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ese winter-berry current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일으키는 까마귀밥나무는 전국 산지 계곡의 나무 밑에 흔히 자라나는 낙엽활엽관목인데, 높이가 1~1.5m 정도로 키가 작아 관상용으로 길가에 심어놓기도 해서 관찰하기에도 좋다.
이상하게도 까치와 비교당하는 까마귀는 불길하다거나 흉조로 여겨져 왔는데, 실제 알고 보면 어미가 날지 못하게 되면 자라난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 나른다 하여 효심이 가득한 새라는 반전도 있다.
어찌 되었든 까마귀가 먹는지 안 먹는지 알 수 없어도 까마귀 밥이라 이름 지어진 이 나무열매는, 독성은 없지만 맛도 너무 없어서 까마귀나 먹어라 하는 심정으로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이름이 혼동될 법한 까치밥나무속의 식물들과 비교해 보면, 빨갛고 작고 반투명한 열매 알은 유사하지만, 가지에 가시가 없고 잎겨드랑이에 몇 개씩 꽃과 열매가 달리는 점, 잎의 거치가 뭉툭하고 완만한 점 등의 차이가 있어 다음에 까치밥나무속의 식물들을 만나면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내게 다가온 까마귀밥나무의 가장 큰 매력은 조롱조롱 매달린 빨간 열매였다. 구스베리를 닮은 투명한 듯한 알맹이가 귀엽기도 하고, 잎겨드랑이 사이에 두세 개씩 매달려있는 모습도 좋았는데, 풍부한 색감으로 물든 가을 잎은 또 얼마나 멋지던지 아름다움의 경중을 가리기 어려웠다.
꽃과 잎과 열매의 모양을 자세히 관찰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스케치하고 치수를 재서 크기와 비율을 기록해 두면, 사진과 자료에 근거해 원하는 구도를 스케치할 때 매우 도움이 된다.
실제로 눈앞에 두고 작품의 전 과정을 같이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채집이 어려운 식물이거나, 꽃 열매 등 시기가 다른 구성으로 작품을 계획하거나, 채집하더라도 빠르게 시들거나 보존이 어려운 경우 등등의 이유로, 눈앞에 두고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능하면 해당 시기마다 최대의 정보를 모으고 눈으로 관찰하고 구체적인 사진과 기록으로 자료를 남겨 참고하는 수밖에 없다.
열매가 어느 정도 익었는지 관찰하러 갈 때마다 우수수 바닥에 떨어져 있어 마음이 안타까웠다. 스케치를 완성할 때까지 열매가 풍성하게 달려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익기도 전에 너무 빨리 떨어져 버려서 작년 자료를 위주로 하여 밑그림을 완성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무 밑에서 주워 온 열매를 잘라보고 예상외의 씨앗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했는데, 물컹하고 투명한 과육 사이에 조그만 삼각모양의 씨앗이 꽉 차 있어 까마귀라도 정말 먹을 것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구도 잡기에 앞서 어떻게 표현하면 이 예쁜 아이들을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해도 100%의 확신은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손을 움직여 스케치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의 미약한 의지만 남아 있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가지를 하나씩 스케치하고 트레이싱지에 옮겨 각각 나열해 보고 겹쳐보고 뒤집어보고 방향을 바꾸어 보고 불필요한 요소를 잘라내거나 또는 맘에 드는 부분을 추가해 가는 과정을 통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은 채색에 들어가기 전까지 밑그림을 몇 번이고 수정해 가면서 빈 공간과 요소의 각도, 겹침, 색감 등을 고려하는 과정으로, 뒤늦게 채색 과정에 변경하는 경우도 있으니 완성 후에도 어찌 보면 최선을 다한 듯하면서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게 되곤 한다.
이번 까마귀밥나무 작품은 결국 처음 느꼈던 열매의 매력을 그대로 풀어놓아 보여 주는데 집중하여 구도를 완성하였다. 주제가 되는 식물의 매력 포인트를 단번에 잡아서 제대로 그려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쩌랴 나는 그냥 이런 자잘한 고민과 실패의 과정을 모두 겪어보아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니 그저 완성한 것으로 내 마음을 다독거려 본다.
까마귀밥나무의 가지는 연한 녹색을 띤 회백색이기도 하고 연한 자줏빛을 띄기도 한다. 새 가지는 매끈한 편이지만 묵은 가지는 회백색의 껍질이 갈라지면서 벗겨지고 짙은 색의 속살이 드러나는데, 오래된 줄기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표면을 가지고 있다.
열매는 녹색이었다가 노란빛을 띠는 주황색에서 짙은 빨강으로 바뀌어가며 익는데 차례로 꽃이 피었던 것처럼 순서대로 익어가는 모양이다.
변해가는 열매의 색 표현은 레몬옐로우와 퍼머넌트샙그린을 섞어 노란빛을 띤 녹색 열매에서, 크롬옐로우딥과 크롬오렌지를 섞어 점점 오렌지빛을 띠다가 스칼렛레드를 사용하여 빨갛게 익어가는 색으로 표현하였으며, 동그란 형태에 음영을 주기 위하여 어두운 딥레드와 번트시에나, 번트엄버, 때로는 페릴린그린을 섞어 열매마다 조금은 다양한 음영색으로 깊이감을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까마귀밥나무의 열매는 암꽃 아랫부분의 씨방이 자라나 동그란 구형을 갖추게 되고, 꽃잎이 떨어진 자리는 움푹 파인 우물형태가 되어 빛이 들어가지 않으므로 가장 어두운 음영을 가지게 된다.
동그란 열매는 맑게 여러 겹으로 채색이 이루어지는 수채화의 특성상 여러 단계에 걸쳐 채색이 겹쳐지게 되지만, 작고 반투명하게 살짝 반짝거리는 열매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색으로 물든 까마귀밥나무의 가을 잎은 올리브그린을 주색으로 사용하고 네이플스옐로우와 번트시에나, 페릴린그린을 때때로 섞어 전체적으로 통일감 있으면서도 다양한 색감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잎 채색 과정은 물 칠하기, 번지기와 겹치기, 말리기와 마른 붓질의 무한반복이다.
노랑, 분홍, 붉은 톤으로 다양하게 물든 잎과 잎맥의 색과 모양을 잘 관찰해 가며 하나하나 채색하는 과정도 매우 재미있어서 작업이 즐거웠다.
작품을 시작할 때는 알알이 빨갛고 동그란 열매에 혹해서 빠져들었다가, 작품이 끝날 때쯤에는 미묘하고도 환상적인 색감으로 물든 잎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어서, 마무리작업은 잎에 집중된 관심을 열매로 돌려 열매가 작품의 포인트가 될 수 있도록 한동안 더 공을 들여야 했다.
배경이 없는 보타니컬아트는 모든 효과와 관심을 오롯이 그려내는 식물에 몰아주는 그림이다.
간혹 배경에 효과가 들어가기도 하고 풍경처럼 그려내는 작품들도 있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식물에 충분히 집중하게 하면서도 멋지게 어울리는 효과를 내는 배경이란 어차피 자연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이 도전적인 과제는 항상 망설이게 된다.
고민을 마음 한편에 간직한 채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냥 담백하게 그려낸 이 까마귀밥나무가 조용히 매력 발산하여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겨 주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