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잎 Summer Leaves

by 설렘수채


초록 잎이 빛이나 바람에 일렁거리는 모습은 괜스레 마음이 싱긋싱긋 나긋나긋~여러 감정을 일으킨다.

창문에 빛친 몽환적인 하늘수박의 잎

나는 오래전부터 커다란 종이에 가득히 잎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싶은 식물목록을 적어두고 수정과 삭제를 번복하지만 “잎 모음”은 언제나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목록의 우선순위에 있다고 그리는 순서도 먼저는 아니고 실제 작업하는 것은 각 나름대로 시기가 생긴다.


그 시기가 왔다. 봄의 찔레꽃 작업을 끝내고 여름이 시작되는 7월의 어느 날 나는 초록이 가득한 여름 잎을 당장 시작하고 싶었다.

초록 벽에 초록 담쟁이가 정말 잘 어울린다.

구성은 정해져 있으니 이제 잎마다 작은 속닥거리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식물이 그려진 자리마다 놓인 이유가 생긴다. 이런 이야기는 단순히 얼굴을 맞대는 맞선 같은 그림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가는 흥미로운 나의 그리기 작업이 된다.


주변에 살피기 쉬운 나무 중 우리나라 자생나무로 모아 볼까. 마을 주변을 산책하며 나무들을 둘러보니 의외로 재배종이 많다. 백목련, 은행나무, 산수유의 잎도 아쉽지만 자생식물은 아니어서 이번 작업에선 제외시켰다.





스케치와 트레이싱 Sketch & Tracing


먼저 선택한 잎은 크고, 싱그럽고, 모양도 멋진 담쟁이덩굴 잎이다. 다음은 담쟁이덩굴만큼 크고 시선을 끄는 잎을 찾아본다. 어떤 것은 너무 크고, 어떤 것은 모양이 비슷해서 고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아파트 사거리 모퉁이에 홀로 서있는 모감주나무를 보았다. 잎 크기도 적당하고 모양도 개성 있다.

담쟁이덩굴 잎은 우측 위에, 모감주나무의 잎은 좌측 아래로 균형을 생각해 배치한다. 이제 다양한 모양의 잎을 최대한 많이 수집하면 된다.

1. 모감주나무 2. 수수꽃다리 3. 완도호랑가시나무 4. 측백나무

모든 잎마다 개성이 가득하다.

다양하게 하되 최대한 잎의 모양이 겹치지 않은 것들을 선택한다.

자료사진은 구석구석 찍어 둔다. 잎자루도 가지에 매달린 모습마다 이유 있게 생겼는데 대부분 소홀하기 쉬운 부분이다.

특히 스케치 중에 찍어두는 사진은 정말 중요하다. 스케치를 하면서 식물의 모양과 섬세한 구조 부분을 사진자료로 남겨두면 나중 채색작업에 큰 도움이 된다.

스케치를 한다.
반투명종이(트레이싱지)에 라인을 옮긴다.
선을 옮긴 후 뒷면에 연필로 먹작업을 한다.
수채화 종이에 먹작업 부분을 밑에 두고 선을 그려 스케치를 옮긴다.

>> 트레이싱 작업영상 링크

https://youtu.be/-WVrBPkadeY?si=9EtfMrVeDHoYnLRQ






채색 Coloring


밑색 작업은 대부분 물감 번지기를 이용해 편안하게 작업한다. (번지기/ 종이에 물을 칠하고 물이 마르기 전에 물감을 채색하는 법)

채색을 반만 완성한 작업 컷은 채색 과정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아한다.


1. 밑색은 잎 전체를 번지기로 명암의 밝기를 나타내 주며 채색한다.

2. 번지기로 칠한 밑색이 완전히 마른 후에 필요한 부분에 부분 번지기로 색을 더 올린다. 그리고 세필 붓으로 마른 붓질(물기가 적은 붓질)을 해주며 잎맥을 살려주고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반복적으로 명암과 질감을 나타내 준다. 섬세한 마른 붓질은 마치 뾰족한 연필로 세밀한 묘사를 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담쟁이덩굴 채색 과정/ 수채물감
채색을 마친 담쟁이이정굴의 잎

아래의 모감주나무 잎의 채색 사진을 들여다보면 밑색의 번지기와 이후의 묘사를 차례로 살필 수 있다.

모감주나무의 채색과정 컷

채색할 부분만 오려내고 그 외 부분을 가리는 것으로 채색하지 않는 부분에 물감이 튀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는 마킹이다. 이 마킹작업이 주인공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spotlight) 같은 느낌이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집중이 잘되는 것은 물론이다.

가막살나무 잎

잎의 분위기에 따라 색과 물을 조절해 색을 만들어 낸다.

막살나무 잎의 색은 옐로, 코발트블루, 번트엄버를 주로 섞어 사용했다. 물론 필요에 따라 다른 색도 섞어 사용하지만 이 세 가지 색상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날씬한 등뼈 같은 잎맥을 가지고 있는 느티나무 잎


<심장모양의 수수꽃다리의 잎 채색 과정>

-번지기로 밑색을 칠하고 색이 완전히 마른 후, 다시 번지기로 명암과 색을 더해준다.

-색이 완전히 마른 후, 물과 붓을 이용해 잎맥을 닦아준다.

-이후 세필을 이용한 마른 붓질로 세밀하게 필요한 명암과 질감을 살려 완성한다.


수수꽃다리 잎의 잎맥이 마치 짙푸른 열대우림 같은 영토와 강줄기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으름덩굴의 잎은 손모양겹잎으로 모여나기 하며 달걀모양의 소엽이 5개(또는 6개)로 기다란 잎자루를 가지고 있다. 3줄의 뚜렷한 잎맥은 매력 있고 오목한 잎끝 표현이 매우 즐거웠다.






잠시 붓을 내려놓고 전체를 살펴본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잎들을 서로 어울리게 넣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서로 간격이 너무 붙어도 안되고 반대로 너무 떨어져도 안 된다. 각각 다른 모양이지만 잎의 분위기와 색, 크기도 고려해서 적절하게 놓여야 한다.

아까시나무와 비슷한 회화나무 잎/ 회화나무의 잎은 끝이 뾰족하다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며 치댄 그만큼 그림과 정이 든다. 정들어서 더 예쁘게 표현하고 싶게 만든다.

완도호랑가시나무 잎

완도호랑가시나무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나무는 아니지만, 시골집 오래된 나무로 잎 모음에 꼭 넣고 싶어 채택했다.


버드나무의 잎은 날씬하고 맵시 있다.

식물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모두 특별하다.

여름 잎은 휴식이다.

나무에서 바람과 함께 살랑거리는 모습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28개의 잎 그리기는 정말 즐거웠다. 나는 잎 하나마다 이야기를 상상하며 작업과정을 소풍처럼 즐겼고 완성작은 집안의 휴식이 되었다.


언젠가 스치고 지나는 차에 붙은 글귀가 내 마음에 박혔다. 광고 문구였겠지만 내게는 주문처럼 들린다.

“Green is magic”

김은정 作

여름 잎 Summer Leaves

Watercolor

700 ×5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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