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먹어 먹어

by 이하니

외근을 다니면서 동태탕으로 점심을 먹고도

쌀쌀한 날씨에 헛헛함이 느껴져 편의점으로 향했다.

제일 질리지 않는 새우깡 하나와 먹음직스러운 닭꼬치 하나를 결제했다.

닭꼬치는 편의점 전자레인지에 25초 정도 데워서 그 자리에서 후딱 먹어치우고

남은 새우깡을 가지고 편의점을 나섰다.

내 속에서는 '이게 무슨 짓 이래' 하며 스스로 나무랐다. 마음 저 깊이에서는 마치 도둑질하는 것 같이 ‘아무도 몰랐으면 ‘ 하는 부정적인 마음도 들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늘 그렇듯이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심심하고 헛헛함을 달랬다.

곧 나의 심적 불편함을 남자친구에게 던졌다.

'오빠, 나 밥 먹고 과자 또 먹고 있어'

칭찬받을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허락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남자친구와 이전에도 2번 헤어질 뻔했던 적이 있었는데, 모두 같은 원인 때문이다.

체중 조절을 위해 야식을 안 먹으려고 마음먹고도 야식을 먹어버렸다던지,

특정한 음식을 과하게 먹는다던지,

썩 좋지 않은 먹는 행위에 대해 혼날 것 같은 기분으로 떠보게 된다.

항상 더 좋은 것을, 더 맛있게 먹도록, 날 아끼는 오빠이기에

좋은 의도로 좋은 식습관을 권장하는 것을 안다.

‘나쁜 것은 조금만 드세요.‘


하지만

나는 미쳐버린다.

나는 어릴 적 엄마 아빠로부터 사랑은커녕 완벽한 정서적 학대 속에서 자랐다.

새엄마의 감정 때문에 어리석은 나의 친부조차 나를 미워했다.

대부분 나는 내 방에서 지냈지만 매일 고정적으로 그들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은 아침/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나는 식성이 좋았던 것 같다. 할아버지, 아빠 모두 식성이 좋았고 어린이에게 혐오스러운 것(소양, 선지) 빼고는 주는 대로 먹고 특별한 요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식탁에 꽁치가 올려진 어느 날 아빠가 날 혼낸 이유는 이랬다.

맛있는 것을 가운데 담아주면 내가 욕심을 내서 빨리 먹고, 각자 따로 담아주면 천천히 먹는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꽁치를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빨리 먹었는지 천천히 먹었는지도 전혀 몰랐고 '아닌데.....'라고 어리둥절할 뿐 한마디도 못했다. 그냥 그렇게 결정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자식이 잘 먹으면 부모가 자기 먹는 것도 내줄 수 있고 맛있어서 빨리 먹으면 흐뭇하면서 '천천히 많이 먹어' 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뿐 아니라 대학생이 될 때까지 식탁에서 알콜 중독인 아빠는 내게 '소년소녀 가장이 뭔지 아냐' '눈까리를 뺀다' '굶어 디져라' 등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로 험한 상황에서 눈물이 나더라도 꾹꾹 참으며 밥을 쑤셔 넣고 삼켰다.

그 상황에서 엄마는 항상 쌩하고 나 몰라라 등 돌리고 있었고 남동생 또한 누나가 항상 미움받는 상황이 너무 당연한 듯 여겼다. 어디도 위로받을 곳이 없었다. 소외당하고 구석에 몰려 발 붙일 곳 없는 기분에 밤에 서럽게 울면 아빠가 와서 '뭐 잘했다고 우냐'며 손을 올려 위협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안 내고 웅크려서 울다가 잠들 때도 있었다.


어린 나는 먹는 행위 자체에 죄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직장 생활 중에도 여럿이 함께 식사를 하면 때론 불안하다. 분위기에 따라 내가 소외되는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좋은 관계인지 불분명할 때는 애를 쓰게 된다. 맛을 느끼거나 즐기지 못하고 시간을 삼키듯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데 남자 직원들도 놀라고 어떤 이는 충격적으로 나를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더욱 숨기고 싶어진다. 마치 집안에 숨어있는 바퀴벌레처럼 말이다.

아빠는 작년에 돌아가셨지만, 그 부모가 날 대하던 태도로 내가 식사하는 나를 지켜보며 지금까지 가해하고 있었다.

이런 나를 발견한 것은 불과 2주 전 상담을 통해서이다. 학대당했고 또 지금까지 내가 나를 학대했던 오랜 세월이 억울했다.




다시 남자친구 이야기로 돌아오자.

미친 나는 상대가 도저히 견뎌내기 힘들 정도로 몰아붙이고 머리를 쥐어뜯고 괴로워서 울부짖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상대들도 나의 상처 때문에 내가 돌아서거나 결국 떠나게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천만다행으로(아마 처음으로) 진정은 되었는데

평소 심리상담과 남자친구와의 많은 대화 속에서 어느 정도 내가 듣고 싶었던 울림을 알아채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은아 괜찮아, 먹어 먹어' ' 괜찮아, 먹어 먹어' '괜찮아, 먹어 먹어'..........

눈물과 땀에 범벅이 되어 끝날 것 같지 않은 지랄은 반복적인 저 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견뎌내 준 남자친구에게 고마웠고 안쓰러웠다.

폐경이 온 지금 까지도 불안정했던 애착관계로 인해 여태 가정을 이루지 못해서 외로웠던 내가 불쌍하고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견뎌야만 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너무 불쌍했다.


'새엄마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니 이해한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니. 그 정도면 괜찮다.'

이런 미친 망언은 집안의 어른인 수녀고모가 내게 한 말이다. 나는 혼란 속에서 내 목소리는커녕 갈피조차 잡지도 못하고 괴로웠다.

생존을 위해 가장 안전한 방법인 나 자신을 가해하고 죄의식을 가지는 방법을 택했던 모양이다.


나를 양육했던 엄마 아빠의 태도와 행동은 매우 나빴다.

혼날 대상은 바로 그 사람들이다.

아이가 학대당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매우 가혹한 것이다.

어린 뿌리를 썩게 만들어 한 인생을 완전히 망가트릴 수 있는 중대한 범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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