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유산
자랑스러운 나의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셨다.
일제의 강제 징병에 의해 중국 전선에 투입되었지만
무리 지어 무장 탈출하여 안후이성 무호지구 무공대(중국항일유격무장부대)에 편입되어 중국 신4군 7사단과 합동으로 항일전을 성공하고 중국군의 호송으로 조선독립군으로 이동 중 피체되셨다.
일본군 임시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과 10년형을 선고받고 장기수 복역소인 경성감옥(마포형무소)에서 복역 중 해방을 맞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0년 상훈법이 개정되었는데,
법 개정의 의도 중 일부는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표창을 받으신 분에 대한 예우의 일환으로 그 공적을 재심사하여 조건이 충족할 경우 건국훈장 애국장 또는 애족장으로 상향 서훈하는 데 있었다.
안타깝게도
할아버지의 형기는 상당히 긴 편이었지만 수형기간(실제 감옥살이 한 기간, 3개월 20일)으로
애족장 이상으로 상향되기에는 수형기간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개정된 법에는 수형기간이 강조되어 반영되고 형기는 반영되지 않는다.
당시 대구경북에서 400여 명이 상향 조정되었고 할아버지를 포함한 4명만 존치되었다.
할아버지는 주변에 1년 내외 형기와 수형기간으로
애족장 혹은 그 이상으로 훈격이 상향된 사례가 수두룩하다 보니
꽤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셨다.
지속되는 추가자료과 민원 제출에도 해당 없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민원에 대한 국가기관의 판단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이다.
이 과정은
상훈법 개정 1990년도부터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점까지 지속되었고
할아버지의 치매로 인해 소리소문 없이 잠잠해졌다.
그 기간 동안 할아버지는 특유의 대단한 집념을 가지고 서울과 대구지방보훈청을 드나드셨다.
대구지방보훈청 공무원과의 신경질적인 다툼으로까지 번졌던 것 같다.
공무원은 보훈청 내에서 큰소리고 화를 내며 할아버지에게 '가짜 독립운동가'라며 '날리겠다'는 표현까지 썼다고 한다.
또, 공개적인 광복회 모임 술자리에서 그 공무원은 '가짜'라고 소리치며 주전자를 할아버지에게 던졌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충격의 그날 응급실 신세를 졌다고 한다.
상황을 파악하러 장녀인 수녀고모가 대구지방보훈청을 방문했을 때
해당 공무원이 말한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훈격은 박탈당할 상황이다(혹은 날라갈 수 있다)
지금 받고 있는 보훈급여금이라도 박탈당하고 싶지 않으면
더 이상 민원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서명하라
안타깝게도 가톨릭 수녀였던 고모는 그 말을 믿고 서명하였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연금은 그때부터 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할아버지 사망 후 수권자인 큰삼촌도 지급결정된 공시 금액보다 적게 차등 지급받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내용을 몇 주 전에 알게 되었다.
그간 고모 삼촌 몇 분을 빼면 이 일은 가족들 사이에서 비밀이었다.
내 가슴 안에서는 미치도록 불이 일어났다.
공무원이 독립운동가에게 모욕을 주었다고?
위법 행위로 보훈급여금을 임의로 차등지급하고 있었다고?
일단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큰삼촌에게 남겨주신
모든 서류가 든 상자를 전달받아 확인해 보았다.
의심할 여지는 없는 엄연한 진짜 독립운동가였다.
보훈부 회신 공문에는 대통령표창으로 존치였다.
1977년 이후 정상적인 훈격을 유지하고 있는 독립유공자에게 '가짜'라는 단어로 모욕을 주는 것은
위법행위이자 민원인의 인권과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탄원서에는
생명을 건 독립의지와 행위에 '가짜'라는 불명예가 쓰여졌다고 했고, 제자들 앞에 낯을 들고 다니기 부끄럽고, 가족들에게도 말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당시 광복회 회원들 사이에서는 곧 날라간다는 소문이 무성했다고 한다.
이건 정말 국가가 사죄해야 할 일이다.
해당 공무원 뿐만 아니라
보훈급여금이 위법하게 임의 지급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감시도 필요할 것 같다.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고 이를 위해 국민신문고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공식적인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또 하나,
국가 공무원이나 알 수 없는 보훈부 시스템도 문제였지만
나는 또 다른 시각으로 이 사태의 문제점을 바라본다.
그것은 가족의 고통 앞에서 침묵과 무관심한 자세이다.
가족이 함께 분노하고 가족의 보호가 필요했던 할아버지는
무관심 속에서 홀로 외롭게 싸우셨다.
광복회 조직의 수군거림을 견뎌야만 했다.
돈 몇 푼 안 끊기는 것이 그리 중요했던 가...
우린 과연 독립운동가 후손인가...
나의 어린 시절 오랜 기간 동안 가혹한 아동학대를 당했지만
가족들의 방관자적 무관심으로 그것은 전혀 저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공범의 세력들이 발생했고 가해자 새엄마는 죄의식 하나 없이 지금까지 너무나 떳떳할 수 있다.
뭐, 작은숙모는 ’가족 간에도 힘의 원리가 존재한다'는 말도 당당히 하더라.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충격으로 인해 응급실에 계셨던 그날 그곳 할아버지께 가 본다. 마음으로 말이다.
할아버지 곁으로 가서 분노하고 보호해 드리고 싶다.
7월 초 대전현충원을 찾아갔다.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 억울한 것 풀어드릴 테니
할아버지 저 억울한 마음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