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어른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현명한 일이래
사람들은 이제 사회적 동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야 했었다.
"앗, 오랜만의 손님이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소녀가 반가운 듯 눈을 빛냈다. 사람들의 시선에 닿지 않는 좁은 골목 가게에 남자가 찾아왔다. 특이하게도 그 가게에는 간판이 없었지만 벽면에는 갖가지 표정의 회색 가면이 붙어 있었다. 웃음, 슬픔, 분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의 표면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여기가 그 가게인 건가?"
남자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지만 벽에 붙어 있는 가면을 보자마자 표정이 달라졌다. 조금의 안정과 기쁨, 드디어 찾았다는 눈빛.
"맞아! 손님은 오랜만이라 많이 흥분되네,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설명은 필요 없겠지?"
"그러면 정말로 저 가면이 내 표정을 대신하는 건가?"
"보여 줄까?"
소녀가 자신의 뺨에 손을 갖다 대자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얇은 막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갔다. 그것이 회색의 웃음 가면이라는 걸 알아챈 남자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방금까지 생글거리며 웃던 소녀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하게 되어 있었다.
"가면은 표정뿐만 아니라 내면의 감정도 조작할 수 있어. 설명은 이쯤 하면 되겠지?"
"……"
"그래서 아저씨는 어떤 걸 원해?"
그 말에 남자는 오늘 아침의 일을 떠올렸다. 직장 상사의 갑질을 받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억지웃음을 지어야 했던 시간, 사랑하는 딸이 아빠는 너무 웃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푸념을 했던 말.
"웃음 가면. 어떤 일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게 필요해."
"그거면 돼?"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녀는 벽에 붙어 있는 가면들 중 하나를 떼어냈다.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 있는 회색 가면.
"하루 열두 시간 정도만 써야 해, 안 그러면 진짜 표정을 잊어버릴 수 있어."
소녀의 경고를 끝으로 남자는 가게를 나왔다.
가면의 효력은 엄청났다. 어김없이 직장 상사가 작은 실수를 가지고 화를 내도 남자의 마음은 긍정적이었다.
"요즘 많이 웃으시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저도 이제 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요."
"보기 좋아요!"
늘 우울해 보였던 남자가 갑자기 밝아지니 주변 사람들도 남자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내와 딸이었지만 남자의 웃음에 가정도 화목해졌다. 회색 가면은 남자에게 큰 행복을 주었다. 계속 웃으니 주변 사람들도 좋아하고, 가정은 행복해졌다.
어느새 남자는 소녀의 경고를 무시하고 쓰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갔다. 처음에는 30분 더 쓰는 것에서 그쳤지만 그 30분은 한 시간이 되었고, 두 시간이 되다 언제부턴가 24시간 내내 쓰게 되었다. 가면이 얼굴에 붙어 있었지만 남자는 딱히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남자는 가면의 얼굴이 진짜 자신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남자는 자신의 진짜 표정은 잊어버렸다.
상관없었다, 이 사회는 웃는 사람을 더 좋아하니깐.
불 꺼진 가게, 소녀는 벗었던 가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행복한 표정으로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 있는 회색 가면, 한참 동안 벽에 붙은 가면을 바라보던 소녀는 이내 들고 있던 가면을 다시 썼다.
이내 손님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러 갔다.
"안녕! 여기는 처음인가 보네, 잘 부탁해!"
아무런 색도 없는 가짜 표정이었지만 괜찮았다. 사람들은 우울한 사람보다 웃는 사람을 더 좋아하니깐.
어차피 세상은 회색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