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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Jul 01. 2022

일본어 공부

책거리 자축을 겸한 넋두리

일본어본 고흐의 전기 번역을 마쳤다. 2020년 9월에 시작한 일이니 1년 9개월이나 걸렸다. 이렇게 쓰면 내가 무슨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오해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일본어 공부 겸 내가 읽기 위해 번역한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하루 2페이지씩 번역하는 계획을 세워 놓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게으름을 피우는 날이 많아서 진도가 지지부진했다. 책은 데이비드 스위트만이라는 영국인이 쓴 『The Love of Many Things : A Life of Vincent van Gogh』를 노나카 쿠니코(野中邦子)라는 분이 번역하여 문예춘추사에서 1990년에 발간한 것인데 일본판 제목은 『100년째의 진실』이다. 55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고흐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일본어 번역이라는 작업에 대해서는 역시 자신의 재주 없음만 재확인한 작업이었다. 이 책 이전에도 서너 권의 책을 번역해 본 적이 있다. 진순신(陣舜臣)의 『제갈공명』 상, 하권과 마츠모토 세이쵸(松本淸張)의 추리소설이었다.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일본어를 번역할 만한 전문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다. 일본어를 정통으로 배우지도 않았다. 특히 일본 고문古文에 대해서는 백지상태나 다름없다. 일본에서 몇 년 근무하면서 익힌 일본어 실력을 이용해 그저 일본어 공부 겸 일본 책을 읽고 싶어서 해보는 일이다. 책의 내용은 궁금한데 우리말처럼 ‘줄줄’ 읽지는 못하니 노트에 번역해 놓고 나중에 한꺼번에 읽으면 좀 더 잘 이해가 되려나 해서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축자역逐字譯 위주여서 매끄러운 번역 문장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대목은 일본어 원문 그대로 적어 놓기도 했다. 이렇게 장황하게 번역 경험을 늘어놓는 이유는 외국어로서의 일본어 학습 경험에 대한 소견을 적어보고 싶어서이다.       



1980년대 말 일본 주재 근무가 정해졌을 때 나는 ‘히라가나’를 겨우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일본어 왕초보였다. 부임해서 직원들 앞에서의 인사말도 영어로 했다. 직원들 가운데는 재일교포들이 많아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대외 업무가 많았던 나는 일하는 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흔히 알고 있는 대로 일본인들은 영어에 약해 원만한 업무 진행을 위해서는 나 자신이 일본어를 익히는 게 급선무였다. 몇 달 동안 한국에서 가져간 일본어 문법 교재로 기초 공부를 마친 뒤 낮은 단계의 일한 대역문고본에 이어 일본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공부하는 등 차츰 범위를 넓혀 갔다. 시간이 가면서 회화는 어느 정도 가능해졌지만 읽기와 쓰기는 만족할 만한 진전이 없었다.



일본어는 읽기가 쉽지 않다. 한자가 많은 일본어는 음으로 읽는 경우도 있고 훈으로 읽는 경우도 있어 읽는 법을 따로 익히지 않으면 헷갈린다. 많은 문장과 단어를 접해보며 발음을 익혀야 한다. 영어는 읽기는 쉬워도 뜻풀이가 어렵고 일본어는 (한자가 많아) 뜻은 대충 파악해도 읽기는 어렵다 하지 않는가. 일본어를 전공했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일본어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같다. 언젠가 일본어 직원 채용 면접에 참여해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사히신문의 사설을 프린트해서 나누어주고 읽어보라고 했다. 정확하게 읽은 사람이 반도  되었다. (나중에 간부 직원으로부터 ‘그렇게까지 면접을 보게 해야 하나 핀잔 비슷한 말을 들었다) 방금 아사히신문 이야길 했는데, 내가  달간 문법 위주로 공부하던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착안한 것이 신문 읽기였다. 신문 읽기를 통한 독해력 향상이 목적이었다. 며칠에  번씩 아사히신문을 비롯해서  가지 신문을 사서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 읽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사를 스크랩했다. 사설과 칼럼을 비롯해서 주요 기사들은 모두 오려서 읽었다. 모르는 단어는 A4 용지에 정리하여 기사와 함께 철했다. 때로는 하루분의 신문 스크랩이 얇은   권이  만큼 두툼했다. 그것들을 며칠에 걸쳐서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다. 신문 읽기는 단순히 일본어 공부에 그치는  아니었다. 일본 사회 전반에 대해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은 교재였다.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뿐만 아니라 관광, 패션과 요리 레시피에 이르기까지 일본에 관한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특히 신문의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은 문장의 격조도 높고 내용도 수준 높은 것들이었다. (아사히신문의 <텐세이진고(천성인어, 声人語)같은 칼럼은 일본 대학입시에 출제되기도 한다). 처음 일본에 주재하던 3 남짓한  기간을 거의 빼지 않고 이런 작업을 계속했다. 귀국할  대부분 버렸지만 그때까지 모은 스크랩을 쌓으면  키에 버금갈 정도였었다. 보잘것없는  일본어 실력이지만 그나마  정도라도   있게  기초는 그때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신문 읽기와 함께 보고 싶은 책들을  모았다. 일본어 학습 목적 못지않게 읽고 싶은 책이 많았기 때문이다. 값싼 문고본을 주로 사모았지만 더러는 두껍고 고급한 장정의 묵직한 책들도 구입했다.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면  책과 다름없는 중고 서적을 비교적  값에   있다. 그렇게 해서  7  동안 일본에 살면서  모은 책이 적지 않다.(권수를 밝히지 않는다. 무슨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그렇게나 ‘ 모으냐 아내의 원망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다)  읽은 책보다는 읽지 않은 책들이 훨씬(아주 훨씬) 많지만 그중 많은 것들은 정말 읽고 싶어서 구입한 책들이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중국 역사를 비롯한 수많은 중국 관련 서적을  진순신과, 방대한 일본 역사 소설과 에세이들을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등의 책들이 그러한데 흥미뿐만 아니라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교양서로서도 훌륭한 책들이라고 생각한다.  



 또 인상적인 것이 ‘일본어에 관한 책들이 많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에 가 본 것이 수년 전이라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문인, 학자들이 쓴 일본어 관련 일반교양서적들이 많았다. 이노우에 히사시나 마루야 사이이치, 오오노 스스무 같은 저명한 국어학자와 작가들이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쓴 일본어 문법 해설, 일본어 상담, 문장 독본 같은 책들은 자국어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엿보게 한다. 소설가 김원우 씨는 『일본 탐독』이라는 책에서 일본의 사전 편찬에 대해 부러워했다. ‘일본의 정신적 국력은 각종 사전류에 집약되어 있으며, 그렇다는 것은 그들의 어학 실력, 곧 다소 엉성한 언어 체계인 국어일망정 일본어를 갈고닦아 쓰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어, 한문과 같은 해당 외국어에 대한 놀라운 이해력, 정확한 사용법, 탄탄한 예문 등 실증적 본보기 앞에서 기가 질릴 정도’라고 적었다. 출판 왕국 일본도 요즘 독서인구가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처음 일본 갈 때만 해도 전철을 타면 열에 여덟은 책 읽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한, 둘도 안 된다. 인터넷 보급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일간지 하단은 책 광고로 채워지고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는 책은 끊임없이 나온다. 고지엔(広辞苑) 같은 두꺼운 국어사전도 일정 주기로 업데이트되어 출판되고 있다. 그들의 자국어에 대한 깊은 사랑은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번역해서 ‘읽고 싶은‘ 책이 여러 권 있어 어떤 책을 고흐의 후속책으로 할까 고민 중이다. 문고본인 무코다 구니코의 에세이집과 나카노 코지(中野孝次)의 『브뤼헐을 찾아가는 여행(ブリュゲルへの旅)두 권을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다.      


(책거리 : 학생이 책 한 권을 다 읽거나 베껴 쓰는 일을 끝냈을 때 선생과 친구들에게 한턱내는 일.

 피터르 브뤼헐 : 네덜란드 출신의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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