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 Feb 02. 2022

세뱃돈

어른이 되면 세뱃돈을 기꺼이 꺼내 줄 수 있을 줄 알았다.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오냐, 그래, 모두들 건강하고,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어릴 적 설날은 '재테크'의 시간이었다. 추석에 친척 어르신들을 뵐 때도 물론 조금씩 챙겨 주셨지만, 설은 '공식적'으로 작은 아버지들, 혹은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받느라 설렜던 기억이 있다.


 아침 차례를 마치고,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댁에서 각각, 항렬이 같은 사촌들과 함께 어른들께 합동으로 세배를 올렸다. 친할아버지 댁에서는 친척들 중에서도 우리 형과 나는 가장 나이가 높았고, 항상 왼쪽 끄트머리에서 절을 하고는 제일 먼저 덕담을 경청하곤 했었다.


 세배를 올린 이후, 수확의 시간. 어른들은 우리를 한 명 한 명 호명하시며 하얀 봉투에 돈과 마음을 담아 주셨다.

"큰애는 올해 대학을 들어간다지? 수고했고, 군대 조심히 다녀오너라"

"작은애는 올해 중3이 된다고? 곧 수험생으로 접어들겠구나."


 나이순으로, 세뱃돈 봉투의 값어치는 다 달랐고, 어려서는 몰랐지만, 실제로 그 시기에 돈이 가장 필요한 수준으로 우리들에게 주시곤 하셨었다.


 "세뱃돈은 꼭 집에 가서 열어봐야 한다? 얼마 안 돼서 그래."

 나는 어릴 적 이 이야기를 해 주신 친척 어르신의 살짝 떨리던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리고 표정까지도.

마치 죄를 지으신 거 같은 느낌이었는데, 나는 그 당시 금액이 적다는 것을 슬쩍 눈치채고,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었다. 집에 와서 실제 봉투를 열어보니, 다른 어른들 봉투의 반도 안 되는 아주 적은 금액이 들어 있었다.


 어려서는, 어른이 되면 '돈'이 많을 줄 알았다. 그에 따라 세뱃돈도 많이 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어릴 적 세뱃돈 봉투에 다른 어른들보다 적은 금액을 넣어 주신 그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어른이 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2022년 현재, 나는 철없던 학창 시절을 한참 지나, 두어 해 지나면 마흔을 앞두고 있는 어른이가 되었다.

이제는, 부모님 세대들처럼 우리 집은 서로 모이지 않는다. 자연스레 어릴 적 어른들께 함께 절을 하던 같은 항렬의 친척들과도 소통이 끊어진 지 오래다. 가끔 어른들 중 안 좋은 소식이 들릴 때, 마음을 담아 위로해주는 정도이지, 친척들끼리 모이자고 해도 쉬이 모일 수 없는 사이들이 되어 버렸다.(물론, 집안마다 사정 차이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친척 모임이 별로 없어 세배를 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과연 나 또한 다른 친척들의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많이' 줄 수 있을까 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여윳돈이 없는 것 또한 크지만, 사실 나는 '받는 것에만 익숙하고, 주는 것에는 약하게 자라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비슷한 MZ세대들 대부분 성향이 비슷할 것이다. 베이비 부머 세대 부모님들이 한 명 혹은 두명만 나아서 온 정성을 다해 기른 세대가 우리 세대다. '받는 것'에만 익숙한 게 사실이다.

 나부터 여유가 없는데, '남'을 어떻게 챙겨줄 수 있을까. 나는 이 논리가 더 강하게 동작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릴 적 작은 돈이지만, 정성을 다해 하얀 봉투에 담아 나에게 덕담과 함께 주셨던 어르신. 그러한 배려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커서 배운 수업이다. 분명 그분도 그 당시 여유가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셨을 것이다.


 

 최근 들어 느끼는 것이지만, 내 주변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친척들끼리의 왕래도 줄었다. 게다가 팬데믹으로 인하여 더욱더 왕래가 끊긴 친척 지간에서는, 대면 대면하는 사이로 전락해 버린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는 거 같다. '혈연'이라는 동질성은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닌, 서로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 또한 나이가 들고 나서야 배우게 되었다.


 2022년 트렌드 코리아(김난도 저) 책에 보면 '나노 연결 시대'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거 같다. 자기의 직계가족들만 챙기기에도 바쁘고 더 여유가 없어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사실 차례나 제사 같은 공동체 의식이 많이 줄어들어 나는 개인적으로 만족을 하고 있지만, 가끔은 어릴 적 명절에 함께 차례를 지내고, 덕담을 같이 듣던 사촌들이 그리울 때도 있다.


 친척들끼리 '코로나'라는 핑계 삼아 교류를 더 안 하는 것만 아니라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가끔 모여서 식사라도 하면서, 조금이나마 서로에게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대학/취업/결혼/자녀/정치, 이 다섯 항목은 이야기 금지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 받았던 세뱃돈이라는 사랑을, 다른 누군가에게 내 마음의 여유 한도 내에서 갚아 나가고 싶다. 그렇게 해 보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팝니다. S급 물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