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보통 오후 네시부터 여섯 시 사이에 사내 피트니스에 가서 유산소든 무산소든 운동을 조금이라도 하고 가는 습관이 있다. 물론 운동을 힘들게 하는 날은 드물긴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오늘도 운동을 한 뒤에 인바디를 재고, 그 기록지를 사무실에 넣으러 가던 찰나였다.
지하 1층에 꽤 큰 사내 커피숖이 있는데, 그곳에서 딱 봐도 앳되어 보이는 사회 초년생들이 매장 마감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너나 할거 없이 깔깔거리고 즐겁게 웃으며 서로 도와가며 남은 재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 생각해 보니 나도 그랬다. 스무 살 때부터 필자의 부모님은 내 등록금 대기 힘들다고 용돈을 끊으셨었다.
2004년, 최저시급은 3,200원이었고, 그에 맞춰 집 주변에 위치한 노원역에 가서 '알바구함'이라고 쓰여있는 곳에 들어가 무작정 면접을 보곤 했었다. 어느 한 일식집에서 주말에 나와달라고 이야기하여 채용이 되었고, 나는 그 후로 '설거지의 노예'가 되었다.
그 술집에서는 내 얼굴에 난 여드름을 보고, 프런트로 내보낼 수 없는 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백엔드에 있는 각종 설거지 거리와 반찬 정리 등을 시켰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때 기억은 즐거웠었다." 물론 나의 추억 보정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맨날 허리 숙이고 설거지하느라 힘들지? 조금만 참아' 라며 다독여 주던 누님도 생각나고, 멋진 정장을 빼입고 와서 '매니저'라는 명함을 달고 손님을 안내하는 매니저 형도 나한테 잘해줬던 기억이 난다.
가끔은 술을 거하게 드시고 오셔서, 새벽 다섯 시에 우리 모두 감자탕 집에 데려가 술을 거하게 먹이고 고맙다고 이야기하던 사장님도 얼굴은 까먹었지만 생각난다.
왜... 몸은 그때가 몇 배 더 힘들고 버는 돈도 적었는데도, 그때의 기억은 즐거운 기억만 있을까?
지금의 나의 추억도, 십몇 년이 흐른 뒤엔 즐거움만 기억에 남게 될까?
그렇게, 깔깔 거리며 웃고 장난치는 아르바이트 생들이, 오늘은 유난히 더 '부럽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