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2>
독서의 다양한 가치 중 내가 경험하여 증명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우울할 틈이 없다는 사실이다. 고독할 수는 있다. 아니, 고독해야만 한다. 고독한 가운데 책 내용 때문에 생각하고 또 생각하느라 우울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우울하지는 않다. 좋은 책은 사람을 감탄하게 한다. 지적 유희와 더불어 정신의 창고가 정신적인 물질로 가득 찬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출 마음은 없다. 한 권의 책을 읽었다면 금방 다른 책으로 눈이 가고 발이 가고 손이 간다. 책과 책에 틈이 있다면 글을 쓰는, 서평을 쓰는 시간뿐이다. 우울할 틈은 없다.
깨달음의 충격이 너무 크면 잘못된 선택을 할 수는 있는 모양이다. 인류 역사상 천재와 비슷한 사람들의 연이은 안타까운 마지막이 떠오른다. 일반인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평생 책만 읽고 사는 것이 소원이다. 내일 눈을 감는다면 오늘까지 책을 읽고 싶다. 인공지능이나 동영상의 위협적인 지배 권력으로서의 위력이 어떻든 백지에 가만히 줄지어 앉아 있는 활자들을 보며 마음껏 상상의 세계로 뛰어든다. 글에, 행간에, 여백에 삶의 모든 게 들어 있다. 나를 찾고 너를 이해하고 세계를 경험한다. 이론과 실상이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수긍한다. 글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겸손한 마음으로 한계를 인정하지만 읽기 전과 후는 불가역적인 상태다.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우울할 틈은 없지만 세상일을 잊기는 쉽다. 현실적이지 않고 뜬구름만 잡으려는 '한량'이 될 수도 있다. 책만 읽는 '바보'가 되면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참여하고 연대하며 행동하고 실천하는 지성인이 되고 싶다. 책 속에 파묻혀 있다가도 가끔은 주위를 살피고 하늘을 쳐다본다.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언인가, 고민한다. 세상은 지식과 지혜의 포장을 원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은 옳다. 끌어안고만 있는 지식은 쓸모가 없다. 세상에 내보이려면 적절한 가공이 필요하다. 세상의 입맛에 맞도록 만들려면 레시피가 필요하다. 날것을 그냥 내놓으면 사람들은 먹지 못한다. 나만 만족하고 마는 지식은 세상에 도움이 안 된다.
우울한 틈은 없지만 독서로 인한 지식과 지혜를 가공할 만한 인식과 방법 및 도구의 틈은 한참이나 벌어져 있다. 원석을 엉뚱하게 가공하여 겉만 번지르하게 꾸며진 지식 상품이 세상을 압도하고 있지만 어떻게 바로잡을 만한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보다 낫다고 가끔 외쳐보지만 메아리로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내가 봐도 내 것은 날것과 비슷하고 거칠며 투박하다. 웬만해서는 세상이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인다. 훨씬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것들이 차고 넘친다. 우울할 틈은 없지만 자책할 틈은 더 이상 틈이 아닐 정도로 넓고 깊다. 뭔가 대책과 대안이 필요하다. 사람을 찾자. 찾으면 보일 것이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