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도 아름다울 모래성
오늘도 놀이터 모래사장에는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3살, 5살, 7살, 그리고 9살인 네 개의 작은 별이지요.
모래로 가득한 행성에서 온 네 명의 우주인들은
고향에라도 온 것처럼 모래 속에
자신을 듬뿍 담그며 행복해합니다.
모래와 기꺼이 하나가 되기 위해 손과 발은 물론
팔꿈치와 무릎, 심지어 머리끝까지 모래범벅이 됩니다.
처음엔 작고 소박한 구덩이로 시작했지요.
시간이 흐르자 길이 이어지고, 동굴이 뚫리고,
경기장이 생기고, 도시가 올라서고,
모래산이 솟고, 성이 세워졌습니다.
손바닥으로 모래를 퍼올리고,
삽으로 땅을 깊게 파더니
작은 나뭇가지를 가져와 장식하고,
꽃잎과 나뭇잎도 살금살금 모아 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모래알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언어가 되어 가고,
누구 하나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설계자, 장식가,
모험가, 건축가가 되어갑니다.
아이들은 단순히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아있는 모래의 세상 속에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지었다가 허물기도 하고, 다시 또 짓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시간들이
모래알처럼 늘어나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 옆에서 벌을 받듯 오래 서있었지만,
아이들은 세상 모든 것을 잊고
몇 시간이고 집중해 작은 우주를 만들었습니다.
햇빛이 머리 위에서 뜨겁게 내려와도,
손과 옷과 얼굴과
마음 깊은 곳까지 모래가 번져도
아랑곳하지 않았지요.
놀이터의 시간은 모래시계 속의 모래알처럼
가느다랗게, 천천히 흘렀습니다.
태초부터 이어진 시간은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듯
아이들의 모래와 함께 여유 있게 흐릅니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아이들은 모래가 쉽게 허물어진다는 것을 알고도
모든 마음과 정성을 다해 무언가를
만들고 또 만들었습니다.
‘사라질 것을 알고도 계속하는 용기와 열정’을
가진 아이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바람 한 줄기에도,
무심한 발자국에도
손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시 시작하는 걸
즐겁고 멋진 일처럼 여겼습니다.
무너지고 다시 시작하는 순간마다
모든 것이 설레는 ‘처음’이 되어
아이들은 계속,
다시 새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어른인 저의 앞에도 수많은 모래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살아오면서 그 모래들로 많은 것을 만들고 싶었지요.
하지만 만들었던 모래들이 무너질까 봐, 실패할까 봐,
망설이고 망설이다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 날이 늘 많았는데—
아이들은 그 망설이는 시간조차 아까운 듯
거침없이 도전하고 또 도전합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모래성 짓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 손끝에 모래를 가득 묻히며
무언가를 만드는 마음을 언제부터 잊어버린 것일까?
언제부터 손끝에 모래가 아닌
근심과 걱정만 쥐게 되었던 걸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저의 앞에는
오늘도 자신의 몸과 모래 사이에
꿈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모래성이 무너져도
그들의 눈빛엔 좌절이 없었습니다.
언제든,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이 빛납니다.
그 희망의 모래 소리가
마침내 제 마음에도 닿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무너짐은 끝이 아니라
다시, 더 멋진 ‘처음’으로 가는 문임을.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이라는 것을.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손끝에 모래를 마음껏 쥘 수 있다면,
늘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하지만 이제는 비록 어른일지라도
지금, 나만의 모래성을 만들기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바람이 우리가 애써 만든 모래를 결국 지울지라도,
모래 위에 쌓았던 도전과
그 위에서 나눈 웃음까지는 결코 지우지 못할 테니까요.
그날, 놀이터의 모래는 어디까지가 땅이었고
어디까지가 꿈이었을까.
저는 오늘도 그 경계 위 어딘가에서,
사라져도 아름다울 나만의 모래성을
계속 지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