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에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가제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금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떠올린다. 음영과 윤택의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버린 꿈을 잃은 헌출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시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자리를 깊게 파고 다 타버린 낙엽의 재를-죽어버린 꿈의 시체를-땅속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소설가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수필의 한 대목이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것이다. (이양하의 <신록예찬>도 그렇고 민태원의 <청춘예찬>, 이백과 두보의 시, 정철의 <관동별곡> 등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글들은 그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어찌 이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일까?). 낙엽이 ’꿈의 껍질‘이라는 표현이 신선하고, 낙엽이 타는 냄새를 맡으며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낀다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마당에서 낙엽을 태우는 풍경! 도시의 삭막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해볼 수 없는 일이라 더 낭만적이고,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기러기들이 오고, 제비가 돌아가고, 뭇새들이 먹이를 갈무리하고, 천둥이 비로소 소리를 거두고, 겨울잠을 자려는 벌레들이 굴문을 좁히고, 물이 비로소 마르니 8월··· 이라고 옛사람들은 말하였다. 가을이라는 것이다.·····‘.
『만다라』의 소설가 김성동이 어느 산문에서 쓴 대목이다. 자연의 변화가 일상생활 속에 체화된 삶을 살던 옛사람들이나 떠올릴 수 있는 표현이다. 자연의 변화를 그저 덥고 춥다는 동물적인 감각으로나 포착하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우리는 얼마나 메마른 삶을 살고 있는지·····.
특별할 것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지만 그래도 이 나이까지 살면서 거쳐온 수십 번의 가을 속에서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몇 가지 풍경이 없을 수는 없다. 우선 세 번의 설악산 봉정암 산행을 적어야겠다. 물안개 자욱한 백담 계곡과 핏빛 단풍으로 불타는 듯하던 기암준봉의 장관이 어제 본 듯 선명하다. 가고 오는 길이 너무 힘들어 이제 다시는 갈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더욱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서른몇 해 전 늦가을, 미국 연수를 위한 출장길에 틈을 내서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을 갔었는데 정작 폭포보다는 폭포로 가는 도중에 본 캐나다의 농촌 풍경이 더 인상적이었다. 계절이 가을이었기에 그 평화로운 모습이 한층 더 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캐나다에 주재 근무하는 직원을 많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7년 전 10월 연휴 때 아들과 함께 당일치기로 다녀온 지리산 여행도 잊을 수 없는 가을의 추억이다. 용산역에서 심야 열차를 타고 이른 새벽에 구례구역에 내려 버스로 성삼재까지 이동한 후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거쳐 반야봉에 올랐다가 피아골로 하산해서 버스로 구례구역까지 이동하는 강행군의 여정이었다. ’ 칠흑 같은 ‘ 어둠을 뚫고 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1시간 남짓의 길에서 올려다본 하늘의 별들은 장관이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하늘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반야봉(1732m)까지 올랐다가 하산길은 피아골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는데, 노고단을 거쳐 다시 성삼재로 와서 버스로 구례역까지 이동한다는 당초의 계획을 변경한 것이었다. 반야봉에서 우리 부자의 사진을 찍어준 등산객 부부의 조언에 의한 것이었다. 피아골! 익숙한 지명이고 단풍으로 유명한 계곡이지 않은가? 아직 단풍을 보기에는 이른 시기였지만 계곡은 깊고 물은 맑았다. 그러나 피아골로의 하산길은 고행길이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 꼬박 4 시간이 걸렸다. 피아골 산장에서 컵라면 하나씩을 먹고 계곡을 따라 피아골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내려왔을 때 내 무릎은 정상이 아니었다. 이후 몇 달 동안 무릎 통증에 시달려야 했고 지금도 정상이 아니다. 구례구역으로 오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오후의 섬진강은 아름다웠다. 근처의 식당에서 재첩국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 나는 아들과 머지않은 장래에 천왕봉까지 종주하기로 약속했었지만 아직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아마 영원히 지키지 못할 것이다. 아들은 요즘도 가끔 그때 그 지리산 등산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요즘 아내는 가끔 ’통영에서 한 달 살기‘를 말한다. 이왕이면 ’파리에서 한 달 살기‘나 ’베네치아에서 한 달 살기‘ 같은 계획이면 좋겠지만 이제 그런 ’꿈‘이 무리라는 걸 알기에 국내의 장소로 바꾼 것이다. 통영을 지목한 것은 몇 년 전 여름휴가로 다녀온 통영에 대한 인상이 좋았던 탓이다. 통영은 섬도 많고 또 거제와도 가까워 구경할 곳도 많고 무엇보다 먹거리가 좋아 (특히 가을에) 한 달쯤 살아볼 만한 곳 같아 나도 동감이다. 내년 가을에는 통영에서 한 달 살기 하며 ’통영 일기‘ 같은 것이라도 써보면 그 또한 아름다운 일일 듯하다. 과한 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