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음악 에게.

미루고 미루던 글

by 곽태영


어느덧 12월입니다. 한 해를 시작한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됐다며 재촉하는 시기이지요. 이때는 날씨도 11월과 비교하면 한층 더 차갑고 무거운 눈들이 두터이 쌓이는 날이 하나 둘씩 늘어납니다. 솜이불 없이는 밤을 지내기 어렵고 바깥을 한번 나가보려면 옷을 겹겹이 껴입는데만 시간이 한참 걸립니다.


외로움이 증폭기를 통해 흐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왜인지 마음이 헛헛하고 곁이 쓸쓸하고 손이 시렵고 숨이 차갑고... 그런 계절을 살아가려니 따뜻하던 날들보다 하루하루가 조금 더 힘겹기도 하고요. 사실 툭 터놓고 솔직히 한마디 하자면, 출근 하기가 정말 고역입니다. 나를 포근히 감싸안은 이불을 모두 벗어 던지고, 찬물부터 쏟아지는 수도꼭지 앞에 한참을 서있다가, 뜨끈한 물을 끼얹고 다시 찬공기 속으로 나와 급히도 급히도 준비하는 것이.


그렇게 나온 바깥은 왜 날이 갈수록 더더욱 추운지. 이보다 더 든든히 입을 순 없다 생각할만큼 껴입어도 겨울 바람은 미처 챙기지 못한 좁은 틈새들을 파고 들어와 몸을 베어갑니다. 그래서 몸을 있는 힘껏 웅크리게 되고, 나는 마치 바닥에 떨어진 낙엽처럼 길바닥을 툭툭 굴러 회사로 향합니다.


일하는건 오죽할까요?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창문에서는 찬바람이 세차게 들어오고,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히터에서는 따뜻하지만 말라붙은 바람이 푹푹 쏟아집니다. 말라 붙은 눈은 자꾸만 꿈뻑이며 감기고 따뜻한 온기에 잠은 솔솔 쏟아지고... 그러다 들어오는 바람에 발이 시려워지면 재채기를 옴팡 뱉어내며 잠에서 깨지요. 곰이나 호랑이 같은 맹수류는 고사하고, 하물며 자그마한 개구리나 거북이 마저도 겨울잠을 잔다는데 어째서 사람은 눈이 오고 땅이 얼어도 매일 매일을 깨어있어야 하는건지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입니다.


하루 하루가 배로 버거운 이 계절엔 기댈 어깨나 안길 품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넓진 않아도 덜 뾰족한 어깨 한쪽, 두텁진 않아도 몸을 포갤만한 품이요. 나에게는 김광석 음악이 그런 어깨이자 품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팔 벌려 안아주진 않지만 언제 어디에서든 파고들면 꼭 안아주는 품 같고,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잠들어 기대놓은 머리가 흔들리다 툭 떨어지면 손으로 받쳐올려 다시 기대주는 단단한 어깨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코미디언 한 분이 이소라의 노래를 들으면 그에게 얼마나 많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소라씨가 자신의 삶과 괴로움을 꾹꾹 눌러 담은 뒤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로 너무나 쉬운 위로를 받는 것이 죄스럽다는 뜻일텐데요. 김광석 음악을 듣는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집니다. 빨리 떠난 그가 온평생을 고민하고 고뇌한 뒤 잘 닦아 꺼내 놓은 마음을 내가 너무 가볍게 삼켜버리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어요.


특히 이 겨울엔 그의 음악 없이는 이겨낼 수 없겠다는 생각마저도 듭니다. 어떤 캐롤을 듣고 감성 가득한 노래를 듣고 핫한 팝송을 들어도 채워지지 않던 갈증이 돌고 돌아 김광석 음악을 다시 만났을 때 비로소 넘치도록 풀리고 말지요. 따뚯하면서도 투박하고, 거친 향이 나지만 사실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우며 등을 토닥여주는 손바닥같은 그의 음악을 들어야만 겨울이 살만한 계절이 됩니다.


최근에는 어떤 유튜브 채널에서 지오디의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가사와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가사 중 어느 쪽이 더 슬픈지를 두고 논쟁하는 장면을 보았는데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모르던 제 친구는 함께 영상을 보며 당연히 전자가 더 슬프다며 일축했지만, 저는 이를 악물고 후자라 설명했습니다. 사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을 뼈저리게 이해하거나 맘 깊이 공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노래는 두 번 들으면 한 번 꼴로 눈물이 날만큼 아리고 아린 노래라서 그냥 열을 내며 주장해버렸습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길,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이런 문장을 쓰는 그를 동경하지 않을 수 없고 여기 붙은 음정들을 하나 하나 곱씹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도 허투루 놓치고 싶지 않는 음악이 그가 했던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랑을 했냐고 묻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어떤 일기를 썼는지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더 애틋한 것 같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면 어떤 심정과 기분으로 노래를 불렀는지, 마음이 유독 갑갑할 떈 어찌 했는지만이라도 묻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마음이 더더욱 커지는 12월입니다.


사실 어쩌다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기는 날이면 어김 없이 김광석 음악을 따라해요. 좋아하는 그의 노래들을 몇번이고 기타로 쳐보고 더듬어 불러봅니다. 백번을 불러도 따라잡지 못할 음악이지만 그래도 그 노래들을 부르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사랑했지만 다가설 수 없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도 있을 것만 같아 어설프게 따라하게 됩니다.


온마음 긁고 쓸어 음악을 남겨둔 그에게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염치 없이 매년 겨울을 김광석 음악에 기대어 삽니다. 이번 겨울도 언젠간 잊어버릴 시간이겠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그에게 빚을 집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김광석 음악을 듣고 있는데요. 또 눈물이 자꾸만 삐죽 삐죽 튀어나오고 마음이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징징 울립니다. 비로소 살아짐을 느낍니다. 언젠간 갚을 부채를 자꾸만 쌓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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