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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바다와 친해지는 3단계 과정

모래가 온 세상에 가득해요

by 아르망

햇살 가득한 어느 날,

아이들과 오랜만에 바닷가로 놀러 갔습니다.


사는 곳이 바다에서 10분 정도 거리여서

마음먹으면 매일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자주 가지는 않아요.


그 이유는 끝까지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물을 어쩜 이렇게도 좋아하는지!!

물만 보면 웃음 가득 행복해지는 애들을 보며

물에서 태어난 아이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집에서 잘 안 씻으려 할 때도

얘들아 물놀이하자~하며 욕조에 물 받아놓으면

금방 수영 선수들처럼 옷을 훌러덩 벗고

즐거이 들어갑니다.


이 날도 그랬습니다.

아이들은 바다를 보자마자 고향을 찾아온 물고기들처럼 돌진하며 달려갔습니다.


이때는 아직 아이들을 말리지 않아도 됩니다.

곧 거대한 장벽을 만난 듯

멈추어 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우사인 볼트처럼 뛰어가던 아이들은

밀려오는 파도와 거대한 바다의

위압감에 멈추어 섭니다.


이제 바다와 친해지는 과정 1단계,

놀이 친구 탐색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바다가

마치 어색한 친구처럼 느껴지는지

바라보기만 합니다.


바다도 말없이 애들을 바라보고

애들도 바다를 말없이 바라봅니다.

마치 처음 만난 놀이 친구를 탐색하듯

서로를 요리조리 살펴봅니다.


어릴수록 이런 탐색의 시간은 더 길어집니다.

첫째와 둘째는 어느덧 장난기가

슬슬 발동하는 모습이지만,

셋째와 넷째는 아직 요지부동입니다.

파도의 위력 앞에 얼어붙은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파도는

아이들에게 '내가 이렇게 크고 강한데

나랑 친해질 수 있겠어?'

하고 계속 되묻는 것만 같습니다.


특히 3살 막내는 한참이나 바닷가의 조약돌 같은 눈으로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파도가 조금이라도 가까이 오면 얼른 멀리 달아납니다.


하지만 이런 시련쯤이야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우리 작은 선생님들은 금방 극복해 냅니다.


파도가 쏴-하고 밀려오면

아이들은 와~하는 탄성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나고

또 그러기를 무한 반복합니다.


마치 우리 어릴 적 하던 놀이 같습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바다와 함께 하는 이 놀이에 아이들은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바다도 재미 들었는지 싫증 내지 않고

계속 왔다 갔다 아이들과 놀아줍니다.



이 무한반복 놀이는 어느 누군가

파도의 습격을 당하면 끝이 납니다.


이제 바다와 친해지는 과정 2단계,

파도와의 스킨십이 시작되었습니다.


으아아~~~아아!!

역시 이번에도 막내가 제일 먼저 파도에 걸렸습니다.

막내의 두 발을 파도가 가장 먼저 잡았던 것입니다.

파도가 미소 짓는 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스킨십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바다가 해주는 스킨십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파도가 막내의 두 작은 발을 어루만져주자마자,

너도나도 자신의 발도 어루만져 달라고

파도를 향해 앞다투어 들어갑니다.


바다와 급속도로 친해진 아이들은

어느새 양말도 젖고 바지까지도 젖었습니다.


길게 적었지만

사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매의 눈을 가지고 잘 지켜보고 있었는데..

분명 잘 보고 있었는데..


그때 폰에서 브런치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면..

라이킷 알림에 더해 댓글 알림까지 울리는 바람에

기쁨을 참지 못하고 잠시만 확인한다는 게 그만!!


지나치게 행복한 아이들의 소리에

아차하고 고개를 드니 역시..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아이들의 새로 입힌 옷(!!)들도

어느덧 바닷물에 푹 젖어버렸습니다.


저는 자연스러운 것처럼,

원래 그렇게 하려고 한 것처럼

모든 걸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이제 바다와 친해지는 과정 3단계,

바라만 보아도 좋은 바다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더 이상 바다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게 하자,

이제 아이들은 바다와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마치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행복한 고슴도치의 사랑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행복하게

사랑할 수 있는 법을 찾은 아이들은


파도가 적당히 어루만져주는 거리에서

모래성을 쌓기 시작합니다.


모래 속에 구덩이를 파더니

물이 얼마나 들어갈 수 있나

과학 실험을 시작합니다.


이미 옷은 모래 범벅이 되어 마치 물과 모래에서

새로운 인간이 탄생한듯한 모습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하니 그걸로 된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억지웃음을 짓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바다와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단계가 되었습니다.


밀려오는 파도만 보아도

해맑게 깔깔 거리며 노는 모습에

이제는 그저 미소 지으며 바라봅니다.




어색함 파도에 실려 보냈더니

손 내미는 친구가 되어 다시 밀려오고


웃음소리 실려 보냈더니

노래가 되어 다시 밀려오고


회색빛 스트레스 실려 보내니

푸르른 즐거움이 되어 다시 밀려오고


작은 바지 파도에 실려 보냈더니

장난기 가득한 모래가 수도 없이 들어왔어요.


집에 와서 보니 아이들의 바지 주머니마다

모래가 수도 없이, 끝도 없이 나오네요.

다시는!! 바다에 가지 않으리!!

굳게 다짐하면서 애벌빨래를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했습니다.




물론 언젠가 또 가게 되겠지만요.


아이들과의 추억

파도에 실려 보냈더니

그리움이 되어 다시 밀려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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