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승철 Nov 02. 2022

<내 인생의 책 6> - '레미제라블'

- 인간의 치열한 분투 - 

<내 인생의 책 6> - '레미제라블'(빅또르 위고, 송면 옮김, 동서문화사)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무서운 것은 진정으로 살지 못한 것이야."


"언제까지나 서로 깊이 사랑하여라. 서로 사랑한다는 것, 이 세상에 그 밖의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단다......"


장발장이 죽기 전에 꼬제뜨와 마리우스 앞에서 토해낸 말이다.

어린 조카들을 먹이기 위해 빵 한 덩어리를 훔치다가 붙잡혀 감옥에 들어간 후, 4번의 탈옥을 거쳐 19년이나 지낸 시간들은 장발장에겐 증오와 울분의 시간들이었으며 미리엘 주교를 만나고 나서는, 두 개의 촛대를 죽음 앞에서까지 품었듯이 인간에 대한 고귀한 사랑과 용서를 품고 이 땅 위에 남김없이 나누어 주고서 그는 '비참한'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

탐욕과 가난으로 일그러진 세상에 맞서 싸우려던 보잘것없는 한 인생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고 살아야 하며,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천하는 삶으로써 보여주고 있다.

정의와 배려의 천사인 미리엘 주교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또 다른 정의를 위해 끝까지 책임을 완수하려다 결국은 정체성의 혼돈으로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자베르 경감은 선과 악의 두 축이 될 수 있지만, 저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휴머니즘 속에는 모두 융화되어 숭고한 인간성으로 재탄생될 뿐이었다.

가난과 착취의 희생자인 팡띤느, 돈을 위해서라면 영혼까지도 흥정하는 떼나르디에, 불쌍한 사랑의 메신저 에뽀닌느, 참혹한 사회에 희생당한 순수한 젊은 영혼 가브로슈, 정치적 소신도 피붙이에게는 내려놓은 질노르망을 비롯한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단면을 어는 한 곳도 빠뜨리지 않고 생생하게 녹화하여 보여주는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하고 절망스러운 순간에 나타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린 영혼 꼬제뜨에게 인생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사랑으로 키우는 장발장이지만, 마리우스라는 그녀의 연인이 나타나면서 그 아름다웠던 사랑의 고귀한 마음이 한순간에 벌레 먹고 썩어 냄새가 진동하는 모습으로 비치면서 양심의 가책으로 지옥의 심연으로 빠져들고야 만다.

죽어가는 마리우스를 등에 업고 사선을 넘나들며 지하수도를 헤매는 장발장의 모습은 사랑의 화신인지 질투의 화신인지, 아니면 두 가지를 다 가진 심장인지 가슴 한편 이 물어 뜯기는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주고 떠나는 장발장의 마음은 죽음 바로 직전에서야 비로소 천상에서나 맛볼 수 있는 기쁨을 느끼지나 않았을까?

전쟁과 혁명과 폭동, 사상의 끊임없는 대립, 살인과 도적질 등 장황하기 이를 데 없는 전편의 이야기 속에 그래도 가느다란 삶의 희망의 빛이 짙은 어둠을 비추고 있어 진실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분별을 도와주고 있었다. 

비참한,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대서사시 한 편이 2013년 새해 벽두를 큰 울림과 함께 뜨거운 눈물 줄기로 열어젖히게 만들었다. 영화도 상영 중이라는데, 어떻게 눈물을 감추고 삼키며 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어느 동산 같은 곳에 우거진 숲이 있고 어여쁜 나무 한 그루 아래 그의 마지막 숨결이 잠든 곳이 있다면 언젠가는 그 흙 위에 무릎 꿇고 앉아 조용히 그대를 위해 기도하리라. 

"그가 잠들었네. 운명은 그에게 몹시 가혹했어도
그는 살았네. 천사를 잃어버리자 그는 죽었네.
올 일은 찾아오는 것. 낮이 가면 밤이 오듯이."


작가의 이전글 <내 인생의 책 4> - '변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