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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Oct 13. 2023

영원한 건 없지

계속 변하니깐 사람이지

 한때는, 메인 작가까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신랑신부의 대부분 한 번뿐인 결혼식을 멋지게 리딩하고, 그와 동시에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부업을 계속 즐겁게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도약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언젠간 그럴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며 부업임에도 본업처럼 성실히 일했었다.


 근데... 아주 근본적인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바로 '사진' 촬영에 대한 흥미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 

예전처럼 카메라 렌즈나 사진 장비에 대해 큰 호기심을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똑같은 결혼식 촬영만 2년여를 반복하니, 처음엔 배우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연구용으로 내 외장하드에 결과물을 보관하곤 했지만, 지금은 그냥 결과물을 웹하드에 올리고는, 내 외장하드에는 보관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아마 이런 게 '매너리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올해는 웨딩촬영도 정말 많아서 심신이 많이 쇠약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돌파해 보고자 달리기를 취미로 함께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이마저 없었으면 올해 진짜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불을 붙인 사건이 있었으니...


 저번주 촬영이었다. 그날 메인작가와는 서너 번 함께 촬영을 했던 분이라 구면이었다. 나는 서로 조금은 친해졌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착각이었다. 


 평소 나는 촬영 때 신랑신부에게 아이스브레이킹을 자주 하는 편이다. 신혼여행은 어딜로 가느냐, 어제 잠은 잘 잤느냐, 메이크업 샾에서 오는데 길이 막히진 않았느냐 등의, 대화말이다. 사실 얼마나 떨리겠는가, 보통의 신랑신부들은 결혼식장 자신에게 주어지는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큰 부담을 느끼고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덜어줌으로써 자연스러운 표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게 작가의 역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날도 그런 농담을 하고 있었다. 메인작가와 나는 잠깐 밖에 나와 함께 소품을 촬영해야 하는 컷이 있어 단 둘이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빛담 실장님, 저는, 서브작가가 말 많이 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연출해야 되는데 말을 못 하거든요"


 속으로 '읭?' 하는 의아함이 들었다.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니고, 내가 연출하는데 방해하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기서 들이받으면 촬영을 망칠 거 같아 그냥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나를 작가가 아닌 '졸개'즘으로 간주하며 그간 촬영했나 싶어서 정말 기분이 안 좋았다.


 회사에서도 내가 저런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다면, 분명 나는 반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촬영을 망치고 싶지 않아 꾹 참고 웃으며 촬영을 이어나갔다. 


 촬영이 끝난 후, 정말 크나큰 현타가 왔다.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현타 말이다. 

가뜩이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카메라 및 웨딩 촬영에 대해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나에겐 '결정타'와 같은 묵직한 한방이 들어온 셈이었다. 


 한주 내내 곰곰이 고민하다가, 내가 주로 스케줄을 받던 업체 대표에게 더 이상 일을 안 받겠다는 이야기를 뱉었다. 그냥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직접 구직해서 일을 하던가 해야지, 매주 빡빡하게 짜여있는 내 네이버 캘린더 토요일 스케줄을 볼 때마다 스스로도 한숨이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공짜로 시킨 것도 아니고 페이를 받아가며 촬영을 한 것이긴 하지만, 이젠 메인작가고 뭐고 그런 목표는 안 갖기로 다짐했다. 애써 메인 해보겠다고 샀던 고급 광각렌즈도 팔고, 지금은 조명이랑 기타 장비들도 모두 장터에 내놓은 상황이다. 카메라 전체를 정리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것들은 조금만 더 가지고 있기로 했다.


 맞다. 영원한 건 없다. 특히 나에겐 말이지. 카메라라는 취미는 약 4년간 나를 지탱할 수 있게 해 준 좋은 취미였다. 덕분에 많은 경험들을 더 해볼 수도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삶 속에서 비중이 더 줄어들게 될 것 같다. 항상 같은 것만 찍고, 하다 보니 이제는 매너리즘이 한계에 다다른 거 같다. 게다가 어디서 돼먹지도 않은 사람에게 저런 소리나 듣고 말이다...


 욕심을 버리고 살아야지. 돈 때문에 몸 갈아 넣는 것도 올해 1년이면 충분하다. 앞으로는 스냅으로 알게 된 인연들이, 가끔 촬영 도와달라고 하면 그럴 때 나가서 소일거리로 용돈 벌이 정도나 해 보려고 한다. 이렇게, 다시 내 인생에 전환점이 곧 올 거 같은, (또 다른 취미를 찾아 나서게 될 거 같은) 기시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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