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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련 Jun 06. 2021

손가락의 약속과 주먹의 약속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 - 목공06>

언어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언어의 자의성'이다.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지만 한 마디로 언어의 내용과 형식이 필연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어떤 말이 가리키는 사물이나 개념(내용)은 같아도 그것을 일컫는 말, 문자(형식)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말로는 '나무'라 하지만 영어로는 tree라 하고, 중국어로는 木 [mù], 일본어로는 木き[ki]라고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언어의 가장 기초적인 특성이기도 하고 우리가 흔히 접하기도 하는 사례이니 그리 신기할 것은 없다. 그런데 아무리 자의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것도 많다. 목공에서도 그렇다. 혹시 옛날 가구나 목공방에서 제작한 고급가구의 결합방식을 유심히 살펴보신 적이 있는가? 가구의 결합면을 보면 나사못 같은 것은 전혀 없이 두 판재가 맞물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먹 혹은 비둘기꼬리, 이런 방식의 나무 결합은 매우 오래된 방식이다.

이런 가구를 흔히 짜맞춤 가구라고 하는데 각각의 일정한 모양으로 깎고 다듬어 서로 딱 맞게 결합한 가구란 뜻이다. 결합을 위해 만든 부분을 ‘장부’라고 하는데 분류방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종류만도 10여 가지가 된다. 그 중에 가구처럼 판재와 판재를 결합하는 데 쓰이는 사각형의 장부가 부르는 이마다 언어마다 차이가 있어 흥미롭다.


‘사각형’은 직선 네 개가 막힌 상태로 연결되기만 하면 되니 꽤 여러 종류가 있다. 사각형은 각도 네 개이지만 변도 네 개인데 네 개의 변 중 두 개가 평행인 사각형도 있다. 사실 사각형 중의 사각형인 정사각형도 이 조건을 만족시키지만 딱 이 조건만 만족시키는 사각형을 우리는 ‘사다리꼴’이라고 부른다. 아래는 넓고 위가 좁은 것이 마치 사다리 같다고 해서 이리 부르는데 자연계에 이런 모양이 꽤 많으니 뭐라고 이름을 붙여도 상관이 없다.


이 사다리꼴은 목공에서 매우 유용하다. 한쪽이 넓으니 이 모양으로 끼워 맞추면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무와 나무를 결합할 때 사다리꼴 모양으로 딱 맞게 가공해 끼워 맞추는 방식을 제일 많이 쓴다. 그런데 이 사다리꼴의 사각형을 이름이 저마다 다르다. 영어로는 ‘도브 테일(dove tail)’, 즉 비둘기 꼬리이고, 중국어로는 ‘연미(燕尾)’, 곧 제비꼬리이다. 일본어로는 ‘아리(あり, 蟻)’인데 개미를 뜻한다. 무엇이라 부르든 결국 두 변은 평행하되 한쪽은 넓고 다른 한쪽은 좁은 모양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럼 이러한 결합을 우리말로는 뭐라 할까? 우리말로는 주먹장이라고 한다. 주먹의 모양을 잘 살펴보면 왜 이런 이름이 지어졌는지를 금세 알 수 있다. 주먹을 쥐고 손등 쪽에서 바라보면 사다리꼴이다. 그 단면이 사다리꼴이니 비둘기, 제비, 개미와 결국은 마찬가지다. 이런 결합의 이름이 언어마다 다르지만 이미 있는 사물의 이름을 빌어 만들어졌으니 어느 정도의 필연성은 있다.


주먹장, 한쪽으 사다리꼴이고 다른 한쪽은 직사각형이다. 나무의 마구리면이 노출되기 때문에 색다른 아름다움도 준다.


그런데 주먹장이란 이름은 생각하면 할수록 잘 지은 이름이다. 이 방식으로 결합해 놓은 것을 보면 한쪽 면의 마구리는 사다리꼴이고 다른 쪽 면의 마구리는 직사각형이다. 이러한 결합 모양을 만드는 것은 꽤나 복잡하고 정밀도도 요한다. 그러나 딱 맞게 가공해서 풀칠을 한 후 결합하면 단단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그것을 우리는 ‘주먹장’으로 부르는 것이다. 본래 모양을 보고 ‘주먹’이라 한 것이지만 이 말에서 힘이 느껴지지 않는가? 왠지 영원히 분해되지 않을 듯한 느낌을 준다.


이와 비슷한 장부 결합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쉬운 방법도 있다. 주먹장으로 결합한 것은 사다리꼴과 직사각형 두 종류의 마구리면이 나오는 데 반해 양쪽면 모두 직사각형의 마구리면이 나오는 방식이다. 주먹장처럼 사다리꼴이 나오게 하려면 톱질을 비스듬히 해야 하는데 이 방식은 그럴 필요 없이 요철(凹凸)이 생기게 따내고 맞추면 ㄷ한다. 우리말로는 ‘사개’라고 하는데 잘 안 쓰는 말이지만 빗살처럼 일정하게 따내서 들쭉날쭉한 촉이 있는 것을 뜻한다.


사개맞춤 혹은 핑거조인트, 양쪽면 다 직사각형이다.


이 방식은 영어 이름이 훨씬 더 직관적이다. 영어로는 ‘핑거 조인트(finger joint)’라 하는데 말 그대로 손가락 결합이다. 손가락으로 깍지를 끼듯이 결합이 되니 이런 이름이 붙었다. 중국에서도 ‘지접순(指接榫)’이라고 하는데 손가락으로 결합하는 장부라는 뜻이니 결국 영어와 같은 말이다. 이 방식은 가공하기 쉬운 대신 결합력은 약하다. 끼워진 마구리가 직사각형이니 사다리꼴과 달리 어느 방향으로든 쉽게 빠질 수 있다. 결합할 때 접착력이 좋은 목공본드를 쓰니 단단하게 붙기는 하지만 세월이 지나 본드가 힘을 잃게 되고 나무가 뒤틀리고 삭으면 쑥 빠질 수밖에 없다. 이 상태가 되더라도 주먹장은 빠지지 않는데 말이다.


우리는 약속을 할 때 손가락을 건다. 새끼손가락을 거는 것도 부족해서 엄지로 도장을 꾹 찍는다. 약속을 할 때는 그 마음이 풀처럼 스며들어 영원할 것 같다. 그런데 풀은 말라서 없어지기도 하고, 충격에 깨지기도 하고, 습기 때문에 성질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영원한 약속은 없다. 끼울 때는 빡빡해서 영원히 빠지지 않을 것 같은 사개, 혹은 손가락이 어느새 헐거워진다. 그리고 약속이 깨진다.


손가락의 약속 말고 주먹의 약속은 어떨까? 가냘픈 손가락의 힘에 기대는 것보다, 그 사이를 채우는 풀에 기대는 것보다 한 번 결합되고 나면 절대로 빠지지 않는 주먹의 약속은 어떨까? 손가락의 약속보다는 훨씬 더 오래오래 갈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약속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안 해도 될 것이다. 세월 속에서 틀어지고 삭아가더라도 ‘약속(約束)’은 말 그대로 굳게 묶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주먹장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이 매력을 이해하려면 주먹장에 대한 의문을 먼저 가져야 한다. 사개맞춤은 양쪽 마구리면이 모두 사각형인데 주먹장은 왜 한쪽은 사다리꼴이고 다른 한쪽은 직사각형일까? 이왕이면 양쪽 다 사다리꼴이면 더 완벽하게 결합되고 ‘죽어도’ 안 풀리지 않을까? 이에 대한 답을 하려면 공간지각력이 좀 필요하다. 꼭 이런 지각력이 아니더라도 음양의 조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주먹장의 마구리면 모두가 사다리꼴이면 나무를 박살내지 않는 한 영원히 풀리지 않는 것은 맞다. 그런데 문제는 양쪽 마구리가 모두 사다리꼴이면 결합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주먹장으로 결합을 하려면 직각으로 만나는 두 개의 판재를 톱과 끌로 가공을 해야 한다. 한쪽은 판면에 사다리꼴을 만들고 다른 한쪽은 마구리면에 사다리꼴을 만든다. 판면에 새의 꼬리가 있는 것을 ‘암장부라’하고 영어로는 ‘테일(tail)’이라 한다. 그리고 마구리에 새의 꼬리가 있는 것을 ‘숫장부’라 하고 영어로는 ‘핀(pin)’이라 한다. 이렇게 가공한 후 풀칠을 해서 톡톡 밀어 넣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결합할 방법이 없다. 음양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둘 다 사다리꼴로 한다면 숫장부만 둘을 만드는 형국이 되니 둘을 맞출 수가 없다. 흙으로 빚어가면서 만든다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이미 딱딱하게 모양이 갖춰진 나무는 어찌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주먹장이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들어갈 방법이 있어야 결합이 되니 최소한의 길은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일단 약속을 해야 약속을 지키든 깨든 할 수 있다. 주먹의 약속은 이 길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정말 원한다면 빠져나올 길도 있으니 더 인간적이다. 암장부와 숫장부를 결합해 놓은 뒤 좌우 방향으로는 아무리 힘을 써도 절대로 안 빠진다. 그러나 꼭 빼야 한다면 위아래로 뺄 수는 있다. 물론 본드가 없거나 힘을 못 쓸 때에나 가능하다. 빼내고 나면 여기저기 상처가 남지만 그래도 빠지긴 한다. 아무리 주먹의 약속이라도 깨야 한다면 길이 있다는 것이다. 상처는 남더라도. 그래도 주먹의 약속을 했다면 좌우로만 움직이는 것이 좋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서로의 결합을 더 강하게 느낄 테니.


주먹장의 세계로 더 들어가 보면 다른 종류의 재미있는 주먹장도 있다. 우리말로는 ‘반턱주먹장’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half blind dovetail joint’라고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한쪽면은 마구리가 안 보이게 하는 것이다. 고급 짜맞춤 가구의 서랍 중에 앞판을 서랍의 나머지 부분과 다르게 썼는데 옆에서 보면 앙증맞게 비둘기 꼬리가 파고들어가 있는 것이 바로 이 방식으로 결합한 것이다. 앞면은 통판으로 보이되 옆면만 비둘기 꼬리니 반턱주먹장이라 하는 것이다.


반턱 주먹장, 한쪽의 사다리꼴만 보인다. 색과 결의 대비가 뚜렷한 나무로 결합하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이름이 어렵고도 길지만 ‘숨은연귀주먹장’이란 것도 있다. 연귀는 45도로 두 면을 맞추는 것을 뜻하는데 결합될 판재의 안쪽면을 45도로 쳐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는다. 그 안쪽면에 주먹장을 숨겨서 가공한 후 45도 면을 딱 붙이면 밖에서는 마구리면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안쪽에서는 암장부와 숫장부가 서로 맞물리니 튼튼하게 결합이 된다.


숨은연귀주먹장, 안쪽은 주먹장으로 결합되지만 45도로 친 면이 딱 붙기 때문에 밖에서는 그저 빗각면이 붙어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이런 주먹의 약속도 괜찮을 듯하다. 겉으로는 약속을 안 한 듯 시치미를 떼지만 속으로는 주먹의 약속을 굳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군에 입대하는 남자친구와 새끼손가락을 걸며 “영원히 변치 않고 기다릴래.”라고 말하기보다는 “나도 잘 지낼 테니 너도 잘 다녀와.”라고 무심하게 말하는 것과 비하다. 전자와 같이 말하는 커플보다는 후자와 같이 말하는 커플이 더 오래 갑니다. 물론 순전히 몇 안 되는 경험에 의존한 성급한 일반화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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