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아이가 본 세상은 차가웠다
어려도 어른들의 대화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른들이 조용한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로 알았다.
어린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은 무방비하게 행동한다.
아이들은 어리니깐 말해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 편이다. 내성적인 아이의 마음은 어른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따끔거리는 기분을 잊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오래 남았다. 어른들의 가벼운 그 말 한마디 한마디를 속으로 오래 생각하고, 또 생각해 어떻게 해야 그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을지.
하나의 조용한 관찰자였던 나는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어른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림자들을.
내성적인 아이는 혼자 생각하고 조용히 바라보는 걸 좋아했지만 세상은 말을 해야 좋은 아이라는 기준만 내세웠고, 그 틀에 맞지 않는 아이는 평범하지 않는 쪽에 속하게 되었다. 내가 보고 있는 어른들은 웃고 있어도, 속은 다른 것만 같았다. 어른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 것만 같았다.
'나를 보려고 하지 않아. 그냥 어른들이 원하는 모습만 보려 해.'
높은 벽처럼 느껴지는 어른들의 기준선을 넘지 못한 나는 말이 없는 것 때문에 자꾸 외곽에 밀려나는 기분을 느꼈다.
말은 많이 하지만, 듣지 않는 사람들
어렸을 때 난 어른들이 자기 말만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지도,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지금 뭘 하고 싶은 건지 물어보지 않았다. 나보다 조금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관찰한 뒤, 이제 나에 대해 전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도 내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궁금해하지 않아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적도, 상처를 받기 싫어 마음을 닫아 버린 시절도 있지만 이제는 그런 어른들을 기다려 준다. 그저 몰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 뒤 그들을 기다리며 조금 더 조용해진 것뿐이다.
어른들이 정말 궁금해하고, 조용히 곁에 앉아 기다려 준다면, 나는 조금 오래 걸리지만, 언젠가 분명히 마음을 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내 마음의 공간이 너무 작은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너무 오래 껍데기 속에만 머물러 있었다고, 그러니 이제부터 그 껍데기를 벗고 앞을 향해 나아가자고.
그날 나는 조용한 관찰자이지만, 참기 싫은 순간에는 내가 정한 선 밖으로 나왔다.
그 작은 일탈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나의 내면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나는 말이 없지만, 마음은 열려 있었다. 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건 그저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줄 때까지 기다린 것뿐이었다. 한 발짝 물러나 사람들을 지켜보는 하나의 관찰자로서.
말이 없다고 해서 다른 건 아니었다.
그저 말하는 대신 깊이 생각하고,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