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쓰던 방을 정리하여 (그토록 소원하던) 서재로 꾸몄다. 한 평 남짓한 방이라 가지고 있는 책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책들 중 일부를 모아놓을 수는 있었다. 며칠에 걸쳐 옮겨 놓을 책들을 정리하면서 중고서적상에 팔거나 버린 책도 많았다. 이제 다시 읽을 일은 없을 책들임을 알면서도 버리기가 아까워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이런 책이 있었나 하며 새삼 발견한 책들도 있었다. (밑줄이 쳐져 있거나 여백에 메모가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예전에 읽었을 책이지만 몇 쪽을 읽어보면 전혀 새로운 내용을 보는 기분이었다. 『조용헌 살롱』도 그중 하나였다. 한때 이분의 책에 매료되어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조용헌의 고수 기행』, 『조용헌의 사찰 기행』 등 여러 권을 읽었다. 조선일보에 연재한 짧은 칼럼을 묶어서 낸 『조용헌 살롱』도 그중 하나다.
글 중에 저자가 걸어본 길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길 세 곳을 소개한 「길에서 생각한다」가 있다. ‘문경새재 길’, 일본 교토에 있는 ‘철학의 길’, 그리고 서울 ‘남산의 길’이 그것이다. ‘문경새재 길’은 ‘조선 선비의 꿈과 역사가 어우러진 고색창연한 길’이고, ‘철학의 길은 긴가쿠지金閣寺에서 난젠지南禪寺에 이르는 2.5킬로미터 정도의 길’이며, ‘남산의 길은 국립극장에서 케이블카 입구에 이르는 3킬로미터 거리의 길’이다. 2006년에 출간된 책이니 그동안 세월이 많이 지나 저자가 열거한 길들이 여전히 ‘돈 걱정과 인생의 번뇌를 내려놓을 수 있는 휴식의 길’인지는 모르겠다. 세 곳 중 ‘철학의 길’을 제외한 두 길은 걸어본 적이 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 둘과 함께 문경새재 길을 걸었다. 벌써 50년도 더 전의 일이라 기억이 희미한데 새재 길보다 제3 관문인 조령관을 지난 큰길에서 보았던 한옥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김동길 박사가 누나인 김옥길 총장을 위해 자신의 저서 인세를 모아서 지은 집이라고 들었다. 실향민인 남매가 북한의 고향 마을과 산세가 비슷한 곳을 찾아 전국을 다닌 끝에 발견한 장소라고 했다.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밖에서 보기에 규모가 상당한 집이었다.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그렇게 평화롭게 보일 수가 없었다. 정문 양쪽 기둥에 금란서원, 이화학당이라는 옥호가 적혀 있었다. 문 안을 기웃거리며 그때 우리 셋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우리도 이런 집 하나 지어서 살자’는 ‘허황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서울 ‘남산의 길’은 퇴직 후 일본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을 취득한 후 실습 삼아 가본 길이다. 이 구간이 한양도성 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장충동 신라호텔 옆길을 기점으로 국립극장을 거쳐 팔각정을 지나 남대문시장으로 내려오는 코스에 속한다. 두 번을 답사했는데 꽤 가파른 길이다. 조용헌 씨의 글에 따르면 ‘4월 중순부터 하순까지는 하얀 목련과 노란 개나리를 시작으로 분홍색 진달래, 벚꽃 그리고 이제 막 올라오는 연두색의 새싹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꽃길’이라고 한다. 올봄에는 꼭 이 길을 걸어보아야겠다. 2018년 퇴직한 후 나는 ‘이름난 길’들을 걸어볼 생각으로 이틀이 멀다 하고 길을 찾아 나섰다. 한양도성 길을 네 개의 코스로 나누어 두 번 돌았고, 동아일보 사옥을 기점으로 살곶이다리까지 청계천 길을 두 번 걸었다. 한 번은 물길을 따라, 또 한 번은 찻길을 따라 걸었다. 임석재 교수의 책(『서울 골목길 풍경』)을 길잡이로 서울의 골목길 9곳 중 8곳을 걷기도 했다(청파동 골목길 한 곳만 남겨놓고 있다). 언젠가는 서울 시내를 벗어나 전국의 이름난 길을 걸어볼 계획으로 스크랩해 놓은 자료도 많지만 게으른 탓에 허송세월하며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스크랩해놓은 자료에는 우선 황동규 시인이 꼽은 「걷다가 사라지고 싶은 곳, 네 곳」이 있는데, 대천 부근 뻘밭, 울진 소광리 가는 길, 정선 가수리 길, 안성 청룡사가 그곳이다. 연극인 안치운이 쓴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에도 13곳의 길들이 소개되어 있다. 물론 제주 올레길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세월은 속절없이 가고, 기력은 차츰 쇠잔해지니 아마 ‘계획으로 끝나기’ 십상일 듯하다.
한국의 길들도 가보질 못하는 주제에 세계의 길을 열거하는 게 주제넘은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몇 마디 적어보고 싶다. 퇴직이 다가오면서 나는 퇴직 후에 이루고 싶은 꿈으로 ‘걷기’를 많이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나는 걷는다』라는 책(1권)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30년 간의 기자 생활에서 은퇴하고 부인과 사별한 저자가 예순두 살의 나이로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1만 2000킬로미터를 4년에 걸쳐 도보로 여행하는 계획(계절을 고려하여 5월에서 10월까지만 걷는 일정)에 따라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이란 국경인 에르주룸까지 여행한 기록을 담은 것으로, 전체 3권 중 첫 권에 해당한다. 이 책이 출판된 것이 2003년이니 아직 산티아고 순례 붐이 일기 전이었다. 그 먼 거리를 도보로 여행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감동적이라 당시 나는 동료나 선배 직원의 퇴직 기념 자리마다 이 책을 소개하며 퇴직 후의 계획으로 걷기 프로젝트를 제안하곤 했다. 늘 그렇듯이 ‘계획에만 충실’한 나는, 적잖은 친구들이 퇴직 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고(몇몇 일본 친구들은 1,400Km에 이르는 시코쿠四國 88개소 레이조靈場-사찰이나 신사 등 종교적으로 신성한 곳-를 순례하기도 했다) 더러는 여행기까지 책으로 냈지만 나는 그저 입으로만 떠들고 계획만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더 어이없는 일은 실행에 옮기는 것은 엄두도 내질 못하면서 책으로 섭렵하는 데는 열성인 것이다. 그리고는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이나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 같은) 책에서 읽은 지식을 들먹이며 다녀온 사람보다도 더 실감 나게 설명하는 꼴이라니!
이제 이런 ‘가당찮은’ 꿈은 꿈으로만 남겨두고 요즈음의 일과 중의 하나인 아내와 함께 하는 산보에나 충실해야겠다. 50분 남짓 걸리는 동네 야산(정발산) 오르기와 1시간 반 정도의 호수공원 걷기 말이다. 길은 도처에 있으니······.
<제목을 ‘길에서 찾는 길’이라고 붙였다. 누군가의 시에서 본 문장이 아니었나 싶은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