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년으로 돌아오는 '짝수' 년도에 주로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올림픽, 월드컵, 그리고 예전에는 축구에 관심 있어 챙겨보던 유로 시리즈까지, 그럴 때,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아빠 엄마와도, 심지어 학원 선생님과도 이런 큰 스포츠 이벤트들을 이야기하며 많은 화젯거리를 공유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필자가 기억하는 '최초'의 스포츠와 관련된 기억으로는 92년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선수가 따낸 금메달이었다. 당시 7살이던 나는, 장장 2 시간 넘게 걸리는 마라톤 경기를 계속 지켜보고 계시는데, 지루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아니, 화면이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화면 속의 선수들은 힘들어하며 달리고 또 달릴 뿐, 내가 볼 땐 이미 승패도 결정 나있는 거 같았는데, 저걸 왜 아빠는 좋다고 보는 걸까... 하는 생각뿐이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 황영조 선수가 일본의 마라톤 선수를 제치고 1위로 올라가 막판 레이스를 하는 장면이 어린 나에게도 꽤 인상적이었던 거 같다.
4년 전의 감동 때문일까?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이봉주 선수도, 92년도의 내가 봤던 감동적인 레이스를 보기 위해, 기꺼이 아버지와 함께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귀한 시간인 '두 시간'이나 마라톤 콘텐츠에 투자했던 기억이 있다.
그뿐만 이겠는가?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김경옥이라는 양궁 선수가 퍼펙트 골드를 했던 장면도 정말 너무 지겹게 재방송으로 여러 번 송출되어 그 감동까지도 박제되었던 기억이 난다.
2002년, 필자가 고2 때 아마 한국에서 다시는 느끼지 못할 감동인 한일월드컵을 친구들과 같이 어울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첫 조별 토너먼트 전이었던 폴란드전을 참관하러 광화문에 갔다가, 같이 응원하던 앞에 여고생과 썸이 났던겄도 너무 좋았고^^. 경기 결과도 너무 훌륭했었다. 그뿐만 이겠는가, 그때는 온 나라가 축구에 미쳐있었다. 오죽하면 나보다 한 살 형들이었던 고3들이 불쌍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겠는가... 정말 그때는 모두가 월드컵 4강이라는 블랙홀 안에 빨려 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도, 나는 스포츠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이런 큰 이벤트들을 잘 챙겨보며 즐기곤 했었다...(과거형)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올림픽이며 월드컵이며 나에겐 그다지 관심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해당 대회에 어느 선수가 나오는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고, 그래도 수년 전만 해도 경기 결과를 요약해 보거나 우리나라 선수가 딴 금메달 정도는 유튜브에서 찾아볼 정도는 되었던 거 같은데, 올해 올림픽부터는 정말 아예 관심이 끊겼다. 사무실에서도 동료들과 올림픽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 거 같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동료들이 모두 그렇다.
워낙 재밌는 콘텐츠들이 많아서 그럴까? 그런 영향도 있겠지만,
필자의 개인 의견으로는 이제 사실상 유튜브 알고리즘이 개인들의 시청권을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올림픽 관련된 검색어도 쳐보지 않고, 그런 영상도 주로 안 봤기 때문일까? 유튜브는 추천 영상 리스트에 그와 관련된 내용은 일체 보여주지 않더라. 나 또한 그렇다고 올림픽관련된 키워드를 검색해 보지는 않았다.
만약 나의 이 가설이 맞다면, 예전엔 "함께 보는 콘텐츠" 들이 있어 세대차이도 줄여주고, 서로 이야깃거리를 제공할 콘텐츠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각자만의 TV속에서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상이 되어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필자의 집에도 티브이가 없어진 지 3년이 넘었다. 4인 가족이지만, "공통의 콘텐츠" 없이 각자의 휴대 디바이스를 통해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본 지 오래다. 우리 두 딸들도 올림픽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이럴 땐 조금 티브이가 없는 게 아쉽기도 하다.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회.
아주 가끔은, 어릴 적 우리 아버지가 쥐고 있던 TV선택권으로 인해, 보고 싶지 않던 "9시 뉴스"지만, 그 뒤에 약 5분여간의 내가 보고 싶었던 "스포츠 뉴스"를 보기 위해 참아가며 강제로 '어른들의 콘텐츠'를 함께 보던 그 시절이, 지금의 '각자도생'의 시대보다 더 그리워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