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을모기입니다. 싫어하는 것보단 좋아하는 것이 더 많은채 살아가려 하고, 되도록이면 그 무엇도 섣불리 판단하여 배척하고 핍박하는 일은 없고자 살고 있습니다만. '가을모기'라는 네 글자는 듣기만 해도 몸서리가 처질만큼 싫은 축에 속합니다. 그 이유를 꼽으라면 이면지 한장을 꽉 채우고도 남겠지만, 유독 눈에 띄는 원인은 단 두가지인데요.
일단 첫번째는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점입니다. 여름 동물인 모기는 날이 조금만 후덥지근해지기 시작하면 어느샌가 고개를 들고 나타나 우리 몸 여기저기를 물어 뜯습니다. 여름엔 모기때문에 운동을 못한다는 속편한 핑계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을만큼의 죄를 짓고 있죠. 그래도 이해합니다. 벚꽃이 봄동안 만개한 뒤 금새 낙화하고, 매미가 짧은 여름간 소리를 지르며 후손을 만들기 위해 애쓰다 여름이 끝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모기도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계절을 최선을 다해 살고싶은 마음이 아주아주 깊을 거니까요. 그러니 여름간은 짧은 옷 아래로 드러난 내 팔뚝을 물고 허벅지를 물고 심지어는 잠이 든 눈꺼풀을 물어도 참아주려 합니다.
그렇지만 가을엔 그게 아니지요. 가을은 그들의 계절이 아닙니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서늘해져 얇은 겉옷을 챙겨야만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보다는 따뜻한 코코아가 당기고,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냉기에 절로 재채기가 나오는 이 계절엔 그들 역시 흘러가는 시간에 운명을 맡기고 떠나야 합니다. 어느덧 단풍잎은 울긋불긋 물들고, 은행잎이 노란 빛을 뜨기 시작한다면 '아, 이제 갈 때가 되었구나.' 생각하며 마무리할 채비를 해야 합니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 말이 괜히 있을까요? 안녕, 안녕. 그동안 마셔왔던 피의 향과 지독한 박수들을 피해 날아왔던 지난날을 되새기며, 그럼 안녕. 그렇게 떠나주길 바랍니다.
서늘해진 가을 날씨에 조금 더 두꺼운 이불을 덮고 누운 밤. 불현듯이 귓가를 스치는 불청객의 목소리. 지난 여름날의 혈투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인데 또다시 찾아온 그놈 목소리. 이건 예의가 아닙니다. 이제 그만좀 해달라고 빌고만 싶은 심정입니다.
두번째는 그 마음이 지독히도 이해가 된다는 점입니다. 사실 걔네라고 그러고 싶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더운 여름 겨우겨우 남의 피 먹으며 사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면 피 한방울이라도 더 빨아야겠다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점점 날은 추워져 오고, 사람들의 옷가지는 길고 두꺼워지고. 어디로 바늘을 꽂아야 피를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날이 시작되지요. 이불도 이젠 목끝까지 폭 덮습니다. 발도 내놓지 않고요, 기껏해야 손 정도만 이불 밖으로 빼꼼히 꺼내 놓습니다. 그래도 같이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되도록이면 얼굴은 손대고 싶지 않은데도, 이제는 다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나도 모르게 무례하고 마는겁니다.
사실 사람 한명 몸 뉘이면 빠듯한 단칸방에 하는 수 없이 몸을 밀어넣을 땐 이미 피터진 채 벽에 붙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제 그들은 더이상 이해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기에 더 큰 화를 부르고 싶지는 않았을 테지요. 그렇지만 이제 바깥은 춥습니다. 서늘해진 날씨에 밖을 걷는 사람도 잘 없고요. 있어봤자 목도리에 장갑까지 써가며 방어태세를 갖췄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하는 수 없이 보일러가 도는 남의 집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살고싶어서. 조금만 더 살고 싶어서 실례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염치 없이 머리를 드미는 겁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도 처절했을까요? 추운 바깥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죽어가는 주변 모기들을 바라보며 다음은 내차례라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겠지요. 그래서 틈을 보다가 문이 살짝 열린 순간, 혹은 이불을 털으려 창문을 연 순간, 그것도 안된다면 방충망에 난 작은 구멍을 비집고 들어가서라도 더 살아보길 희망했을 겁니다. 이제 체면이고 규칙이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날이 추워진만큼 열량 소모도 크니 피도 좀 더, 좀 더 많이 먹고요.
그 마음이 깊이 헤아려집니다. 나라도 그랬겠죠. 내가 모기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도 헤아려주길 바라게 됩니다. 여름 내 많이 뜯기고 빨려도 군말 없이 참아준 내 맘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그래. 일단 그렇게라도 살아. 많이 먹고 살아. 부디 맛있길 바라. 그런 마음으로 인내한 내 마음을.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할 시간입니다. 나도 더이상은 수가 없으니 나를 따라 집에 들어온 모기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더라도 잡고야 맙니다. 꼭 알고 계셔 주세요.
이 글은 제가 이틀간 십여마리의 가을 모기에게 얼굴과 발, 손 군데군데 20곳 정도를 물린 뒤 분노에 차 쓰는 글입니다. 이번 생엔 이렇게 만나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네요. 그렇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서로를 사랑해 마지않는 사이가 될 수 있겠지요? 올해까지만 참습니다. 다음해엔 잘 부탁드릴게요.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