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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Nov 18. 2022

큰 병원에 가 보세요

노년 단상斷想 6

내게 위장 질환은 고질병이다. 20수 년 전 위궤양이 악화되어 위천공胃穿孔 수술을 받은 이후 위 기능이 정상이 아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소화불량 증세가 심하고 변비 현상이 잦아 소화제를 입에 달고 산다. 위천공 수술은 당시 주재 근무하던 한 동남아 국가의 병원에서 받았다. 극심한 통증으로 사무실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후 받은 수술이었는데 봉합 처리가 깔끔하게 되지 않았다. 필요 이상으로 길게 절개한 데다 항균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지 꿰맨 자리가 덧나서 통증이 심할 때는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 요즘이라면 이렇게 후진적(?)인 시술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 동남아 국가의 의료 수준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을 때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봉합 부위 일부의 재수술을 권하는 의사도 있었고 그럴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의사도 있었는데 통증이 심할 때면 외과나 피부과를 찾아 치료를 받아야 했다. 특히 올봄에는 증세가 심해서 거의 한 달 동안 동네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일주일에 두 번 병원에 가면 환부에 연고를 발라주고 사나흘 분의 약 처방을 해주었다. 약은 주로 진통제거나 항생제 같았는데 약을 복용하면서 소화불량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피부약은 ‘독하다’고 하는데 그런 영향이 있는 것 같았다. 한 달쯤 지나니 피부 통증은 나았는데 위장 장애는 심해졌다. 그러다가 5월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일주일 격리 생활을 하면서 치료약을 복용했는데 이게 또 소화불량을 가중시켰다. 변비도 심했다. 먹은 것을 제대로 배설하지 못하니 음식을 먹는 것이 두려웠다. 어쩔 수 없이 소화제를 찾게 되는데 그래도 양약보다는 낫겠거니 해서 주로 한방 소화제를 먹었다. 한방 소화제도 효과가 없자 (양배추를 재료로 했다는)‘카베진’ 같은 것을 번갈아 먹었다. 거의 이틀에 한 번 꼴이었다. 하지만 증상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변비약을 복용해도 처음 한 번만 약간의 효과가 있을 뿐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겪는 일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상태가 심하고 또 오래갔다. 혹시 ‘큰 병’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얼마 전 같이 건강검진 예약을 하자고 성화였던 (끝내 거절했다) 큰 아이가 내 증세를 듣고 야단이 심했다. 그러게 미리 병원에 가보고 건강검진도 하라고 했는데도 듣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2년에 한 번 하는 건강검진을 나는 매번 12월 마지막까지 미루다 떠밀려하거나 다음 해 상반기로 넘기곤 했다. 금년에도 가족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다음 달에, 다음 달에 하며 차일피일 미루어 왔다. 위 내시경 검사와 대장암 분변 검사도 4년 전에 받은 게 마지막이었는데 ‘올해는 받아야지’ 하는 말만 되뇌었다. 가족의 성화도 성화지만 최근의 증상이 여느 때보다 심한 것이 불안하여 내과 전문의 동네 병원에 건강검진을 문의하니 예약자가 많아 내년 1월이나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12월에 검진이 가능한 다른 병원에 예약을 해 놓았지만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화불량과 변비 증상은 점점 악화되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어 위장 진료나 받아보려고 동네 내과 병원에 갔다. 그 병원은 동네에서는 제법 효험이 있기로 소문이 난 병원이었는데 늘 대기 환자가 많았다. 의사가 둘이었는데 언제나 ‘원장’에게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들이 많았다. ‘원장’이라야 용할 것 같고 신뢰가 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같은 전문의라기에 굳이 원장이 아니라도 무방하다고 생각해서 원장 아닌 다른 의사의 진료를 받게 되었다. 젊은 의사였다('젊은 의사'라고 썼다고 해서 편견을 가진 건 아니니 오해없도록). 우리 모두 경험해서 잘 아는 사실이지만 환자는 주저리주저리 자신의 증상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환자의 말을 진득하니 들어주는 의사는 드물다. 하기야 환자의 말을 다 들어주자면 그 많은 환자를 언제 다 진료할 것인가? 나 역시 ‘과거 수술 경력부터 피부과 진료, 코로나 확진, 건강 검진 이력과 최근의 증상' 등을 빠른 말로 설명했는데 대뜸 의사는 ’큰 병원에 가보셔야겠어요 ‘ 했다. 위천공 수술에 따른 장협착 등의 우려가 있다며 소견서를 써 줄 테니 종합병원으로 가 보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부연할 말이 없어 ’ 알겠다 ‘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슴 한 구석이 서늘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는 겪어본 사람들은 잘 알지 않는가. 혹시 대장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는 하면서도 한편으론 20년도 더 전에 받은 수술인데 이제 와서 협착 이야기를 하는 게 의아하기는 했다. ’오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문 의사의 말이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로 종합병원에 전화를 하니 일주일 뒤로 예약이 잡혔다(아마 진료 의뢰서 덕택에 조금 빨리 잡아 준 모양이었다). 병원에 다녀온 내 이야기를 들은 아내도 별 것 아닐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역시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늘 소화불량과 변비 타령을 하고 살아온 사람이지만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이번 증상은 좀 심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뒤 종합병원 소화기 내과 의사의 진료를 받았다. 나는 또 과거 수술 이력 등 병력과 최근 증상 등을 미주알고주알, 혹시 도중에 말이 끊길 새라 숨 돌릴 새 없이(말이 많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중간중간에 끼워 넣으면서) 늘어놓았다. 50 중반으로 보이는 의사는 컴퓨터에 문자를 입력하면서 의외로 잠자코 내 말을 들어주었다. 내 말이 끝나자 의사는 대장에 큰 문제가 있으면(아마 대장암 같은 병을 말하는 것일 테다) 혈변이 나오거나 통증이 있게 마련인데 그런 게 없다면 그럴 염려는 없고, 변비약은 한두 차례 먹어서 나아지지 않는다면서 2주일 치의 약 처방을 해주었다. 그리고  이번에 건강검진할 때 위 내시경과 분변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병원을 나와 아내에게 전화해서 결과를 알려 주어 안심을 시켰다. 아내는 다행이라고 하면서 식이 요법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내 운동 부족의 게으름을 나무라며 ‘제발 운동 좀 하라’는 충고를 덧붙였다. 조금 지나 아이들이 잇달아 전화를 해 왔다. 자기들 딴엔 걱정이 되었던 듯하다. 큰 아이로부터는 ‘건강검진에 대한 다짐과 운동 강조’의 훈시(?)를 들었다. 마침 이날은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던 날이라 약속 장소로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얼마 전 신문에서 한 의료 전문인이 쓴 건강검진에 관한 기사(중앙일보 10월 31일 자 기사)를 보았는데 공감이 가는 대목이 많았다. 우리나라 성인 건강검진은 만성질환을 조기 발견하기 위한 일반건강검진과 암을 조기 발견하기 위한 암 검진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일반건강검진 항목 11개 중 7개는 의학적으로 권고되지 않는 건강검진 항목이다. 흉부 방사선 촬영, 빈혈, 이상지질혈증, 간 기능 검사, 신장기능 검사, 골다공증 검사, 치매 검사 등 7개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건강검진 항목 중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항목은 고혈압과 당뇨병, 비만도, 우울증 검사뿐이다. 건강감진을 남용하면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수 있고, 검진 항목에 따라 다르지만 건강검진에서 병이 의심되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실제로는 병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합병증이 생기기도 한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대장내시경도 간혹 장 천공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생긴다. 아내에게 이런 내용을 말하니 ‘당신은 어떻게 하면 건강검진을 미루어볼까 하는 마음에 그런 이야기에는 눈이 번쩍 뜨이는 모양이야’라고 퉁을 맞았다. 지나친 건강염려증도 문제고 검사 기피증이 과도한 것도 문제인 듯하다. 하지만 몇 살까지 살던 아프지 않고 살려면 적당한 운동과 주기적인 건강검진이 최선의 방책인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는 것 같다. (말로만?)

하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카톡으로 보내주는 지인들의 '건강 비법'(비법이 너무 많아 '秘法'이라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만 잘 따라해도 '무병장수'는 걱정할 일이 아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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