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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Nov 17. 2021

아직 이직 안 하니?

나에게 맞는 목걸이는 무엇일까?

"나 합격했다고!"

 2010년 6월, 중위로 전역을 했다. 세상을 다 가진 거 같이 좋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전역하기 전에, 입사 시험이라도 보는 게 어때?" 전역 두 달 전 동기인 통신장교가 한 말이었다. "아직 준비가 안된 거 같아" 멋쩍게 미소 지으며 나는 황급히 대화를 닫았다. 

 기다리고 기다린 전역을 앞두고 나서야, 내가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이제 결정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쟁력은 무엇인지, 하고픈 일이 무엇인지, 어느 것이 최선의 취업전략인지 말이다. 사실 IT가 아닌 다른 분야로 가고자 했으나, 하필이면 '과'가 IT였다. 다른 분야로 애초에 이력서를 쓰기에는 명분도 없고 내러티브도 없었다.  '다시 처음부터 공부를 해야겠네...'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정보처리 기사 자격증 딸랑 하나 들고 사회로 나오게 되었다. 사회는 생각보다, 더더욱 냉정했다. 토익 공부를 하며 '스펙'을 갖췄다 생각했지만, 그건 누구나 갖는 스펙이었다. 장교 출신 우대? 그런 걸 바랄 생각도 없다. 지금의 와이프와도 당시 헤어짐을 겪으며 인생의 부침이 많았던 나였다. 여러 번의 낙방 및 절치부심 끝에 2011년 4월, 현재 다니는 회사에 아주 운이 좋게 합격하였다. 

오르막을 시작해볼까, 근데 끝은 없어, 알지?

"사원증의 자부심"

 입사 후, 약 천여 명의 동기들 대부분 가입되어있는 다음 카페에 글도 자주 찾아보곤 했다. "10대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 이러한 자극적인 제목, 못 참지. 하고 들어가 보면 우리 회사 이름이 있곤 했다. 정말 뿌듯했고, 그간 살아온 게 헛살지 않았다 생각했었다. 오리엔테이션 및 트레이닝 수습 기간에도 그러했다. 수습과정을 책임지는 과정 매니저는 말했다. "이 회사의 전통은, 선배가 후배를 직접 가르치며 양성하는 제도를 갖습니다."(지금 와서는, 제발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오, 능력 있는 선배들이 많은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 당시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동기들과 역량강화 코스를 밟게 된다. 입사한 동기들의 스펙은 쟁쟁했다. 경력에 가까운 중고 신입 분들이 많았다. 나는 나의 가장 큰 특기인 '조직 내 중간하기'를 목표로 일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애어른' 콘셉트가 먹혔나 보다. 생각보다 나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많았고, 나는 잘 놓치지 않았다. IT기술적 측면보다, 커뮤니케이션적 측면과 책임감 부분에서 동기들과 비교 우위에 놓이는 경우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주변의 평판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쟤, 일 잘해. 맡겨두면 믿음직하다니까" 어깨에 뽕 맞아가며, 오른손에는 스벅 커피를(아주 가끔), 목에는 회사 로고가 아주 잘 박혀있는 사원증을 매고 산책하는 게 취미였다. (퇴근할 땐 풀고 갔다.)

그룹 연수소에서 맨날 먹던 믹스 커피, 새벽까지 아이디어 짜내던 저 팀 포스터, 맨날 응원연습 할때 입던 저 하얀티까지, 그립다.

"다들 떠나네"

  입사한 후 3년 즈음 지나니, 동기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 위주로 이직을 많이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잘 이해 못했다. 배부른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평가 절하한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 잘되셨으니 형님들이다.) 친한 동기형 A가, 부서 봉사활동 마치고 같이 지하철 타고 가는데 나에게 넌지시 Offer메일을 보여준다. "OOO님, 저희 네이버가 제안하는 연봉은 5,250만 원으로서, 최종안은 아니고 협의가 가능..." 메일 내용 중 오퍼 금액을 봤는데, 솔직히 높다 느끼진 않았다.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그리 높지 않은데, 왜 가려는 거지? 그때 그 A가 말했다. "너는, 아직 어려, 돈이 다가 아니다. 문제는 커리어다. 여기 있다 보면 느끼게 될 시점이 올 거야."

 A의 말대로, 점점 회사에서 연차를 먹어가며, 선, 후배들이 이직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스타트업으로 갔는데 스톡옵션으로 독일차를 몬다는 소문도 들리고, 누구는 능력이 한참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굴지의 포털 사이트로 적을 옮겨 나를 놀래게 한 적도 있다. 어제 A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당시 이직했던 A는, 그 회사 말고도 현재 2번을 더 옮겨 E-Commerce회사에 재직 중에 있다. 

 "형, 요새 어때요" "응, 너 괜찮니? O무원 생활할만해?" O무원이라니, 나보고 공무원 취급을 한다. 근데 반박하긴 어려운 면도 있다. A가 대화를 이어 간다. "우리 입사할 때는 입결이 네이버보다 위였던 거 같은데, 이제는 뭐 취준생들도 안 알아주는 거 같다." 그런 거 같다.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데로 스카우트되거나, 갈길 찾아갔다. 나보다 어린 후배들도 이제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다른 대로 원서를 쓰는 분위기다. 입사할 때는 최고 대우를 받는 IT인재로 거듭날 거 같았지만, 이젠 뽑는 쪽에서 '허들'을 더욱더 높여 엄하게 검증을 해 나가고 있다. 나는 회사에 남아 마치 '채에 걸린 팥'처럼 그대로 필터링되어 남아 있게 된 느낌이었다.

나만 저 구슬 속에 갇힌 느낌... 넓은 세상을 못 보는 느낌

"아직 이직은, 회사에 갚을 빚이 있어요."

 37살의 인생을 살아오며,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기회를 많이 받은 적이 없다. 학창 시절엔 그저 농구나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대학시절에는 IT를 싫어 도망가는 IT대 학생이었고, 군에서는 '전역'하고 싶어 안달 난 초급 장교였을 뿐이다. 사실 나에게 지금 회사는 굉장히 고마운 존재다. 이 회사 덕분에 돈도 모아 작게나마 집도 살 수 있었고, 나를 소개할 때에는, 회사 이름을 부연 설명할 때 나를 더 돋보이게 해주는 그런 든든한 존재이다. 구성원들이 수시로 바뀌는 틈 바구니 속에서도, 나름 10여 년간 치열하게 회사에서 살아온 것 같다. 밖에서 많은 기술들을 익히며 떠나간 동료들이 승승장구할 때, 업의 특성상 돈을 주는 고객들 설득하고 비위 맞추며 힘든 '을' 생활을 감내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바깥에서도, 회사 안의 구성원들이 회사를 안 좋게 평가해도, '나는 고맙다.' 100여 군데 서류를 내도 한 군데도 안 붙여 주던 곳들뿐이었는데, 시험도, 면접도, 일할 기회도 준 유일한 회사였다. 

 오늘의 나는 아직 이직 생각은 없는 거 같다. 이번 글을 쓰다 보니 정확하게 깨달았다. 입사 초기에 했던 나의 독백처럼, '뽑아 주고 기회를 준 회사에 기여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더 앞선다. 물론 내일 돼서 고객사에 시달리고, 납기에 쫓기다 보면 '사람인 사이트'를 들여다보겠지만... 그래도, 뒤돌아 퇴근하면 이직 생각이 안 나는 걸 보면, 적을 옮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진급이나 기타 출세 욕심은 없지만, 나는 이 회사든 어디든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 부족한 나의 능력은 보완을 계속해 나가고, 장점은 갈고닦아 동료들에게 어필한다면, '꽤 오랜 기간 회사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길고 긴 하루를 마감하려 한다. 

고객을 잡아라! 너의 특명이다. 내일도 이 단순한 미션을 위해 바쁘게 일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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