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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Mar 01. 2022

아직도...?

의미 있는 것 일까

 이른 저녁, 속이 더부룩해서 집 앞 농구장에서 몇 바퀴를 하염없이 걸었다. 한강을 옆에 두고 살고 있지만, 가는 게 그마저도 귀찮을 때면, 집 앞 한적한 농구장을 돌며 카톡을 하곤 한다. 그렇게 운동을 마친 후, 아파트 후문 쪽에 위치한 내가 자주 가는 커피숖을 들러, 와이프가 좋아하는 밀크티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 딸이, 토익시험을 봤다지 뭐야"

"어머 그래? 결과는 언제 나와?"

"10일 정도 걸린다는데, 요새 취업하려면 900은 넘겨야 한다고 그러더라고"

"900이면 어려운 거 아냐?"

"최소한 그 이상은 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더라고"


 엿들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지만, '아직도' 영어 종이 쪼가리 시험을 보는구나... 싶었다.

내가 취업 준비할 2010년 즈음에도, 기업의 최소 커트라인은 이과는 600, 문과는 700 정도였고, 실제 구직자의 평균 스펙은 그보다 많이 높았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내가 가졌던 생각은, '과연, 토익점수가 실제 회사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해야 할 상황에 큰 도움을 줄 것인가?'에 있었었다. 일단은 취업은 해야 하니, 나 또한 남들처럼 종로구 토익 1타 강사를 찾아가 두 달 정도 공부해서 800은 넘기고 우쭐해했던 기억도 부끄럽지만 생생하게 남아있다.


 우선, 현재 회사에 재직하며, 영어 문장을 해석하는 데 있어 대부분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내 메신저에 있는 번역 기능으로도 영어를 해석하는데 문제가 없으며, 구글 번역 또한 매우 잘되어 있다. 영어로 된 매뉴얼이나 외국인과의 업무 협의 간에도 크게 어려움은 없다. 물론, '도구'를 사용하기에 어렵지 않은 것은 맞다. 옛날에 저런 번역 도구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을 때에는 메신저를 통해 영어 소통할 때 어려움을 겪은 것도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은 토익 점수가 낮다고 하더라도, 업무 하기에 어려움은 크게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요새 잘되어있는 번역 시스템의 도움을 받으면 업무 하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업무의 본질과 거리가 먼 스펙 쌓기'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며, 이는 입사 후 수행할 업무의 본질과 대부분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토익점수가 곧 경쟁력으로 판단되어, 우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무역 등) 다른 일반적인 업무수행을 위한 부분에서 토익점수는 경쟁력이 없다. 영어 회화의 경우도, 조심스럽지만 얼마나 많이 업무에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취업할 때만 해도 OPIC기준 IL이면 입사 지원서를 넣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IM 이상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당 업무에 맞춰 정확한 요구 스펙을 내고, 그 스펙 이상의 지원자에 대해서는 정성적인 가점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나의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지원요건의 스펙은 '정성적인 가점'이 아닌, 말 그대로 '허들'로서의 역할만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짧게 회사생활을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일 머리'와 '성실함'을 기본으로 탑재한 인재일 경우, 어떠한 업무를 주더라도 곧잘 해내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일 머리와 공부 머리는 조금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외우고 암기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공부 머리에 비해, 일 머리는 이슈에 대한 문제 해결 능력과 의지가 주라는 생각을 한다. 

 성실함 또한, 공부를 잘한 것 만으로는 검증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인이 되어 '주어진' 이슈를 책임지고 함께 해결해 가는 능력은, 학창 시절 스스로의 성취를 위해 노력한 '대학 과잠'과, 토익 및 오픽 등의 수치만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위에 언급한 두 가지 요소는, 기본적으로 '사회성'과 '책임감'을 기본으로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 동료 없이 혼자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입사한 지 10년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후배들이 '스펙'에 열중하여,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오버 스펙'에 대해 정성적인 가중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될 것 같은데, 관성은 무서운 거 같다. 당장은 토익이나 오픽 등, 시험 응시료의 대부분이 외국으로 나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좋을 거 같고, 향후에는 대학입시에 드는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나는 입사 지원자 스스로 해당 직무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사람들이 취업사이트의 취뽀 후기에 더 많이 글을 남기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이러한 문화가 정착될수록, 스펙에 치중하여 우리가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자율과 창의를 인정하고 하고 싶은 직무가 있으면 이를 적극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 보다 맡은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이상적인 우리나라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애 둘을 키우고 있는 아빠로서, 그렇게 나아가기를 희망해본다.


"취업 성공했어요, 연봉 8,000 인센 별도. 토익 X, 오픽 X, 고졸, 국내 화이트 해커 모의 대회 3등, 해외 도박사이트 알고리즘 경진대회 3등 지원 : 10곳 / 합격 : 8곳. 절대적 비교는 어렵겠습니다만, 친구들 수능이며 영어 공부할 때, 제가 좋아하는 알고리즘만 죽어라 공부했답니다."


관성은 무섭다. 변화의 방향은 공감하나, 쉬이 행동할 수는 없다. 점진적으로 변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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