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아동학대를 받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아동학대는 치명적인 상처로 인해 전생애에 엄청난 고통을 야기한다.
직접적인 학대 후에도 지금까지 고통스러웠던 점들을 하나씩 이야기하고자 한다.
발모벽, 발모광 (Trichotillomania)
원인
발모벽은 심리적인 원인과 생물학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납니다. 전체 환자의 1/4 이상은 심리적 스트레스 상황과 연관되어 발생합니다. 심리적 요소로는 부모와 자식 관계의 문제,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걱정, 최근에 느낀 대상의 상실, 우울, 불안 등이 있습니다. 생물학적 원인으로는 강박장애와 마찬가지로 뇌의 세로토닌 체계의 이상이 지적됩니다.
-서울 아산병원 질환백과-
나의 발모벽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되었다.
그 당시 나의 감정은 불행이었고 극단적으로 궁지에 몰린 불안한 기분이었다.
아빠는 공무원이셨는데 저녁이면 1년 중 365일 술에 취해 있었다.
술에 취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욕을 무한히 반복했다.
그 불만의 바닥에는 나의 존재와 상당히 연관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 때 아빠가 나에게 주로 했던 말은 '굶어 죽어라' '밥벌레' '없어져라' 등이었다.
현실 같지 않은 아빠의 말들은 일기장에 기록되었다.
그 일기장은 39살 지긋지긋했던 서울 봉천동 반지하 원룸에서 이사 나갈 때 간직하고 싶지 않아서 버려버렸지만 내용은 똑똑히 기억한다.
(새) 엄마는 나에게만 뱀처럼 서늘하고 쌀쌀맞았다.
가정 내에서 얼굴을 마주 보는 일도 없었고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하루 종일 3 가지가 전부인데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였다. 듣는 사람 없이 허공에다 뱉는 작은 소리였다.
그 녀는 외출을 할 때 안방문을 잠그고 다녔다.
내 방 안에 우두커니 시간을 보내던 나는 엄마가 집을 비울 때면 내 방에서 나와 집안 탐험을 하기 때문이다.
냉장고, 부엌 수납장, 베란다 물건들, 안방, 동생방을 탐험하면서 부엌에서는 먹을 것을 몰래 훔쳐 먹고 안방에서는 엄마 옷을 입어 보기도 하고 옷장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기도 했다. 심지어 동생방에서는 돼지 저금통에서 동전을 빼내 집 앞 문구점에서 군것질도 하고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도 사 먹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부모가 밥만 먹일 뿐 돌보지 않으니 스스로 돌아다니며 자극을 추구했던 모양이다.
발모벽의 시작
어느 날 저녁 나는 방 안에서 막막히 할 것 없이 시계만 쳐다보고 잘 시간만 기다리는데 낮에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머리가 간지러울 때 그곳 머리카락을 뽑는다'였다. 무지했던 시절에 다래끼가 나면 아이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치유법이 다래끼 부분의 속눈썹을 뽑으면 낫는다는 것과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거울을 쳐다보며 머리카락 하나를 뽑았는데 크게 아프지도 그렇다고 시원하지도 않았다.
속으로 '뭐야~ 아무렇지도 않네'하고 말았다.
그런데 무료하면서도 불안했던 나는 그것을 잊을 만한 재미와 행복 같은 자극이 필요했다.
머리카락 하나를 뽑았던 자리에 두 개 세 개를 뽑기 시작했고 빈 부분이 눈에 띄기 시작하여 이곳저곳에서 뽑기 시작했다.
종아리 털과 손가락 털도 뽑았다. 종아리 털과 손가락 털은 기대할 만한 쾌감을 주지 못했다.
머리카락에 몰빵을 했고 크기는 지름 3센티부터 5센티까지 총 5개의 땜빵이 만들어졌다.
뽑은 자리에 0.1미리라도 새로 자라나 올 낌새가 보이면 족집게로 후벼 파서라도 뽑아버렸고 피부는 항상 빨갛고 진물이 나는 염증상태였다. 매일 저녁 방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은 쾌락의 파티임과 동시에 나를 잡아먹는 시간이었다.
땜빵의 크기는 30살 초반까지 계속 커졌고 정수리 부분은 10센티까지 커졌다. 처절하게 가려도 종종 허옇고 커다랗게 드러나기도 했다.
이 짓을 하는 나 스스로가 괴물 같았고 가족들에게도 내가 뽑은 것이 아닌 척했다.
괴로워서 시작된 일이 나를 더욱 괴롭히고 있었다.
참으로 어여쁘고 아름다워야 할 내 10대와 20대는 소위 머리빨은 커녕 수치심과 이상충동이라는 괴물에게 짖눌려 어글리하게 보냈다. 사진 속의 내 모습을 보거나 길을 걷다가 쇼윈도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면 혐오스럽다고 느꼈다.
49살에 발모벽 극복
첫 번째 단계는 발밍아웃(발모 커밍아웃)
발모벽이 생긴 지 18년 만인 30대 초반에 더 이상 허연 발모 자리를 가리기 어렵고 점점 악화만 되어 막다른 지경에 이르렀다. 아파트 창문 밖을 뛰어내리는 대신 주저앉아 족집게를 아파트 창문으로 던져버리고 엉엉 울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고백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거 내가 머리 뽑은 거예요. 나 도저히 못 견디겠어요. 정신과라도 가 볼래요. 엉엉~~~'
집 가까운 정신과를 찾아갔다. 첫 정신과 진료였다. 오래되고 깊은 우울증에 대한 약물 처방으로 발모벽도 상당히 좋아졌다.
의사 선생님은 어릴 때 발병하여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드문데, 이런 경우 완치라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고 했다. 어찌 됐든 이때 90% 정도는 좋아졌다.
(새) 엄마는 처음부터 내가 머리를 뽑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에 놀러 온 이모가 허연 내 땜빵을 보고 놀라자 엄마는 몇 년간 구경도 안 해본 피부약 핑계를 대면서 "요새 약이 독해서 저렇다."라고 둘러댔다. 치료를 받으면 어렵지 않게 좋아질 일을 보호자로서 피할 궁리만 했던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두 번째 단계는 앎
전자공학과를 마친 나는 졸업당시 평점이 3.0을 넘지 못해 취업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마침 운명의 이끌림으로 의료공학 석사 과정을 시작했고 졸업 후에도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었다.
의과대학 도서관 이용이 가능하여 내 발모벽에 대한 논문과 정신의학 관련 서적들을 원하는 데로 볼 수 있었다.
발모벽에 대한 분류, 원인, 증상 등을 수집할 수 있었고 특히 교과서에서 엄연히 다뤄지는 것을 보고서 나는 굉장한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나만 이런 짓을 했던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이런 병이 있었던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런 증상이 있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결성하여 함께 이겨내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거구나'라고 느꼈고 괴물 같았던 내가 용서받는 기분이었다.
세 번째 단계는 제대로 된 심리상담
병원에서 짧은 기간 상담이나 무료 심리 상담은 여러 번 받아왔지만 엉망진창인 내 인생을 구하고자 2022년 47살에 절박한 심정으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믿을 수 있는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고 2024년 11월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나의 경우 발모벽과 관계된 감정은 불안과 분노였던 것 같다.
엄마와 아빠가 나를 미워할까 봐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기 위해 아예 모든 감정들이 마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부정적인 감정은 완벽히 통제되지 못하고 상대방 대신 가장 안전한 대상인 나에게 엄청난 불안과 분노로 공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 2024년 마침내 발모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마지막 네 번째는 모발이식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발모 행위를 한 결과 모근이 손상되어 발모 부위만 흰머리카락이 난다. 흰머리카락만 난다면야 괜찮겠지만 문제는 현저히 낮은 밀도인 데다 가늘고 길이는 10센티도 자라지 못한다. 탈모 관련 병원에서 말하길 그 정도 발모 기간이라면 머리카락이 하나도 안 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데 이 정도 나는 것만 해도 용하다는 것이다. 발모는 중단되었지만 그곳은 여전히 땜빵처럼 보였다.
나와 그리 가깝지 않은 성당 성가대원이나 회사 동료들 상당수가 노출된 나의 허연 발모 자리를 목격하고 걱정해 주었다. 심지어 길에서 만난 처음 보는 사람도 그곳을 목격하고는 "아이고~ 아가씨가 이를 어쩌나 쯧쯧"하기도 했는데 그 수치스러움은 정말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다.
심리 상담으로 마음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과 동시에 신체에 남은 상처도 회복이 필요했다.
모발이식을 통해 비어보이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보강이 되었다.
취약성에서 나오는 아름다움
2010년대 영어 공부를 위해 TED 강연을 하나씩 선택하여 영어로 발표하는 스터디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를 위해 이 강연 저 강연을 고르다가 보석 같은 강연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브레니 브라운의 'The power of vulnerability'인데 나의 아픈 마음을 크게 건드려 주었고
그 후 내 생각에 큰 영향을 미쳤던 강연이다.
https://youtu.be/iCvmsMzlF7o?si=YqIyyzboHA2vZsya
많은 사람들이 취약성을 약점으로 인식하지만 취약성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고, 취약성을 허용하고 드러낼 때 자신을 더욱 강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메시지가 강연의 핵심이다.
자로 그린 듯 온전하고 반듯한 모습이 아니라 고난을 겪어내고 굽이진 다양하고 불규칙한 모습에서 우리는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끼지 않은가.
앞서 말한 것처럼 나의 발모 자리에서 자란 모발은 모근이 손상되어 그 부분만 흰머리가 대부분이다.
속이 비치지 않을 만큼의 모발 이식으로 수치심을 넘어설 정도는 되었고 나의 흰머리카락은 이제 내 고유의 문양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동학대니 발모벽이니 무거운 얘기를 떠벌릴 필요가 없기에 속내를 모르는 지인들은 "아유~ 새치 염색해~"라고 하기도 하지만 나의 눈엔 당당하고 아름답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