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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그 자리 그대로, 올리브나무

올리브[Olea europaea]; 믿는 그대로

by 활자정원


Olea europaea

"믿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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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관상용으로도 올리브 나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뾰족하고 비교적 가느다란 잎사귀들이 피어있는 얇은 외목대의 어린 묘목들. 이런 섬세한 모습에 매력을 느껴 야생의 모습을 검색해보면, 검색된 이미지들에 흠칫 놀랄 수 있다. 화분에서 봤던 모습과 달리 굉장히 건장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 지중해의 햇살을 받으며 자란 올리브나무는 높이 십 미터 남짓, 수형은 낮고 가지는 불규칙하게 뻗어 있으며, 몸통은 굴곡이 많고 거칠다. 존재를 알리기 위해 키를 키우지도 않으며, 거대한 잎이나 화려한 꽃 대신 오직 스스로와의 싸움을 택한 나무. 달달한 맛보다 풍요의 향을 품은 올리브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올리브 나무는 확실히, 쉬운 삶을 살지 못했을 모습을 하고 있다. 세월에 따라 구부러지고 갈라진 그 몸은 오랜 구도자의 손등처럼 거칠고 숭고하다. 갈라진 틈마다 응답이 새겨져 있는 듯한 그 거친 목질 안에는 천 년의 흔적이 존재한다. 시간이 지나 속목은 썩지만, 새로운 목질이 그 주변을 감싸며 다시 살아난다. 어쩌면 죽음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구조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줄기 안에서 죽은 세포와 살아 있는 세포가 공존하며, 점차 시간의 조각상이 되어가는 듯하다. 또한 이 울퉁불퉁한 형태는 전정과 수확의 흔적이며, 가지치기를 하는 과정에서 줄기가 틀어지게 되고, 그렇게 버텨온 모든 흔적이 몸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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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딸막하고 옹이 투성이인 이 나무는 놀라울 정도로 열과 가뭄, 상처에 강하다. 수령이 천 년을 거뜬히 넘고 평생 열매를 맺는다. 불에 타도 뿌리에서 다시 싹을 틔우고, 가지가 잘려도 새 생명을 내미는 강인한 성질을 가졌다. 히브리어 ‘zayit’과 아랍어 ‘zeytoun’은 모두 밝음을 뜻하는 공통 뿌리에서 비롯되었다. 그 이름처럼 올리브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존재며, 갈라지고 뒤틀린 그 모습 또한 믿음직하다. 단단하게,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내는 것—있어야 할 그곳에 항상 있어주는 것이 이 나무의 본질이다.


긴 역사와 함께하는 올리브는 문헌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식물 중 하나다. 2,000년 전 로마 시인 호레이스는 “나는 올리브, 상추, 제니아오이 샐러드로 충분하다”고 썼다. (“Me pascunt olivae, me cichorea, me malvae”) 그리스 크레타 섬의 ‘부브스의 올리브나무’는 수령이 3,00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열매를 맺는다. 은빛 잎사귀를 바람에 흔들며 울퉁불퉁한 몸으로 계절마다 자신의 자리를 다시 확인하는 나무. 적어도 글로 기록된 역사를 모두 경험했을 긴 시간 동안, 올리브는 변함없이 인류의 곁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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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나무는 ‘믿는 그대로’의 상징이다. 갈라지고 일부가 썩어가도 새로운 줄기를 틔우며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끝까지 지킨다. 그 끈질긴 생명력은 언젠가 풍요가 찾아오리라는 믿음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낮은 자세로 악수를 건네듯, 마른 가지와 푸른 잎이 한 몸이 되어 서 있는 올리브는 화려하지 않아도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그저 버티는 것의 가치를 보여준다. 천 년을 같은 자리에서 열매를 맺는 그 나무처럼, 우리 또한 상처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고 믿음을 잃지 않은 채 자신만의 자리를 지킬 때 비로소 진실된 풍요를 만난다. 그것은 화려한 결말이 아니라 은은한 향기로서, 지금 내가 믿는 그대로 살아가는 그 단단한 삶의 태도를 배워본다.




PLANT INFORMATION


식물계(Plantae)ㆍ피자식물문(Angiospermae)ㆍ쌍떡잎식물강(Magnoliopsida)
꿀풀목(Lamiales)ㆍ물푸레나무과(Oleaceae)ㆍ올리브나무속(Olea)


올리브나무속(Olea)에는 약 30여 종이 있으며, 그중 대표적인 종은 유럽 올리브(학명 Olea europaea)로, 주로 지중해 지역이 원산이다.

잎은 타원형으로 길고 뒷면이 은백색을 띠며, 사계절 푸른 상록성 잎이 특징이다.

봄철에 작고 연한 황백색의 꽃을 피운 뒤,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녹색에서 자주색, 검은색으로 익어가는 핵과(核果)를 맺는다. 이 열매는 식용유(올리브유)의 주요 원료로 쓰인다.

평균 수고는 3~10m 정도이며, 수령이 수백 년에 이르는 장수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건조하고 석회질이 많은 토양에서도 잘 자라며, 강한 햇빛과 온난한 기후를 선호한다. 내염성(耐鹽性)과 내건성(耐乾性)이 뛰어나, 해안가나 건조 지역에서도 생육이 가능하다.

관상용으로는 왜성 품종이나 어린 묘목이 많이 식재되며, 상징적으로는 평화와 번영, 인내의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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