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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잘 되면, 나도 잘 된 것 같아서

함께 버틴 시간, 이제는 응원의 시간

by 빛담

"빛담님, 안녕하세요."

매일같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직장생활.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출근하자마자 평소처럼 정해진 업무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메일을 확인한다. 요즘은 불필요한 메신저 사용을 줄이는 것이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 대신, JIRA나 컨플루언스 같은 협업 툴에서 쏟아지는 자동 메일이 많아진 탓에, 놓치는 일이 없도록 꼼꼼하게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적인 메일 체크가 끝나면, 운영 중인 시스템의 Alert 메일과 Incident 이벤트들을 검토한다.
그 모든 걸 마무리한 뒤에서야 비로소 커피 한 잔을 든다.


그렇게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하던 중, 타 부서에서 주관하는 AI 어시스턴트 툴에 대한 인터뷰가 있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손목의 스마트워치가 진동했다. 진동의 주인공은 고객사 S프로였다.


나는 업무 중 메신저 알람은 자주 확인하는 편이지만, 단체방 알람은 대부분 꺼놓는다.
즉, 손목에서 진동이 왔다는 건 단체방이 아닌 개인 메시지였다는 뜻이다. 사실 S프로가 나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는 일은 드물다.

왜냐하면 우리가 함께 있는 단체방 분위기는 나름 괜찮은 편이다.

나는 업무 메신저에서 서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건 꽤 괜찮은 관계라고 본다. 한두 번은 업무를 정리해서 보내더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편하게 대화하는 사이"가 되는 관계.
S프로와 내가 있는 방이 바로 그런 분위기였기에, 따로 개별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필요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무슨 일이시지?'
나에 대한 책망이나 불만은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알 수 없는 긴장감 속에 자리에 앉았다.


"빛담님, 원래 파트장을 맡고 계시던 분께서 갑자기 다른 부서로 이동하시게 됐습니다. 그 자리를 제가 맡게 되었어요."

"오옷,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잘된 거 맞죠?"

"아… 사실은 하기 싫었는데, 뭐 그렇게 됐습니다."

"네네, 그래도 잘된 거죠.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S프로님만 의지하면서 저도 버텨왔는데..."

"그래도 빛담님이 자리를 지켜주셔서, 제가 좀 더 편하게 새로운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했고, 그는 고마움을 전하며 함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격려했다.


그와 함께한 시간도 벌써 4년이 넘었다.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땐 나도, S프로도 모두 불안했다. 특히 그의 상사는 많이 불안해하셨다.

첫 미팅에서, 우리는 웹사이트를 새로 구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3개월 안에 수많은 UI/UX 요구사항을 다 반영해서 런칭하라는 건… 저는 못할 수도 있습니다."
라고 그들에게 선전 포고를 하듯 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됐겠지만, 당시엔 나도 처음 맡는 웹 프로젝트였고, 우리 팀원의 실력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덜컥 수락했다가 제대로 못해 더 욕먹는 것보단, 선을 긋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일 이후 S프로의 상사는 나를 두고 "이 사람과 더 일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S프로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려는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우리는 팀워크를 맞춰가며 열심히 프로덕트를 만들어 나갔고, 그 마중물로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신뢰가 쌓여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들을 신뢰하게 된 건, 그들이 요청하는 일들이 결코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이후였다. 그들의 요청은 늘 사용자 중심이었고,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나 달콤한 우리의 허니문 기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S프로와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빠르면 반년, 늦어도 1년 안에 계속 바뀌었다.
결국 우리가 처음 이 과제를 만들었을 때의 성취감과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처음에는 사용자 편의성과 정보 제공에 초점을 맞춰 함께 타협점을 찾던 분위기가, 어느 순간 자기 편의를 위해 일 떠넘기기에 급급한 조직으로 바뀌어갔다.

그 와중에도, S프로와 나는 ‘어떻게든’ 일이 되게 만들기 위해 서로를 의지하며 버텼다. 정말 ‘버틴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그는 내가 지칠 때마다 그늘이 되어 주었고, 나 역시 그에게 같은 존재였다고 믿는다. 때로는 정말 하기 싫은 일도, 당위성을 만들어내며 결국 해냈다. 함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그런 그도, 내 곁을 떠나게 되었다. 물론 완전히 멀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속 편히 고민을 털어놓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보여줬던 합리적인 업무 방식과 태도를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더 넓은 시야로 그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더 많이 해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다.


"저는 제가 모시는 고객들이 모두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S프로님처럼요."

내가 그에게 전한 마지막 말이었다.


고객을 도와, 그들이 원하는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내게, 고객이 잘 풀리고 승승장구하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


이제 S프로가 더 넓은 무대에서 빛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새 고객도, 나와의 협업 속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일잘러’로 인정받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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