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었어도 되는 TF 회의에서
그날도 나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내가 챙겨야 할 업무’와 ‘해야만 하는 업무’를 구분하며 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쪼개던 오후 두 시, 메일함에 알림 하나가 도착했다.
‘[색인 TF] 최종 리뷰 회의 – Meeting 1시간 전입니다.’
메일 제목 속 두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TF. 그리고 최종.
먼저 TF. 이 단어를 나는 유난히 싫어한다.
TF는 목표 달성을 위해 임시로 꾸려진 조직을 뜻한다. 회사생활 15년 가까이 하면서 몇 차례 차출된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유의미한 결론은 거의 없었다. 시작은 거창했지만 납기 맞추기에 급급해 결국 산으로 가버리기 일쑤였고, 마지막에는 그들이 원하는 ‘답지’를 끼워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최종’이라는 단어는, 내가 이 TF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바라던 순간이었다. 좋든 싫든, 이제는 끝낼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더 이상 의미 없는 회의에 매주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다.
이 TF에 처음 참여한 건 6월 말이었다. 팀은 기존 업무 외에도 코드 품질 관련 요청까지 떠안고 있었고, 가뜩이나 바쁘던 나로서는 굳이 들어가고 싶지 않은 회의에 매주 불려갔다. TF의 주제는 ‘검색 품질 개선’이었지만, 우리가 맡고 있는 건 UI/UX, 즉 프론트엔드였다. 검색 결과 정확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다.
처음 그들이 내게 요청한 건 기껏해야 화면 내 자잘한 개선이었다. 버튼 위치나 색상처럼, 마치 QA 팀이 이슈를 던져주듯 ‘이거 고쳐주세요’ 식이었다. 기획 의도나 존재 이유를 묻는 과정은 없었다. 우리에게는 소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편하게 “너희가 해줘”라며 일을 던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UI는 유저의 최종 접점이다.
버튼 하나, 레이아웃 하나에도 맥락이 있고, 제대로 된 개선을 위해서는 서버단 지원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몫을 지키면서 우리 팀을 비롯한 다른 파트의 힘을 빌려 문제를 덮으려는 듯했다. 결국 다른 담당자들이 하나씩 근거를 대며 설명하자, 더 이상 크게 주장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팀 몫의 수정은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남은 건 이 TF의 본질, 즉 사용자가 원하는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였다.
회의는 매번 비슷하게 흘렀다. 회의 주관자들은 모두를 리드하기보다는, 우리를 그저 ‘들러리’로 세워 자기들의 목표 달성 수단으로 삼았다.
내가 어렵다고 말하면 “왜 못하냐”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정작 색인 담당자가 본질적인 난관을 언급하면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 팀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회의가 이어질수록 나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하루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6월 말부터 이어진 TF는 여름이 다 가도록 결론을 내지 못했다. 주체의 리더십은 부재했고, 회의는 지엽적인 이슈에 묶여 시간만 흘렀다. 결국 보고서 제출 기한이 다가오자, 그들은 출구전략만 모색하는 분위기였다.
최종 회의 날.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마이크 잘 들립니다.” 그것이 전부였다. 내 존재는 들러리, 볼모, 도구에 불과했다. 회의 말미, 마무리 즈음에 이르러서야, 회의 주최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빛담님, 혹시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동료들과 눈빛을 주고받은 뒤, 나는 짧게 말했다.
“네,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게 이번 최종 회의에서 내가 남긴 유일한 말이었다. 의견을 내봤자 들어줄 사람도 없었고, 우리 팀 자체를 존중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굳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먼저 할 이유도 없었다.
회의에서 나오자 긴장이 풀렸다.
6월부터 매주 받아온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 없이도 될 회의에 불려 나가야 했던 점, 회의 중간마다 갑자기 소환당해 ‘할 수 있냐’는 압박을 받아야 했던 점.
그렇게 매번 매주 TF회의간, 내 에너지는 ‘불완전연소’로 남았다.
안타깝지만, 이런 무의미한 회의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회사에서 돈을 받는 이상, 하고 싶은 일보다 하기 싫은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그래도 만약 내가 TF를 이끈다면, 구성원들의 상황과 여력을 먼저 묻고 싶다.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어려운 점을 솔직히 말할 수 있게.
“상대방 상황을 왜 체크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은 결국 사람의 ‘기분’에서 시작된다. 그것을 들어주기만 해도 관계가 훨씬 수월해진다고 나는 믿는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
사람을 보지 않는 리더십은 끝내 사람을 끌어낼 수 없다. 억지로 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일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人を使うは人を知るにあり” (사람을 쓰는 것은 사람을 아는 데 있다.) 사람을 알아야, 함께 일할 수 있다.
이번 TF 활동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한, 단순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