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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Jun 08. 2024

책거리

문화교실 한문서예반에서 내가 체본으로 사용해 온 책이 오늘로 마지막 쪽을 마치고 ‘대미를 장식’했다. 체본은 해서체 『천자문』이다.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시작하여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나는 『천자문』 말이다. 퇴직한 직후인 2019년 1월부터 시작했으니 꼭 5년 반이 걸렸다. 일주일에 8자씩 썼으니 글자 천 개를 5년 넘게 쓴 것이다. 그 사이 팬데믹으로 2년 정도 수업이 없었으니 실제로 교실에 나와서 쓴 기간은 3년쯤이다. 체본으로 『천자문』을 고른 것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처음 붓글씨를 쓰고자 했을 때는 한문 서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해서체가 무엇인지 행서와 예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 단지 무슨 회화(그림) 같은 글자는 전서라고 하고, 무슨 글자인지 도무지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휘갈겨 쓴 기묘한 글자’를 초서라고 하는 것 같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수업 첫날 선생님은 서체의 종류와 한중일 3국의 서예(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일본과 중국은 이름이 다르다)와 서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한 후 각자가 쓰고 싶은 서체를 정하고 그에 맞는 체본을 준비하라고 했다. 설명을 듣긴 했지만 캄캄한 밤중에 길 나서는 심정과 다름없어서 궁리하다가 마침 집에 해서체 『천자문』 한 권이 있는 것이 생각나서 그 책으로 정한 것이었다. 언젠가의 글에서도 적은 바 있지만 나는 장년에 들어 (회사 생활이 조금 여유가 생긴 틈을 타서) 이것저것 취미 생활에 몰두했었다. 단소를 배우고, 문인화를 배우고, 클래식 기타와 어쿼스틱 기타를 배우러 다녔다. 그 모두가 3년을 넘지 못했다. 갑자기 부서가 바뀌는 바람에 시간을 낼 수 없었거나 해외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져서, 또 은퇴 후에는 수강료가 부담스러워서(아내의 눈치도 의식해서) 같은 다양한 ‘사연’이 있었지만 공통적이라면 끈질기게 무엇 하나를 지속하지 못하는 조급성 탓이라고 해야겠다. 문인화를 배울 때인데 2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수묵 사군자를 떼지 못하는(남들은 채색 사군자에 풀벌레다 갈대다 모란이다 하고 나날이 발전해 가는데) 나를 보고 안쓰러웠던지 ‘선생님은 붓글씨를 한 번 써보시지요’ 했다. 그때 나는 ‘아, 선생님이 내가 도무지 문인화에 재주가 없어 보이니 차라리 붓글씨를 써보라고 하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면서 참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말이 있은 다음 주에 선생님은 서예 체본 한 권을 가져와서 나를 주었는데 그게 해서체 『천자문』이었다.      



지지난 주인가 이제 지긋지긋한 『천자문』 쓰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중얼거리는 내 말을 들은 옆자리의 L 선생이 책 한 권을 떼면 책거리를 해야 한다고 귀띔을 해준 바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에 오전반 누구누구가 체본 뗀 기념으로 떡을 돌리는 걸 얻어먹은 기억이 있는지라 내심 고민을 하던 참이었다. 마침 이달 말이면 1학기가 끝나고 잠시 방학이 있으니 그때까지 밍그적 대다가(한 두 주 결석하면 방학 전에 책을 떼지 못하는 셈이 되니) 슬쩍 넘어가버릴까 하는 ‘간교한’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이미 옆 사람도 알아버린 일을 그런 수작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속 보이는 생각이어서 그분과 상의 끝에 편의점에 가서 얼음과자 스무 개를 사 와서 돌리는 것으로 책거리를 마쳤다. 이렇게라도 하고 나니 마음은 편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책거리(한자로는 冊거리라고 쓴다)는 ‘글방 따위에서 학생이 책 한 권을 다 읽어 떼거나 다 베껴 쓰고 난 뒤에 선생과 동료들에게 한턱내는 일’이라고 적혀 있다. 책 한 권을 뗀다는 게 이처럼 대견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에 일면 흐뭇한 기분이었다. 돌아보니 비록 팬데믹이라는 특별한 기간이 덧붙여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5년 넘게 한 가지 일을 지속한 것이 내게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집에서는 연습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이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한 시간이지만 그래도 할 일 없이 논 것보다야 나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선생님의 강요에 못 이긴 것이긴 하나 지방 어느 휘호대회에 작품을 제출하여 입선이라는 나로서는 ‘대단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작품 제출을 미루고 미루는 내게 선생님은 ‘입상이 문제가 아닙니다. 목표를 정해서 그걸 완성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실력 향상에 더없는 훈련이 되니까요’ ‘20자에 불과하지만 그걸 100장 정도 써보시고 그중 낫다고 생각되는 거 몇 장 보여주세요’ 하고 채근한 결과다(염천지하炎天之夏에 100장을 쓰면서 얼마나 투덜거렸는지!). 나중에 족자로까지 만들어서 입선 상장과 함께 보내온 내 작품을 보고 ‘이 따위를 글씨라고 썼는가’ 하는 자괴감에 둘둘 말아서 베란다 벽장 안에 처박아버리고 말긴 했지만. 그뿐이랴? 과천의 추사기념관에 구경가기도 했고, 유홍준 선생의 『추사 김정희 평전』을 읽었고, 서예를 소재로 쓴 이문열의 소설 「금시조」를 찾아 읽는 소득도 있었다. 2학기부터 체본으로 삼을 책은 왕희지王羲之 집자集字의 『반야심경』이다. 행서를 써보고 싶다고 했더니 골라준 것이다. 『반야심경』은 260자로 『천자문』과 비교하면 4분의 1의 분량이다. 또 중복되는 글자가 여럿이어서 힘이 덜 들 거라고 한다. 일주일에 8자씩 쓰면 1년도 채 걸리지 않아서 또 한 번의 책거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써보고 싶은 한문 글은 많다. 당시唐詩를 비롯하여 우리 옛 한시漢詩가 그것들이다. 그동안 읽고 베껴놓은 한시가 노트로 몇 권은 된다. 어디 베낄 글이 없어 못 쓸 것인가? 천성이 게으르니 그저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기만 할 뿐이지······. 노트를 뒤적이니 이런 글이 보인다.      



거울은 제 자신을 비출 수 없고, 저울은 제 스스로를 달지 못하며, 칼은 제 자신을 찌를 수 없다.

鏡不能自照, 衡不能自權, 劍不能自擊     

젊어서는 순조로운 환경에 처해서는 안되고, 늙어서는 역경에 처해서는 안되며, 중년에는 한가로운 환경에 처해서는 안된다.

小年處不得順境, 老年處不得逆境, 中年處不得閒境     


청나라 초기의 문장가 장조張潮의 글이다(정민 교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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