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끓이다

하얀 시간을 떠먹으며

by 아르망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같은 떡

칼자국 깊은 나무에 올리고,


한 입에 다 삼킬 수 없는 긴 시간

동전만 하게
툭, 툭 썰어낸다.


싱거운 하루 같은 국물에

말린 바다 조각 띄워 깊은 물길 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차오른

그 짙은 시간

사람 사는 맛.


딱딱했던 어제와
차가울 내일도

뽀얀 품에 잠겨

순하게 풀어지고,


그 위로 고명 얹으니

밋밋하던 날들에
표정이 생긴다.


햇살 같은 지단

웃음으로 머물고,

매운 파가

입안에 불을 켜니,

까만 김 가루 사이

빛이 쉬어가는 날도

내려앉는구나.


그렇게 얹힌 것들이
뜨거운 김 속에서

서로의 이름을 잊을 때에야


우리는 마주 앉아 호호 불며

하얀 시간을 떠먹는다.


숟가락 오갈 때마다

속 깊은 곳에

둥근 햇살 하나 떠

환하게 비추니


낯선 나이도 체하지 않고

이젠 따뜻하게 삼킨다.


싱겁지 않게,

참 맛있게

한 해.



새해 아침, 뽀얀 김이 피어오르는 떡국 그릇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하얀 시간을

몸 안으로 들이는 게 아닐까, 하고요.


지난해의 고단함이 천천히 우러난 깊은 국물에,

딱딱하게 굳어있던 마음들도 노곤하게 풀려듭니다.

아직 간이 배지 않은 하루하루가 싱겁지 않도록,

이런저런 색들을 섞어 천천히 풀어 봅니다.


어떤 맛이 될지 너무 앞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뜨거움도, 매운맛도 결국은

우리의 속을 든든히 채워 줄 힘이 될 테니까요.


그렇게 한 술 따뜻하게 넘기고 나면,

뱃속 깊은 곳에 환한 태양 하나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그 햇빛을 숨처럼 품고, 올 한 해도

삶의 깊은 맛을 우려내며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새해, 여러분의 모든 계절이 맛깔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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