령은 지금 시대에서는 절대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