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버는 독서가 있단다. 돈을 벌지 못하는 독서도 있겠지. 책을 읽으면 지혜로워지기 때문에 자신의 현업이나 직무에 당장 도움이 되어 능률이 오르고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결국 독서는 어떤 분야에서든지 돈을 잘 벌게 하고 성공할 수 있게 한다. 자기 계발서 강사나 저자가 하는 말이다. 책 좀 읽었다고 자신의 성공에 투영하여 합리화하며 강연을 하고 다니는 이들도 그런 말을 한다. 그들은 돈을 벌 수 있게 한다고 말하면서 또 돈을 번다. '하면 된다'라는 신화를 바탕한 자기 계발 상품은 독서계에서는 영원한 베스트셀러이고 스테디셀러다. '시크릿'류의 책처럼 한동안 광풍이 불 때도 있다. 하기야 자기 계발서가 없으면 도서출판계는 진즉에 망했겠다. 돈을 버는 독서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을 벌지 못하는 독서를 하는 사람도 있다. 나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게 돈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먹구름처럼 덮은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돈이 되지 않는 행위는 부질없는 짓이고 때로는 낭비에 불과해 조롱을 당하기도 한다. 취미를 가져도 그것이 돈으로 연결되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환호를 받는다. 어느 책에서 읽은 문구인 'Follow the money'는 자본주의 천국인 미국에서 잘 알려진 말이다. 무슨 일을 도모하거나 잘 안 풀릴 때 쓰는 말인데, 어떤 정신적 모토로도 보인다. 이제는 독서에도 이런 말이 적용된다. 돈 버는 독서와 그렇지 않은 독서, 돈을 추구하는 독서와 그렇지 않은 독서, 효율성과 유용함을 증명하는 독서와 그렇지 않은 독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 독서와 그렇지 않은 독서, 입시에 성공하는 독서와 그렇지 않은 독서... 끝이 없다.
돈을 벌거나 추구하려고 책을 선택하지 않았다. 첫 번째 실수이고 가장 중대한 실수였다. 무너진 삶을 지탱하려면 무언인가 필요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책을 잡았다. 정신의 숨이 쉬어지지 않아 어떡하든 책을 심장박동기로 사용했다. 우선 숨을 쉬어야만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원활한 호흡이 가능해지자 정신이 맑았다. 도서관에 정착하니 돈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닥치는 대로 읽었다. 삶의 희망이 자랐다. 예전의 세상이 아니었다. 책만 읽으니 뭔가 허전했다. 블로그에 서평을 써 올리기 시작했다. 한 줄부터 시작해 여러 줄, 수십 줄로 분량이 늘었다. 한 권의 서평이 수십 권, 수백 권, 수천 권으로 변했다. 서평 블로그가 제법 묵직해 보였다. 인문, 자연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고 쓰다 보니 중고등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하다고 여긴 학교 교사와 학부모에게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이젠 됐다 싶었다. 책만 읽어도 먹고살 길이 열리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독서의 근본적인 가치에만 몰두해서 강연을 이어갔다. 두 번째 중대한 실수였다. 책을 읽으면 어떤 점에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핵심을 비켜갔다. 삶의 의미나 정신 수양, 또는 인간적 및 도덕적 가치에 중점을 두어 설명했다. 공부와 학습과 입시 이전에 필요한 요소를 강조했다. 학부모나 일반인 대상 인문학 강연에서도 공자 왈, 맹자 왈 같은 독서의 본질만 따지고 물었다. 강연을 잘 들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으나 다시 부르지는 않았다. 학문과 이론의 구조적이고 구성적인 요리를 해서 음식을 내놓지 못했다. 날것 그대로 들이대면서 건강에 좋다는 말만 했다. 막연한 긍정적 평가에 안도했고 자만했다. 강연 생활 십여 년이 흘러도 강연 형식과 내용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도 강연 요청은 늘어만 갔고, 잘하면 유명세를 탈 수도 있겠다는 기대까지 품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닥쳤다. 갑자기 강연 요청이 사라졌다.
요약과 발췌에만 비중을 둔 서평을 주로 썼다. 세 번째이자 가장 후회하는 실수다. 항상 '질서와 초서'는 기본이었다. 책의 줄거리와 핵심은 놓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독서노트에 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서평을 올린 책만 2천여 권이다. 요약과 발췌 위주의 서평이기에 시간이 한참 지나도 독서노트와 블로그를 보면 책 내용과 핵심을 기억하고 되살리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요약과 발췌 중심의 서평은 책 내용을 고스란히 되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는 부족한 서평 형식이다. 내 생각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다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 능력이 창의적인 모습을 띄며 늘 줄 았알는데 그렇지 않았다. 핵심과 줄거리 위주의 서평은 강연할 때 참고하기는 좋았지만, 내 생각을 벼르는 데는 소용이 덜 했다. 십수 년 동안 서평을 전문적으로 썼지만 날카로운 비평가의 모습은 갖출 수 없었다. 내가 쓴 서평은 책 소개라는 본질만 충실했지, 평론가나 비평가로서의 자질은 보여주지 못했다. 시중에 나온 문학평론가들의 책을 보면 절망하는 이유다.
돈을 추구하고 버는 독서도 내게는 어느 정도 필요했다. 독서의 가치와 효율 면에서 어떤 '균형'이나 '중용'이 필요했다. 나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독서를 하나의 '신선놀음'으로 여긴 것처럼 보이게 했다. 책만 '먹고' 살 수는 없다. 책은 곧 '생활'이 되기도 해야 한다. 독서를 오로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며 활동하는 사람들과 그런 산업을 보면 자괴감이 들지만, 그렇다고 독서가 특정인의 전유물이 되어서도 안 되고 신비로운 영역으로 머물러서도 안 된다. 포장하지 않은 날것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착하기 전에 부패한다. 적당한 처리가 팔요하다. 그동안 돈 버는 독서를 하지 못한 걸 인정한다. 그로 인한 결과물이 상품이 되지 못했음도 인정한다. 그렇다고 돈만 보고 따라가는 독서는 하지 못하겠다. 그 대신 돈 버는 독서와 그렇지 못한 독서의 경계에 서고자 한다. 나중의 결과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밀고 나가겠다. 또 한 번의 반성문을 쓰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