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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Jun 18. 2023

다시 쓰는 일기 24 – 2023. 6. XX

꿈, 그리고 잃어버린 안경

도봉산 망월사에 갔다. 세 번째다. 두 달 전 그렇게 고생하며 헤매다가 겨우 찾아간 절이니 원망할 법도 한데 나는 무엇에 이끌려 자꾸 이 절에 가나. 집에서 망월사역까지 전철로 1시간 반, 망월사역에서 망월사까지 산길로 1시간이다. 오늘 낮 최고 기온이 27도라고 한다. 넓은 도로를 지나 산길로 접어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등은 땀에 젖어 끈적거리고 속옷은 축축하다. 지난 두 번의 경험을 살려 오늘은 작은 배낭을 메고 왔다. 배낭 안에 수건 하나와 점심으로 먹을 김밥 한 줄과 작은 생수 한 병, 그리고 아내가 싸준 과일 몇 조각을 넣었다. 1시간 산길도 힘이 들어 15분쯤 걷고는 5분을 쉰다. 비 오듯(이런 표현밖엔 못 하나?) 흐르는 땀을 물에 적신 수건으로 훔쳐내며 좁고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햇살은 따갑지만 산은 푸르고 물은 맑다. 저만큼 앞에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날카로운 눈빛이 비수 같다. 이 녀석은 사람이 다가가는데도 비킬 생각을 않다가 마지못한 듯 비실비실 물러간다. 이 산속에 웬 고양이? 그것도 검은 고양이! 바위 위에 앉아 잠시 쉬는데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내 앞에서 날아간다. 조급하지 않은 몸짓이다. 우아하기까지 하다. 마치 날 따라오라고 손짓하듯 이 풀에서 저 풀로 날다가 다시 내 앞을 지나간다. 나는 하얀 나비를 보면 뜬금없이 누군가의 영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한강변 풀밭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었고 어느 마을 동네를 지나가다가도 그랬었다. 두 마리, 세 마리도 아닌, 노랑나비도 호랑나비도 아닌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내 주변을 맴돌다가 사라지는 모습이 내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김정호도 <하얀 나비>라는 노래를 불렀다. 왜 하필 그는 ‘하얀 나비’라는 노래를 만들었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걷다 쉬다 하다 보니 그새 물 한 병을 다 마셨다. 절 입구가 가까웠다. 지난번에 다녀갈 때 보았던 연등은 보이지 않았다. 초파일이 지났기 때문이다. 오늘도 망월사는 인적 없이 고요하다. 전각 앞마당에는 초여름 오후의 농축된 햇빛만 가득하다. 아마 나는 이 적적함을 찾아서 다시 이 절에 온 것이리라. 낙가보전洛迦寶殿 앞에 놓인 작은 유리 상자 안에 소원을 적은 양초 몇 개가 타고 있다. 그중 두 자루에 불이 꺼져 있다. 아직 타야 할 부분이 반 너머 남아 있다. (나중에 산을 내려오면서 불을 붙여 주고 오지 않은 걸 많이 후회했다. 다음 번에 왔을 때 또 그런 초가 있다면 꼭 붙여 주어야겠다.) 영산전에 올라갔다. 영산전은 이 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불전이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通天門’을 지나 좁고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연봉이 장관이다. 그 너머로 보이는 세속의 마을들이 아득하고 흐릿하다. 가파른 절벽 바위에 굴을 파고 조성한 문수굴을 구경한다. 굴 안은 시원하다. 요사채 앞마당에서 스님 한 분이 빨래인지 무언가를 널고 있다. 다시 낙가보전 앞을 거쳐 범종루를 지나 산을 내려간다. 도중에 약수터가 있는 쉼터에서 김밥으로 뒤늦은 점심 요기를 했다. 핸드폰을 보려고 주머니를 뒤적이는데 안경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길을 나설 때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 돋보기다. 5년 넘게 쓰던 것이라 낡은 것이긴 해도 이게 없으면 작은 글자는 읽지를 못한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절 경내에서 안경을 꺼낸 것은 양초를 밝히려고 아이들 이름을 쓸 때와 핸드폰에 몇 자 메모를 하려고 했을 때뿐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뚜렷하지 않았다. 이미 20여 분쯤 내려온 지점이라 다시 절로 올라가서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김밥을 다 먹은 후 망설이다가 그대로 하산을 계속했다. ‘세상을 안경 낀 눈으로 보지 말고 네 눈으로 보라’, ‘마음의 눈으로 보라’며 안경을 절에 놔두고 가라는 부처님의 뜻인지, 아니면 불경 하나 읽은 적 없고 불상의 종류도 구별하지 못하는 나를 나무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꿈을 꾸었다. 두 번이나 꾸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꿈을 꾼다. 매번 아침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이다. 대부분 좋지 않은 꿈이다. 아니 전부 그렇다. 차를 놓치고, 길을 잃고, 물건을 분실하여 허둥대다가 깨는 꿈이다. 잠을 깨는 즉시는 기억이 나지만 잠시 지나면 잊어버리는 그런 꿈이다. 꿈을 꾸지 않으려고 아예 대여섯 시쯤 잠이 깨면 다시 자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또 그런 꿈을 꾸는 날의 반복이다. 오늘 아침 꿈도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본의 어느 유원지인지 관광지 같은 곳을 한참 돌아다니다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지갑은 어디선지 잃어버렸고 휴대전화는 먹통이었다. 그날은 귀국해야 하는 날이라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챙겨 나와야 한다. 버스를 타려는데 줄이 장사진이다. 줄 꽁무니에 서서 앞에 서 있는 젊은이에게 사정을 한다. 오늘 출국을 해야 하는데 빨리 숙소에 가서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가야 한다. 내가 그 젊은이에게 무얼 도와달라는 지도 분명치 않은데, 아무튼 그 젊은이는 그냥 내 말을 듣고만 있다. 그와 일행인 듯한 여자(2명)가 옆에 서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킬킬거리며 웃고 있다. 나는 남자에게 계속 애원을 한다. “나는 oo회사 상무예요”하면서(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애걸을 하다가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7시 15분이다.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그대로 누워 있다가 다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아까 꿈의 연속인지 비슷한 꿈을 또 꾸었다. 귀국하려고 숙소를 나왔는데 휴대전화도 없고 지갑도 없는 것을 알았다. 길은 체증이 심했다. 도로 반대편으로 가서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이미 승객이 타고 있었다). 내가 빨리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말하며 태워달라고 사정을 하자 기사가 승객과 상의하더니 그러라고 했다. 운전사는 4만 원(?)을 달라고 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휴대전화와 지갑을 찾았는데 지갑에 신용카드가 없었다. 숙소 관리인에게 말하니 신고하지 말라고 한다. 아마 가져간 사람이 조폭일 거란다. 그러다가 잠이 깼다. 오늘은 꿈을 깨자마자 자동기술 하듯이 메모지에 적어 놓았다. 그래서 그걸 보고 내용을 적을 수 있었다. 도대체 이 무슨 해괴한 꿈인지. 꿈을 깨고 한참 있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꿈인 게 얼마나 다행인가. 일주일에도 두세 번씩 이런 사태가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어찌 견디겠는가, 꿈이어서 다행이지. 살면서 끔찍한 일을 당한 사람들은 ‘이게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절규한다. 또 꿈에서 큰 횡재를 한 (이를테면 복권에 당첨된다든가, 시험에 합격한다든가 등) 사람은 ‘이게 현실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아쉬워한다. 누구는 아! 꿈이었으면 하고, 또 누구는 아! 꿈이었구나! 한다. 아무튼 ‘팔 선녀를 만나는' 꿈도 아니고 '복사꽃 만발한 낙원을 본’ 꿈 도 아닌 이런 찌질하고 잔망스러운 ‘개 꿈’은 이제 좀 그만 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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