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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지구와 스킨십

아이들 발에 묻은 흙처럼

by 아르망

주말이 가까워지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있어요.
바로 날씨입니다.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날씨가

정신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지요.


네 명의 아이가 집 안에 가득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아, 전율이 온몸을 훑습니다.


기쁨의 전율이면 좋겠지만…
웃음보다 빡침이 더 가까운, 짜릿한 전율이죠.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

아이 넷과 함께
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그 순간, 집은 쑥대밭이 되고, 전쟁터가 됩니다.
발 디딜 틈 없이 흩어진 장난감과 쏟아진 간식들.
귓가엔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아이들 목소리—
떠드는 소리, 웃는 소리, 울음소리, 소리소리소리들...


그래서 저는 늘 주말 날씨에 민감해요.
속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제발… 이번 주말엔, 햇님이 쨍쨍 떠주길…”


마침내!
날씨 앱을 여는 순간—
고등학생 시절, 시험 성적 확인하듯

눈을 감았다가 슬쩍 떠봅니다.
그리고…!
햇님이 당당하게 떠 있네요!!
“야호~~~~!!”


토요일 아침, 눈이 번쩍 떠집니다.
아이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저는 이미 신속히 준비 완료.


“얘들아! 오늘 숲에 간다~!”

아이들도 환호성을 지릅니다.

자연이 주는 기쁨은 어쩐지 본능 같아요.

식량, 물, 구급상자까지 챙긴 뒤 출발!


초록이 짙은 숲에 도착하자,

입구에 걸린 안내문이 눈에 띕니다.


‘맨발 걷기의 효능’

혈압 감소, 숙면, 스트레스 해소..


‘그래, 요즘 뒷목 잡는 일이 너무 많았지.

얼른 해야겠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가지런히 옆에 내려놓습니다.

그러자 아이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던지고는

깔깔대며 뛰기 시작합니다.


맨발로!!



3살 막내도 저 작은 발로 달립니다.
“맨발로 어떻게 저렇게 잘 달리지…?”


저는 감탄과 동시에 “아야, 아야~”를 외치며

조심조심 걷습니다.

아이들은 마치 날아다니듯 흙길을 뛰어다닙니다.
발바닥으로 느끼는 흙의 감촉이 마냥 신기한가 봐요.


“발바닥이 간질간질해!”
“이끼는 푹신푹신해! 흙은 따뜻하고!”
“저 앞에 나무까지 누가 먼저 가나 해보자~!”


아이들은 흙을 밟고, 돌을 딛고,

막대기를 들고 탐험가가 됩니다.
숲 속은 어느새 거대한 놀이터이자 교실이 됩니다.


그러다 문득
‘신발을 신은 발은 보호받지만,
우린 평생 그렇게만 살 순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보호막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흙을 밟고, 더디고 아프게 걷는 것도
참 괜찮은 일이라는 걸,
이 날 알게 되었어요.


“지구는 생각보다 더 부드럽고,

재밌는 곳이야.”


막내의 발가락에 보송보송하게 묻은 흙.
작은 참새 같던 아이가 어느새 숲을 날아다니며
작은 성취의 미소를 머금고 저를 올려다봅니다.


그 표정을 보며, 저도 함께 웃었어요.
집이었다면 스트레스였을 흙 묻은 발이
오늘은 왜 이리 사랑스럽고 귀엽던지요.


그날, 아이들은 저에게
책이 아닌 흙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었습니다.


아이들 발가락 사이의 흙, 웃음소리,
흙먼지 속 반짝이던 눈동자들—
그리고 발바닥으로 느낀 행복.


그날 저녁, 아이들의 발을 씻기며 생각했어요.
‘이 흙, 이 기억, 이 웃음...
너희 마음에 오래도록 남기를.’


제 마음 한 켠에도 부드러운 흙이 깔렸습니다.

아이들이 그 위를 마음껏 웃으며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햇살 가득한 주말을 다시 기다립니다.
작은 선생님들이 가르쳐준

'맨발의 수업' 가슴에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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