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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Jan 07. 2024

원래 인생은 힘들단다.

너 말고도 누구에게나 힘들어.

"여보, 나 병원에 다녀와야 할 거 같아. 같이 가줄래"

 언제 정신과 병원에 다녀왔나 싶어 처방받은 약봉지의 날짜를 확인하였는데 벌써 작년 12월 중순에 다녀왔으니 20여 일이나 흐른 셈이다. 


그럴 일 없다. (brunch.co.kr) 이 글을 쓰고 수개월이 흐른 시점이 되어 지금은 해가 바뀌었다.

그간 마라톤을 비롯해서, 근력운동도 열심히 하며 육체적으로 조금 더 내성이 생겨 정신적으로도 강해졌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더라. 특히 회사에서 특정 상황에 놓일 때, 마음속에 불안감이 엄습해 오며 안 좋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스스로 객관화하여 생각해 볼 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도, 뭔가 내가 해내고 나서야 한다는 마음이 엄습해 오며 불안감이 증폭되어 속에서 전쟁이 나는 것처럼 심한 우울증에 휩싸일 때가 많아졌다. 


 예를 들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업무가, 어쩔 수 없이 동료에게 위임이 되었을 때, 그가 행하는 태도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을 때, 고객에게 '팀의 리더인 내가 어떻게 비칠지'에 대한 불안이라던가, '우리 팀의 능력 부족'이 드러나 내가 괜스레 다른 팀원들에게 미안해지는 상황에 놓일 때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나 또한 알고 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 동료의 대응이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나와 달리 무관심하게 대응하는 그 동료가, '우리 팀'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면, 다른 동료에게 피해를 주는 거 같아 화가 많이 날 때가 있던 거 같다. 그렇다고 달리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참는 수밖에 없다.


 결국 이대로 가다간 내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와이프와 함께 병원을 찾았던 것이었다.


"빛담님, 불안감을 낮춰드리는 약을 처방해 드릴 꼐요"

"네네 감사합니다. 저도 우선은 이대로는 안될 거 같아 다시 찾아왔네요 선생님"

"잘하셨고요, 이 약은 '부적'같은 약이에요. 불안할 거 같은 상황이 올 거 같거나, 불안하고 우울한 일이 생긴 이후 드시면 됩니다"


 아직, 이약을 받고 1봉도 먹지는 않았다. 신기하게도, 정말 '부적'같은 약인 거 같다. 뭔가 이 약봉지를 받고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나에게 '아군'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아울러 최근에는 '업무'에 대한 초조함이 더 커진 느낌이다. 근래 들어 고객사 개발파트 주도의 강한 업무 드라이브에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주도할 수 없고, Passive 하게 끌려가는 업무다 보니, 사람, 업무 난이도, 일정 등의 고차 방정식의 해법을 어떻게 찾아내어 답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담감이 몰려오고 있다. 


 오늘은 시간이 조금 난 김에 개발파트에서 새로 바꾼다는 I/F기반으로 PoC를 집에서 조금 해봤는데, 아직 감은 잘 오지 않는다. 사실 이 또한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위임하고, 나는 다른 중요한 업무를 수행했으나, 그는 내가 생각한 만큼의 고민을 안 하고 있는 것으로 팀 미팅 때 확인하여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 나로 실망만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답을 찾아내더라도 안 알려줄 생각이다. 마치 대학교 조별작업에서 '나 혼자' 일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과실은 '우리'가 나눠야 하는 느낌이라 굉장히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사방이 다 적인 거 같은 느낌이다. 내가 마음 터놓고 업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느낌. 

섣불리 이야기 꺼냈다가는 '그건 네가 업무에 대한 태도가 유별나서 그래' 하는 식으로 3년 전 내가 겪었던 트라우마를 다시 마주할까 두렵기만 하다. 


"여보, 힘들면 육아휴직 내"

"돈은... 애들 학원비는 어떻게 하려고"

"여보 주말에 아르바이트 뛰고, 나도 주중에 일하면 여보 버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

"원래 우리 돈 없이 잘 살았잖아. 이 기회에 여보도 좀 쉬고, 아픈 마음도 치료하면 좋겠다."


 이 대화 중에는 울지 않았지만, 대화 끝난 후 모두가 잠든 밤, 나는 소파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그러고는 '우울증 약' 봉지를 에코백에 넣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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