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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Jan 28. 2022

고향 앞으로

인생을 깨달음의 연속

 아주 어릴 때, 내가 보기 싫은 뉴스를 억지로 봐야 할 때가 많았다. "공부하기" vs "뉴스 보기", 당연히 이건 후자다. 아버지는 9시만 되면 KBS의 황현정 아나운서를 보기 위해 항상 9번에 채널 고정해 두셨었다. 우리 집도 종가댁이라서, 할아버지가 살아계시고, 제사를 통합해서 지내기 위해 추석이나 설이 되면 항상 시골에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출발 하루 전이나 해서는 교통 흐름 등을 미리 살펴보시곤 하셨다. 내 어릴 적 기억으로는, 그 당시 충청도까지 가는데 4~5시간 정도 걸렸던 기억이 난다. 성인이 되어 운전을 해보니, 충청도까지는 보통 2~3시간을 잡고 시간 계획을 수립하던 걸 보면, 꽤나 막혔던 모양이다. 


 여하튼, 뉴스에서는 예쁜 아나운서 누나가 상냥하게 "내일부터 시작되는 설 연휴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15시간가량 소요될 예정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 가는 시간이지만, 그땐 자동차밖에 움직일 수 있는 옵션이 한정되어 있어서, 꼼짝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던 게 당연시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수많은 차량들과 함께 어우러져 고속도로를 미끄러워 들어간다. 수 시간이 흘러야, 겨우겨우 도착지인 할아버지 댁에 다다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쾌했던 시간은 아니었다. 차는 막히지, 재미도 하나 없지. 심지어 나는 워크맨도 없었다...


 어렸을 적에는, 명절날 그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거 같다. '왜' 시골을 가야 하는지 잘 몰랐다. 내 입장에서야, 할아버지는 그저 가끔 뵙는 큰 어르신 같은 존재였고, 아버지가 가자고 하니 그냥 싸우기 싫어서 가는 정도랄까? 가서도 차례나 제사 지내는 게 어찌나 지겹고 귀찮은지, 시간이 너무 안 가서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종화, 이걸로 책 사서 공부 열심히 하거라"

 지금은 안 계신 할아버지는 항상 호주머니에서 꾸깃꾸깃 돈 만원 이만 원 정도씩 매번 뵐 때마다 용돈을 주시며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사실 굉장히 철없는 시절이었지만, 할아버지와 헤어지기 전 주시는 저 용돈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에 의미 없던 제사나 차례를 그저 참아낸 나에 대한 보상..이랄까?



 2013년 1월, 아직 이십 대 시절, 나는 또래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비좁고 추운 연립주택에 혼수를 배치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부모님이 계시는 '노원 집'을 자주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아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주중에는 회사일로 시간이 나질 않고, 우리 와이프도 갓 태어난 첫째 돌보느라 항상 힘에 부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주말에 짬을 내 노원으로 간다는 것도 그리 쉬이 갈 수 없는 것이었다. 


 신혼집이던 성남-노원도 그럴진대, 아버지는 서울에서 할아버지 댁이 있던 충청도까지 가야 했으니, 명절날같이 조금 넉넉하게 휴일로 보장된 경우에만 움직일 수 있었겠다는 걸 그때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는 '내' 관점에서의 이야기이고, '부모님' 입장에서도, 자식 내외와 손주들이 오는데 빈손으로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셨을 거다. 특히 우리 어머니는 내가 가기 전날 꼭 전화를 주신다.


"아들, 무슨 고기 먹고 싶어?"

"응? 아냐 뭐 특별히 안 먹어도 돼"

"그래도, 명절인데 엄마가 맛있는 거 해주려고"

"아냐 엄마, 그냥 집에 있는 거 주어"

보통 대화가 이렇게 진행되는데, 집에 가보면 상다리가 휘어지게 나온다. 약 25년 넘게 병원밥을 만드시는 어머니의 솜씨는, 음식을 맛보면 정말 놀라울 때가 많다. 


 이것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요리를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그러한 이유들로, 나라에서 조금이나마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휴식' 하라고 '명절' 연휴를 만든 게 아닌가 하고 깨달은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릴 적엔 명절은 연휴 내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던 귀한 시간이었다. 수험생 시절엔 잘 안 풀리던 방정식을 공부한다고 썼었고, 취업 준비생일 때는 입사시험을 준비하고 면접 준비한다고 썼었던 거 같다. 그 이외 시간에는 잠도 많이 자고, 운동도 하고 그렇게 나를 위해 시간을 썼었던 기억이 있다.


 결혼하고서는, 명절엔 부모님과 장모님 댁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나나 와이프는 시간적으로 쉬이 여유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연휴가 5일일 때는 이틀 정도의 여유가 남아 좋지만, 그보다 짧을 때는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하루밖에 여유가 남지 않을 때도 많더라. 가끔 결혼 전이 그리울 때도 있다.


 그래도, 명절날 돌아갈 부모님 댁과, 아직 건강하신 부모님 그리고 장인 장모님들이 계셔서 다행이지 싶다. 이번 명절 때도 특별히 음식 준비 별로 하지 않으셔도 충분할 거 같은데... '손님'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아마 그렇게 안 하실 거 같다. 


 이렇게, 한해 한해 명절을 맞이하며 철없는 나는 또 조금씩 깨달아 간다. '건강히 살아 계실 때가 분명 좋다는 것'을. 

그래도... 고기 먹으면 좋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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