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끝에서 다시 배우는, 관계의 온도
“빛담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트)(따봉)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납기 내에 마감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박수)(넵)
회사생활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다. 특히 ‘성과’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시점은 대부분 예측 가능하다.
우리 회사와 고객사 모두 10월 말쯤이면 무언가를 완성해내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게 오래된 관례였다.
올해도 예외는 없었다. 10월의 끝자락, 우리는 또 한 번의 ‘마감’을 향해 달려야 했다.
다행히 목표한 기능은 완성되었고, 단체방에는 서로의 노고를 칭찬하는 메시지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 대화 속에서 ‘나의 말’ 대신, 이모지 하나로 마음을 대신했다.
그저 조용히, 예의를 담아.
‘5년 전 첫 오픈 때는 정말 다들 진심이었는데…’
문득 떠오른 그 시절의 기억은 따뜻했지만, 곱씹을수록 쓴맛이 남았다.
매년 반복되는 신규 기능 개발.
우리 팀은 그중에서도 ‘화면 개발’을 맡고 있다.
계약상 그렇게 정해져 있었고, 나는 그 화면 개발의 책임자였다.
기획팀이 방향을 세우고, 서버팀이 데이터를 제공하면, 우리는 그것을 조합해 사용자에게 보이는 형태로 만든다.
하나의 화면이 완성되기까지는 이 세 축이 정교하게 맞물려야 한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기획팀의 인력이 너무 부족했고, 결국 서버팀과의 협업이 유난히 중요해졌다.
서버사이드와 클라이언트사이드를 모두 경험해본 입장에서,
나는 ‘서버가 화면에 맞게 데이터를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했고,
반대로 서버팀은 ‘특정 클라이언트만을 위해 API를 맞출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두 입장 모두 이해는 되었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불만이 쌓이는 것은 어쩔수 없는 부분이었다.
내가 느끼기엔 그들은 소극적이었고, 나 역시 속으로 불편함을 삼키는 수 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요구사항을 정의하고 설계할 때까진 괜찮다.
그 단계에선 ‘결과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과 테스트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 눈앞에 실체가 생기고,
그 실체를 두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이슈인지 아닌지’를 해석하기 시작한다.
기획은 사용자 친화적인 화면을 원하며 이슈를 제기하고,
서버는 플랫폼 규격을 이유로 변경을 거부한다.
그 틈에서 나는 ‘을’의 입장으로 회의실을 나와,
팀원들을 잠시 모아 “정말 죄송합니다만, 우리가 조금 더 고쳐야 할거 같습니다!”라고 달랜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10월의 끝을 지나,
올해도 ‘무사히’ 목표한 기능을 넘겼다.
‘무사히’라는 말이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안전하게, 문제 없이 좋은 말이지만,
어디선가 타협의 냄새가 섞여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단체방을 다시 열어보니
각자의 이해관계와 감정이 미묘하게 묻어 있는 축하 메시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도 누군가에게 불만이 있었듯,
누군가도 나에게 그랬을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그 생각에 마음이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있다고,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관계가 예전처럼 ‘타이트하게’ 연결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이제는 조금 느슨하게 엮여 있어도 괜찮다고,
그 안에서 각자 버티며 일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의 에너지를 조금 더 쓰기로 했다.
서로의 선을 지키며,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무사히 넘긴다’는 말보다
조금 더 진심에 가까운 말인 것 같다.
서로의 거리를 인정할 때, 일은 조금 더 평화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