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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Jun 22. 2024

‘이 한 생’

노년단상 19

황동규 시인이 새 시집을 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18번째 시집이라고 한다. 기사 제목이 <“내 마지막 시집은 없다” 86세에 낸 18번째 시집>이다. 기사 상단 오른쪽에 헌팅캡을 쓴 시인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 눈가와 볼에 주름살이 작은 고랑을 이루고 있다. 나는 젊어서부터 황동규 시인의 시를 좋아해서 그의 시집 여러 권을 읽었다. 노트에 베껴 놓은 시들도 많다. 시집뿐 아니라 『시가 태어나는 자리』 같은 자작 시론집과 산문집도 읽었다. 황 시인의 시집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은 1974년 민음사에서 오늘의 시인 총서로 나온 시선집 『삼남에 내리는 눈』이다. 물론 그 책에 실린 시들이 좋아서였지만 김병익 선생이 쓴 시집의 해설도 기억에 남았다. 특히 황동규 시인과의 인연에 대해 쓴 대목이 그랬다. 김병익 선생은 ‘아마 이 시집의 선량한 독자를 위해서 황동규에 대한 나의 우정을 먼저 고백해야 할 것이다’로 해설을 시작한다. 두 분이 처음 만난 것이 1958년 2월 동숭동 교양학부 캠퍼스였다고 하니, 그들의 나이 스물을 갓 넘긴 시기였을 터이다. 처음 만난 그다음 달 두 사람은 계룡산 갑사의 한적한 여관방에서 이틀을 지낸 이후 17년 동안(이 시집이 나온 1974년을 기준으로) 이어져 온 우정을 말하고 있다. 나는 그 시집의 해설을 읽고 그 우정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2년인가 3년 후 겨울 방학 때 혼자서 계룡산 갑사에 갔었다. 해설자의 글처럼 ‘계룡산 갑사 근방은 막 녹기 시작한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정작 우정의 대상이 없는 그 여행이 쓸쓸함밖에 없을 건 뻔한 것이었다. 세월이 많이 지난 2019년 여름, 나는 가족 여행 때 갑사를 다시 갔었는데 계절도 달랐지만 무엇보다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 특별한 감회는 느낄 수 없었다. 황동규 선생 시에는 ‘여행시’가 많아 한때 나는 선생의 시들에 나오는 장소를 정리해서 한곳 한곳 찾아가 볼 계획까지 세우기도 했었지만 게으른 탓에 실현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까지 이르고 말았다. 신문에 실린 선생의 모습을 보며 참 멋있게 노년을 사시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중앙일보에 한 주에 한 번 이문열 선생의 회고록이 실리고 있다. 우리 문학사를 풍요롭게 장식할 굵직한 작품을 여럿 발표한 작가인 데다, 범상치 않은 가족사와 만만치 않은 경력으로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작가이니만큼 작품에 관한 이야기 못지않게 우리 시대의 중요한 대목들을 살펴볼 수 있어 그의 회고록이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겠다. 이제 9회까지 진행된 것만 보더라도 작가의 책 장례식에 얽힌 사연, 첫 소설 『사람의 아들』을 쓰게 된 배경, 월북한 부친을 소재로 한 소설 『영웅시대』, 페미니즘 논쟁, 한나라당 공천 관련 이야기 등이 나오는데 한 사람의 문학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폭 넓은 행동반경과 광범위한 작품 소재 등이 앞으로 이어질 사건(?)들을 기대하게 한다. 그의 회고록은 30회 정도를 예상한다고 한다. 나는 연재가 완료된 후 한꺼번에 읽을 요량으로 차곡차곡 스크랩만 해놓고 있다.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남편인 이어령 선생과 함께한 70년을 회고하는 책을 냈다. 강인숙 선생은 스무 살 대학 신입생 때 이어령 선생을 만났다고 한다. 책은 두 분이 함께한 인연과 에피소드, 생전의 이어령 선생에 관한 에세이들로 구성된 것 같다. 이어령 선생이 스스로 집필한 자서전 성격의 글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이 책은 선생을 오랫동안 곁에서 보아온 아내로서 선생의 생생한 모습을 담있을 것이기에 더욱 그 내용이 궁금하다. 겉모습으로는  날카롭게 보이는 선생의 보다 진솔한 모습을 그 책을 통해서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유튜브에서 우타고코로리에(歌心リえ)라는 가수의 노래를 들었다. <흐르는 강물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이라는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다. 내가 처음으로 일본에 부임한 해가 1989년 말이었다. 쇼와(昭和)가 끝나고 헤이세이(平成)가 시작되던 해다. 일왕이 사망한 해였는데 TV나 서점에서는 온통 미소라 히바리가 화제였다.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라는 가수 이름은 들은 적이 있지만 그에 대해 아는 바는 없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길래 일본 전국이 이 사람 이야기로 넘쳐나는지 의아했다. 그 당시 방송에서 자주 들을 수 있던 노래가 <흐르는 강물처럼>이었다. 미소라 히바리의 마지막 곡이라 했다. 노래가 퍽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미소라 히바리에 대해서 하나둘 알아보았다. 아주 어려서부터 노래를 부르고 영화에 출연한 만능 연예인, 전후 일본의 암울한 사회에 보석처럼 빛나던 존재, 사망한 후에도 일본의 전설적인 가수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사람, 아버지가 한국인, 뭐 그런 정보들이었다. 나는 일본에 근무하는 동안 회식 자리에서 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 부르기 쉽지 않은 노래였지만 노래에 담긴 의미가 좋아서였다. 남이야 뭐라건 제멋에 겨워 불렀다. 이 노래를 부를 때 이미 미소라 히바리는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이니 아마 이게 자신의 마지막 곡이 되리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3절로 구성된 짧은 가사는 미소라 히바리의 일생을 회고하는 듯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삶에 대해 썼겠지만(자신이 직접 쓴 회고록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게는 이 노래가 ‘노래로 부른 자서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권의 책보다도 오히려 울림이 더 큰. 유튜브에 번역 가사가 나오니 궁금한 분은 찾아보시기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정리해서 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예술가나 사상가, 종교인이나 정치인 같은, 한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치열하게 산 ‘비범한 사람들’의 글에는 역사가 있고 사회가 있고 인간이 있어 읽는 사람을 감동시킨다. 또 미처 알지 못했던 비화와 사연이 풍부해서 소설 못지않은 재미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남긴 글들은 자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그러니 회고록이다 회상기다 하고 이름붙인 글들은 특별한 삶을 살았던 유명인들이나 쓸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회고록은 그런 유명인들만의 영역일까? ‘특별한 삶을 살지 못한’ 무명의 장삼이사의 삶 또한 고유하고 소중하다.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인생에도 뜯어보면 곡절과 사연은 차고 넘칠 것이다. 그 속에서 뭔가 거창하고 박진감 넘치는 삶의 의미를 건져내는 데는 제한적일지 모르나 자잘하고 사소한 일상에서 오히려 더 잔잔하고 애틋한 삶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회고록이란 ‘자신을 돌아보는 기록’이라는 의미겠지만 결국은 남이 읽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을 독자로 상정한 회고록을 생각해 본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해 보는 작업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 우리 모두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서 글로 만드는 그런 아름다운 일을 했으면 좋겠다. 유명 문인들의 회고 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제목으로 쓴 <이 한 생>은 황동규 시인의 시 제목이다. 아래는 그 전문이다.      


책에서는 보기 힘들다고 했어

서달산 산책길을 조금씩 조금씩 벗어나 걷다가

혼자가 아닌

겨우살이 둘이 올라 사는 나무를 만났지.     


숙주에게 너무 부담 주는 기생(奇生)은

서로에게 안 좋다지만,

때마침 곤줄박인가

둘 중 더 큰 겨우살이의

조그만 반투명 황록색 열매를 쪼아 먹고 있었어.

좀 끈적끈적하겠지만 맛있게.

숙주 참나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조용히 서 있었지.     


미리 와 앉은 기생자가 뵈지 않을 때도

내 위에 내려앉지 마라

손사래 치던 세상의 숙주들이여,

내가 한평생 같이 살고 그나마 남기고 갈 건

힘들지만 기생시키고 또 스스로 기생한 일들.     


<표지 그림은 연규혜 작가의 작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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