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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품은 관리자 노트

by 빛담

“빛담님, 혹시 잠깐 시간 되세요? 1층에서 뵐 수 있을까요?”

직감은 늘 정확하다. 평소 나를 단독으로 찾을 일이 없는 사람이 자리를 비워 달라 하면, 대개 팀의 결 속을 흔드는 이야기가 따라온다. 오늘도 그럴 것만 같았다.

개발자 K는 작년 4월 우리 팀에 합류했다. 처음의 그녀는 내가 기대하던 실력선에 닿지 못했다. 고객 일정은 빠듯했고, 관리자인 나는 사소한 실수도 크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비즈니스 로직을 설명하고, 기다리고, 다시 설명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녀를 온전히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결국, 한 팀이 된다는 건 서로의 부족함을 발견하는 일만큼이나, 서로의 성장 가능성을 믿어보는 일이기도 했다.
우리는 각자 한 발씩 양보했다. 그녀는 테스트의 꼼꼼함을 끌어올렸고, 나는 그녀의 배경지식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며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해주었다.

그 작은 조정은 놀라운 변화를 만들었다.
어느새 그녀는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고, 이제는 내가 요청하지 않은 일까지 먼저 찾아서 제안하는 동료로 성장했다.
그 과정을 지켜본 나는, ‘사람은 함께 일하면서 바뀌고, 또 서로를 바꾸기도 한다’는 단순한 진실을 다시 배웠다.


올해 초, PM은 내게 다른 개발자를 제안했다. 사내에서 실력으로 유명한 사람이 프로젝트에서 이탈하게 됐고, 혹시 내가 그를 팀에 받아줄 수 있을지 물은 것이다.
그 순간 떠오른 건 K였다.
이 건과 관련해서 다른 팀원들에게 의견을 구했지만 돌아온 말은 같았다.
“결정은, 바로 너의 판단에 달렸어.”

한참을 고민 끝에, 나는 K를 잔류시키기로 했다. 뛰어난 인재의 합류보다, 이미 자리를 지키며 함께 성장한 사람의 지속이 팀에 더 큰 안정감을 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린 결정은 곧 나에게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팀이란 ‘능력의 조합’보다, ‘함께한 시간의 의미’를 더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엘리베이터를 내려오는 사이, 이런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그녀는 팀을 떠난다고 말할 것이다. 예상은 맞았다.

그녀는 내년 2월까지만 일하겠다고 담담히 통보했다.
가장 아쉬운 사람은 결국 나였다.
안정적으로 팀을 운영해야 하는 나에게, 이제야 능숙해진 그녀는 큰 자산이었으니.

그러나 그녀의 이유는 분명했고, 정중했고, 솔직했다.
그녀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일과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다만, 성장이란 항상 머무르는 곳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녀를 보내고 바로 자리로 돌아가기 어색해 한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 이야기, 일상의 사소한 조각들.


대화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는 길, 문득 생각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다시 온다.
그리고 나는 또 어떤 사람과 ‘처음의 거리’를 조심스레 재며, 시간이 만들어낼 또 다른 성장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관리자의 일은 결국, 사람을 잃는 순간마다 더 단단해지는 마음을 배우는 일,
그리고 떠난 자리를 채울 새로운 가능성을 믿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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