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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Dec 11. 2021

불 공정

"왜 아빠만 밤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요?"

 둘째 아이는 이제 곧 7살이 된다. 요새 들어 문장 표현력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이젠 제법 세 살 터울 언니를 말로도 이겨먹기도 한다. 이 아이가 가끔 나에게 하는 말이, 정곡을 찌르는 때가 있어 놀랄 때가 있다.


 "불공정해요"

 자매 모두 요새 들어 아빠 엄마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도대체 어디서 저 말을 배웠는지, 수시로 저 말을 우리에게 하곤 한다. 

 "뭐가 불공정하지?"

 "언니는 안 치우고, 나만 정리하는 게 불공정해요"

 "그럼, 아빠는 왜 네가 밥 먹은 식기를 치워야 하지? 자기가 한 행동은 생각 안 하고, 대가만 바라는 것도 불공정이란다."

 "아빠 미워"

 뭐, 대부분의 대화가 이리 종결되곤 한다. 내가 펴는 논리는, '상부상조'이다. 너무 자기 것만 챙기려 들면,  사이사이의 그레이 존에 걸쳐있는 애매한 일들도 결국 세상사 이치상 '누군가는 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사실 그걸 우리 애들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 하나, 시간과 여건이 되면 가급적 해 주자는 식으로 교육을 한다. 


 어느 날 밤이었다. 아이들이 그날따라 유독 잠을 안 자고 이층 침대에서 재잘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각은 밤 10시 30분을 이제 막 지나고 있었다.

 "아가들, 어서 자라"

 "네... 아빠"

 나는 안방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구글에 'brunch'를 검색해서 사이트에 접속했다. '작가의 서랍' 메뉴를 눌러 낮에 저장해두었던 글감을 가져와 글을 이어 가려는데, 침대방에서 거실로 향하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어른의 묵직한 발자국 소리는 아니다. 분명 아이들 중 1명의 발자국.

 "왜 아빠만 밤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웃기기도 하고 방어할 논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하하, 소미야, 아빠는 어른이잖아"

 "어른은, 밤에 마음대로 놀아도 돼요? 우리는 못 놀고?"

 둘째의 문장 뒤에는 '불 공정해요'라는 말이 숨어져 있었으리라. 나는 둘째를 안아주고, 토닥이며 "알았어, 미안해"라고 이야기해주고 다시 침대방으로 돌려보냈다.

 

 생각해보면 나의 어린 시절에, "불공정"하다는 말을 많이 썼는가?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기억력이 감퇴한 탓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지나가던 어른도 "이것 좀 해라"라고 하면 하기 싫어도 그냥 했던 기억이 난다. '옆에 친구도, 다른 사람들도 다 안 하는데 나만 해야 되지?'라는 생각은 크게 안 했던 거 같다. (물론 이것도 기억력의 감퇴로 인한 선택적 기억일 수도 있겠다.)

 내가 어른이 되면 '라테충'은 안되리라 굳게 다짐했건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거 같다. 둘째가 늦은 밤 나에게 이야기했던 문의에 대해, 나는 스스로의 논리를 펴지 못했다. 그저 '어른은 할 수 있다'며 사실상 찍어 누른 것일 뿐.

 두 아이를 키우며, 시대가 변해감을 느낀다. 베이비부머 세대와 우리 세대처럼 학력 격차가 나는 세대는 이미 지나갔고, 초중고대 모두 같은 교육과정을 밟게 될 세대라, 생각 차이가 크게 안 날 걸로 생각했지만, 벌써부터 아이들에게는 타인과 대비되는 '불공정'이 큰 이슈 거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래도... 아빠인데, 돈도 벌어다 주는데 좀 봐주면 안 될까 소미야?" 

 둘째의 예상 대답은... "응, 불공정해" 겠지. 사실 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이들 모두 잠들면 혼술 하이볼 파티를 열며 지친 하루를 달래곤 한다. 이렇게 투닥투닥, 우리 가족의 시간은 간다.

너희들의 미래는 지금보다 투명하고 맑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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