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오늘이었다 오늘 아침 하인이 권유하는 마차를 거절하고 굳이 걸어가겠답시고 나선게 화근이었다.
지금 모르는 남자가 철석같이 붙어서 말을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피곤할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쾌활한 목소리와는 달리 얼굴이 안보일정도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뭐 보나 마나 변방의 좀도둑일 게 분명했다.
돌이나 지위를 목적을 그들이 끈질기게 달라붙는 경우도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이상할 정도로 무시를 당해도 남자는 따라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다 곧 저택이 코앞이었기 때문에 레이몬드 백작은 잠시 멈춰 서서 진지하게 대화에 참가하는 수밨에 없었다.
“길을 읽으셨나요 백작님?”
“전 아서희 몰리 라 합니다 레지스턴스 가의 남작이죠”
눈을 마주치자마자 남자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레이몬드 백작입니다”
그에 반에 백작은 짥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압니다 두 분은 일대에서 워낙 유명하시니까요 그래서 소문에 귀신이 질투를 하고 있더군요
목숨을 앗아갈 기회를 노린다고 말이죠 “
“소문이야 늘 있는 일이죠”
“여쭙는 질문을 드리자면 당신은 만약 당신을 죽일 사람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데체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이란 말인가?
곧 살해하러 오겠다는 은연중의 경고?
아님 목숨을 노리는 자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레이몬드 백작은 웃음을 지우고는 점잖게 말했다
“절 쉽게 죽이진 못 할 겁니다”
“그렇습니까?”
“............ “
“대답은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방심하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마침 저택이 가까워지는군요 그럼 전 이만 “
남자는 겸염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이은뒤 바람처럼 사라졌다
“나도 이만 가볼까”
레이몬드 백작은 저택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1화
따뜻한 볕이 내리쬐는 어느 오후
보는 사랍마다 압도될 만큼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저택으로 초라한 마차 한 대가 멈춰 선다
수수한 녹빛원단의 원피스를 입고 당당히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이 여인은 놀랍게도 백작이 아니다.
그녀는 새로 고용된 하녀일 뿐이다.
그러나 저 거침없는 발걸음은 고용주라 해도 믿을만한 자세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능수능란하게 움직였다.
백작은 저택을 떠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그는 새 고용인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즉 저택 내에서 그녀의 행동을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였다.
먼저 주방으로 들어가 키모마일 4잔과 초콜릿 아몬드 코팅으로 뒤덮인 아망도 그라에 최고급 품질의 파인애플을 올리고, 국내산 천연 오일잼을 카마 끝에 발라두라고 덧붙였다.
주방을 나와 4층 백작의 방으로 곧장 들어간 그녀는 대걸레로 바닥을 말끔히 닦아낸 후 탁상에 놓인 서류더미들을 가지런히 정리한 뒤, 하녀장에게 창틀을 청소하라고 지시했다.
하녀장은 못 보던 얼굴에 살짝 당황했지만, 당당한 태도를 보고는 귀족일 것이라 지례 짐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묵묵히 시킨 일을 했다.
야외로 나간 새 고용인은 햇볕에 말려놓은 백작의 옷 가지들을 바구니에 담고는 서재에 있던 책 한 권을 가지고는 백작의 침구에 가져다 놓았다.
그녀는 이 모든 일을 서둘러해 냈다.
그리고는 주택을 따라 이어진 정원 사과나무 밭에서 사과를 따기 위해 손을 뻣었다.
올라간 사다리가 조금씩 기우는 동안에도 하녀의 손은 사과를 향해 있었다.
완전히 몸이 땅에 떨어지기 전 그녀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다.
새 고용인을 받쳐준 것은 그녀가 고용된 대저택의 가주 어투렛 백작이다 때마침 도착한 백작과 상황이 들어맞았던 모양이다.
멀리서 본다면 로맨스 장르 소설의 운명적 만남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하녀의 서글서글한 웃음과는 반대로 어투렛 백작은 그녀를 내려주면서도 나름 심각한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사과 몇 개쯤 나누어 주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위장까지 하고서 사과를 훔치려 한 전적이 있는 모습을 눈 감아 주는 것 과는 달랐다. 백작은 자신의 고용인들을 모조리 기억할 만큼의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 하녀는 고용인이 아니다’
그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다음 말은 모든 근심 걱정들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아울러 가에 새로 고용된 하녀 미샤입니다. 폐를 끼쳐 사과드립니다”
‘고용? 그랬던 적이 있었나?’
어투렛 백작은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도 의심스러웠다 그랬다면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곧 그는 자신의 생각을 철회했다
‘아아 잊고 있었군. 하녀를 뽑았었지 참’
어투렛 백작은 실소를 흘렸다
‘별일이군 그새 잊다니..’
어투렛 백작은 기억력뿐만 아니라 기척 또한 남들보다 예민했다.
항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그 희귀한 능력은 ‘할 일을 할 때에 비로소 사라진다’는 출처모를 소문만이 나돌았다.
그마저도 이제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람들은 저주라고 여겼지만, 어투렛 백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주브르공국은 괴수들이 세대를 걸쳐 꾸준히 출몰하는 지역이었다. 어투렛은 남들보다 우수한 능력 덕분에 더 강한 괴수들을 빠르게 처치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영향으로 왕실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가문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는 대부분 가장 강한 1급 괴수를 상대했는데 그 이유는 그밖에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문의 영향력이 세지자 왕실 4대 가문의 입지는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그들은 평민 출신 어투렛이 귀족 가문의 지위를 가진 것을 평소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투렛 백작이 막 저택 안으로 발을 들였을 때, 안에서는 이미 닭고기 구이가 모락모락 먹음직스러운 김을 내며 따끈따끈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어투렛 백작은 여느 때처럼 끼니를 거르기 위해 주방을 지나쳤지만, 냄새에 이끌려 식탁에 앉았다.
닭고기 구이가 황금으로 된 식탁에 식기에 담겨 올리브 오일이 뿌려진 채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 배가 고프긴 하는 군’
아트렛 백작은 식기를 들고 만찬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릇이 깨끗이 비워졌을 무렵, 백작은 식사를 마쳤다 광택이 나있는 복도를 걸어 집무실로 들어가는 네네 그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백작은 가지런히 놓여있는 서류들을 보고는 다시 한번 멈칫했다.
‘서류를 저렇게 놓고 갔던가?’
찝찝한 기분을 떨 칠 수 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곧 서류 작업에 열중했다.
바로그때! 쾅 소리가 울렸다.
하녀 미샤가 문을 박차고 멋대로 들어온 것이다
그런 주제에 애니에서나 나올법한 흑막 같은 모습으로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미샤가 낮게 깐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쯤 되면 눈치챌 줄 알았는데”
순간 어투렛 백작의 손이 잠시 멈췄으나 그의 반응은 더없이 싸늘했다
“들어오지 말라고 일러두었을 텐데”
명백한 경고에도 하녀 미샤는 가소롭다는 듯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어투렛.. 어투렛!.... 어투렛!!!”
“나가”
역시나 고용인이 든 말든 아랑곳 않고 하녀는 아이 목소리를 흉내 내듯이 말했다.
“저.. 저 쪽에서 있는 걸 봤어요.. 기억 않나?
그다음에 어떻게 되었더라? 빵 하고 펑!”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은 백작이 이번에는 싱긋 웃었다. 그의 손에 들린 계약서가 완전히 짓어졌다
“그래 미샤, 돌아가도 좋아. 다시 올 필요는 더더욱 없지”
그러자 정색을 한 미샤가 입을 열었다.
“같잖은 백작놀음 따위 집어치워!”
“하하”
짧은 웃음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갑자기 진지해졌다
“내가 정말 하녀인 줄 알았다면 잘 못 생각했어 어투렛, 정부가 보낸 스파이다 그리고 암살자 이기도 하지”
숨을 한번 고른 미샤는 품 안에서 꺼낸 총구를 겨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죽는다”
탕
상황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백작은 총을 맞고 쓰러졌다.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전개되었지만 백작은 그 광경을 보는 관객이 아니었기에 피할 수 없었다. 검은 화면이 엔딩을 장식한다.
그렇다 이건 마지막 화이다. 모든 건 정부의 암살자이자 이중 스파이 미샤 화이트의 극일뿐이다. 본래라면 미샤 화이트의 뒷내용이 이어져야 하지만, 마지막 화를 첫 화로, 어투렛 백작을 주인공으로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백작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는 언제 어떻게 뒤틀릴지 모른다. 지금부터는 어투렛 백작이 죽지 않았을 가능성을 전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