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프로, 혹시 개발자 S프로라고 알아?"
수개월 전 필자의 매니저와 식사 후 산책을 하면서 그가 나에게 물었다. S프로를 아냐고.
S프로와 실제 일을 해본 사이는 아니었으나 그의 탁월한 개발 능력은 익히 나도 전해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음 얼굴만 알아요. 엄청 개발 잘하시는 분이라는데? 왜요?"
"어, 너희 팀에 개발자로 꽂을까 해서"
"그냥 한 명 주시는 거예요?"
"비용 때문에 그건 어렵고,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네가 받는다고 하면 아마 기존 인원은 나가야 하겠지."
나의 매니저는 평소 실력이 좋다고 소문난 사람들의 행보를 트래킹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사업을 하다 보면 과제가 커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 때 좋은 인재를 데리고 있으면 사업을 하기 수월하다는 그의 경험론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시며 그는 대화말미에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이 내용을 갖고 이야기해 보자는 말을 하셨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머지않은 미래가 며칠 전에 일어났다.
매니저는 다시 한번 개발자 S에 대해 나에게 물었다. 그를 팀에 합류를 시킬 것인지 아니면 현재 팀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선 나는 개발자 S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가 기술적으로 어떤 하드스킬을 가졌고 또한 고객과 팀원을 대함에 있어 어떠한 소프트 스킬과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주변의 그와 함께 일을 했던 동료들을 알음알음 수배해 레퍼런스 체크를 해 보기 시작했다.
후자의 경우는 이미 같은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를 했기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짐작했던 대로 그를 겪어본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업무에 대한 열의와 좋은 자세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자의 경우도 그는 개발을 참 잘하는 사람으로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 우려스러웠던 점은 우리 팀에서 다루어야만 하는 프런트앤드 개발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었지만 그 마저도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는 잘 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개발자 S를 데려오게 된다면 안타깝게도 팀에서 떠나야 하는 사람도 미리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개발자 K, 그는 우리 팀에 합류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오래 일한 순"으로 그를 내보내야 하는 대상으로 점찍은 것은 아니다.
함께 일하는 개발자 두명중 한분은 이미 팀원들로부터 정신적 지주와 같은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는 개발도 잘하고 업무에 대한 자세도 매우 좋아 나를 비롯한 많은 팀원들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자 K와 그를 비교한다면, K는 결코 그보다 우위에 설 수는 없어 보였다.
K는 처음에 팀에 합류해서 나와 일을 해 나감에 있어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적절한 거리두기 (brunch.co.kr))
다행히 그가 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어느 정도 매끄러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아울러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팀원들 및 개발환경에도 익숙해지다 보니 다른 개발자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선뜻 도맡아 결과물을 가져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K는 이제 팀에서 없으면 안 되는 개발자로 적응을 마친 듯 보였다.
비록 다른 개발자의 그늘에 다소 가린 것이지, 개발자 K는 현재 너무 잘해주고 있었다. 결격 사유가 없다. 그런데 나는 K를 왜 팀에서 내보내야 하는가? 점차 회의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개발자 S를 팀에 합류시키는 것을 고민해 보라고 요청한 것은 필자의 매니저였다. 그는 그의 숙제를 덜어줄 사람이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실력 좋고 업무에 대한 자세가 좋은 사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그건 '그'의 숙제지, '나'의 숙제는 아니다.
게다가 개발자 K는 현재 매우 잘해주고 있다. 이제는 필자도 그에게 많은 부분을 위임하고 의존하게 되었다. 무릇 일이란 무역과 같아서 내가 팀에 해줄 수 있는 카드들과 다른 사람이 팀에 해줄 수 있는 카드들이 편중되지 않고 다양할수록 훨씬 수월하게 업무가 진행된다. K는 현재 본인의 역할도 잘해주지만 다른 팀원들이 맡지 못하는 영역도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K가 지금도 여전히 팀 내에서 적응을 하지 못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잘 적응했다. 내가 K를 내보내고 다른 개발자를 모셔왔다고 하면 팀 분위기는 분명 엉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잘 해내고 있는 사람을 어떤 명분으로 내보낸단 말인가.
"매니저님, 빛담입니다. 일전에 제안 주셨던 저희 팀 내 S 프로님 합류 건은요 아무래도 어려울 거 같습니다."
"응? 그래? 그래그래"
"네에, 좋은 팀빌딩이야 말로 언제나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해 왔었는데요. 저희 팀은 이제 완성이 어느 정도 된 거 같습니다!"
"그래, 잘 되고 있는 팀이면 건들 이유가 없어. 오케이. 알려줘서 고맙다. 수고~"
매니저에게 다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도 작년에 내가 인력 문제로 힘이 든다고 이야기할 때 나를 격려해 주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 팀을 위해서도, 또 향후 있을 사업 기회 관점에서도 좋은 인력을 모셔오고 싶었을 것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의사결정을 할때 '남의 사정'이 끼어들면 나중에 문제가 되기 싶더라. 오로지 '나'와 '우리 팀'만 놓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매니저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결정을 하고 나서야 웃음이 났다. 나의 판단이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최선의 결정 이었었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은 내가 우리 팀원의 자리를 갖고 의사결정을 했지만, 아마 현재의 내 자리 또한 좀 더 위에서는 지금과 같이 매니저들 간에 대화가 오고 갔을지도 모른다.
세상엔 나를 위해 비워져 있는 자리는 없다. 내가 앉은 이 자리는 누군가가 이미 선점했던 자리일 테니까 말이다. 실력이든 운이든 자리에 앉았으면, 그 위치에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자리는 언제든 교체가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