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X, 번개 X
"빛담 프로, 오늘 저녁에 번개 콜?"
요새 회사에서는 고객사 KPI 맞춘다고 나는 꽤나 바쁜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오늘도 오후에 온라인 미팅 이후 수정사항들을 체크해서 열심히 화면개발을 진행 중이었는데... 회사 또래 동료 단톡방에 급 번개를 하자는 메신저가 왔다.
애써 안 본척했다. 다른 사람들의 추이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톡방 멤버는 총 6명, 그중 4명이 우선 동의한 상태였다. 더이상은 읽씹 혹은 안읽씹할 수는 없었다. 나는 대답해야만 했다.
"저는 괜찮습니다ㅠ"
맨 마지막에 'ㅠ'를 붙였으니, 내가 불참하리라고 잘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했지만, 곧바로 날아온 대답은,
"시간이 괜찮다는 거야 가기 싫다는 거야?"
"네.. 저는 안될 거 같아요"
"가기 싫은 사람 억지로는 안 데려가요. 가겠다는 사람들끼리 갑시다"
뭔가.. 내가 잘못한듯한 단톡방 느낌. 정말 나만 갑자기 기분이 싸 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PC 끄고 어디 가서 뭐 먹을지 신나 하는데, 나만 죄진 느낌으로, 누군가 나에게 가지 않는 사유를 물어보면 '해명'을 해야만 했다.
"일이 잘 안 되는 게 있어서, 그것 좀 마치고 가려고요"
"아휴 일 좀 그만해, 그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주냐고"
역시.. 돌아오는 건 핀잔뿐. 그냥 나한테는 회식이나 번개 가자는 말 안 해주면 좋으련만. 내가 가기 싫다는데 왜 내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망친 거 같은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 건 뭐지...?
아 물론, 군대에서 간부들과 회식을 하거나, 신입사원 시절, 약간의 '강제성'을 띄는 회식에는 곧잘 참여했다. 그때만 해도 상사들이 회식을 주도했었고, 회식도 업무의 일종으로서 간주하는 사회분위기가 있어 거절을 쉬이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막상 회식을 가면 또 즐겁게 술도 잘 먹고 엔간하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편이다.
그런데 어느새부터인가 회식이 '두려워졌다' 그냥 가고 싶지 않은 행사가 되었다.
특히 술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타인'의 이야기를 하고, 나 또한 그렇게 하며 남의 이야기를 안줏거리 삼는 것이 무척 불쾌하게 느껴졌다.
가끔 동료들이 술자리를 하고 온 다음날, 나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하거나, 나에 대한 '평가'를 한 내용을 전해 들으면 정말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나 또한 타인에 대한 평가등을 하며, 다른사람을 불쾌하게 했겠지 생각하니, 그런 모임에 나가기가 싫어지게 된 것 같다.
술자리나 회식말고, 동료들과 러닝크루 등, '건전한' 활동을 하는 모임이라면, 언제든 참여하고 싶다.
요새 몇몇 동료들과 시간을 맞춰 본사 26층 계단 오르기 운동을 함께 하는데, 이런 활동은 기분이 너무 좋은 거 같다. 숨은 차고 땀도 나지만, 무언가 다 같이 건강해지는 기분이라 성취감이 배가 됨을 느낀다.
그렇다. 요새 점점 무미건조해지고 재미없는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닐까라고 스스로 반문해보곤 한다.
맞는 거 같다. 딱히 삶이 재미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대부분의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 것. 이러한 현재의 삶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는 번개나 회식하자고 하면 '식은땀'이 난다. 어떤 핑계를 대고 안 가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