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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Jul 28. 2023

이제 와 소설을 써 보겠다고? 2

아빠, 소설은 언제 나와요?

소설을 써 보겠다고 선포(?)한 지 넉 달이 다 되어가건만 아무런 기미가 없자 아이들이 “아빠, 소설은 언제쯤 나와요?”하고 묻는다. 깊은 생각 없이 덜컥 각오를 내비치고, 그게 올가미가 되어 한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는데(그런 압박감을 노린 것인지도 모른다), 독촉을 받고 보니 더 초조해진다. 물론 그동안 손발 묶어 놓고 아무 구상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목표를 단편소설로 잡고 그에 걸맞은 소재를 이리저리 궁리해 가며 노트에 메모도 몇 장 해 놓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 가운데 갈고닦으면 반짝반짝 빛이 날 만한 내용이 없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고, 가까운 지인 누군가의 사례를 떠올리고 거기에 살을 보태면 뭔가 이야깃거리가 나올 것 같은 소재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단발적인 사건만 불쑥 솟았을 뿐 그 이상으로 얼개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몇 년 전 밥벌이에서 해방된 후 한 동안 시내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했었는데, 그때 거의 매일 만나는 노인 한 분이 있었다. 70대 중반쯤 돼 보이는 학자풍의 풍채(?)가 좋은 분이었다.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거나 대학 교수직에서 은퇴했을 성싶은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분이었다. 내가 도서관에 도착해 보면 늘 자료실의 언제나 앉는 그 좌석에 앉아 ‘족보’나 어떤 책 한 권을 펼쳐 놓고 있었는데 책만 펼쳐져 있지 시선은 창밖에 두고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인 경우가 많았다. 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자료실로 와서 같은 모습으로 오후 시간을 보냈다. 나는 오후 서, 너 시쯤이면 도서관을 나왔었는데 그때까지도 그분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분 이야기를 상상해서 써보려고 했다. ‘오랫동안 치매를 앓던 부인과 얼마 전 사별을 했다. 부인과는 초등학교 친구로 만난 사이였다. 노인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옛 추억에 잠겨 있다···’그런 상상을 해보며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한편을 써보고 싶었다. 수채화처럼 맑고 청초한···.

또 하나는, 우연히 전철에서 편지를 줍는다는 상상에서 나온 이야기(이 얼마나 흔해빠진 이야기인가!). 신원을 확인할 아무런 단서가 없는 편지는 ‘참회록’ 비슷하다. 아마도 나이가 많이 든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쓴 편지 같다. 아버지가 지나온 평생에서 잘못한 일들을 열거하며 아들과 가족에게 용서를 비는 내용이다. 이 사람은 젊어서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다가 이제 병들고 갈 곳이 없어···뭐 이런 식의 상상이다. 그러니까 잘못된 선택으로 비참한 말년을 보내는 어느 노인 이야기라고 할까. 마지막 하나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1961년 봄에 서울로 이사를 온 우리는(나는 그전 해에 혼자 ‘유학’을 왔지만) 동숭동 산꼭대기 방 2개짜리 문간방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나와 동생을 종로 3가의 한 제과점으로 데리고 갔다. 피카디리 극장 바로 옆이었다. 그 제과점은 어머니가 인수한 가게라고 했다. 아니 시골 촌부에 지나지 않던 어머니가 무슨 돈이 있어 (또 무슨 경험이 있어) 서울 중심가에 제과점을 차린다는 말인가. 그때만 해도 제과점이란 여간 고급한 상점이 아니었다. 철이 없던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알 턱이 없지만) 마냥 좋아했다. 가게 안의 유리 진열장과 탁자를 만져보며 ‘야, 이게 우리 가게다’라며 흥분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 집으로 빵이 잔뜩 들어 있는 상자들이 밀어닥쳤는데 제과점에서 폐기 처분한 빵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잔금을 지불하지 못해 가게는 다시 넘어갔고 남은 빵이 우리 집으로 보내진 것이었다. 몇 날 며칠을 두고 그 빵을 물리도록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지금도 그 전말을 알지 못한다. 어머니는 그때 무슨 계획으로 그 제과점을 인수하려고 했는지? 종로 3가만 가면 그때 일이 생각난다. 그 사건을 소설로 써보면 어떨까?(전말을 상상하여). 이런 것들 말고도 내가 자주 꾸는 황당한 꿈 이야기를 환상적으로(카프카의 소설처럼) 엮어보는 것은 어떨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봤는데 이건 이미 어느 소설에서 나온 이야기 같고, 저건 너무 비현실적이거나 유치하고, 또 이건 너무 사적인 이야기이고···. 그렇게 소득 없이 시간만 보내는 나날이었다.     



옛날부터 내가 소설 쓰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 알고 있는 친구 하나가 책 한 권을 소개해 주었다. 미국 소설가인 조지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란 책이다. 시러큐스 대학 문예창작 교수인 저자가 학생(젊은 작가 몇 사람)들에게 수업한 내용을 쓴 책인데, 작가를 위한 책이기도 하고 독자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작가(지망생)에게는 실제 작품의 분석을 통해 좋은 소설이 갖추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낱낱이 풀어서 보여줌으로써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실제적인 훈련이 되고, 독자에게는 읽는 방식을 공부하게 하는 책이다. 대상으로 삼은 소설은 19세기 러시아 단편소설 7편인데, 이 짧은 소설들을 이렇게 치밀하고 깊이 있게 읽을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600쪽이 넘는 책에서 대상으로 삼은 7편 소설의 본문들과 작품 분석을 빼고도 상당한 분량이 일종의 ‘소설 작법’으로 읽힐 만한 것들이다. 물론 작가는 이 책이 ‘글쓰기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이 제시한 방식은 어디까지나 ‘지금까지(앞으로 어떤 식으로 바뀔지 모른다)’ ‘저자 자신의 경험’에 따라 해 온 방법일 뿐이며, 결국은 각자가 깨우쳐야 할 일이라고 했다(당연한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 제시된 여러 ‘비법’들은 (나 같은 초보 지망생에게) 참고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중 몇 대목을 적어본다.       




‘단편의 암묵적인 약속 가운데 하나는 짧기 때문에 그 안에 낭비가 없다는 것이다. 그 안의 모든 것은 이유가 있어서 거기 있다. 설사 짧은 도로 묘사라 해도. 아무런 이유 없이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하지 마라. 어떤 일이 일어나게 했으면 그것이 중요해지게 하라.’      


‘초고는 좋을 필요가 없다. 그냥 있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퇴고할 수 있도록.

당신에게는 이야기를 시작할 아이디어가 필요하지 않다. 그냥 하나의 문장이 필요할 뿐이다. 그 문장은 어디서 오나? 어디에서든. 특별할 필요도 없다. 당신이 계속 반응하면서 시간이 흐르는 동안 특별한 문장이 될 것이다. 그 문장에 반응하고 이어 평범함이나 너저분함 가운데 일부를 벗겨내기를 반복하면서 문장을 바꾸는 것이 글쓰기다. 그게 글쓰기의 전부이며 또는 전부이어야 한다.’     


‘작품을 발표하게 되는 작가와 그렇지 못한 작가를 구분하는 두 가지

1) 기꺼이 수정하려 하는가.

2) 인과 관계 만들기를 얼마나 배웠는가(인과성이야말로 이야기의 전부다).‘     




이상은 책에 제시된 내용의 극히 일부로 이 밖에도 구조, 확장, 구체성 등 여러가지 요소가 나오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더 이상 고칠 게 없을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라’는 것과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이 없게 하라’>로 요약될 것 같다.       

자, 이제 내가 할 일은 

1) 하나의 문장을 만든다. 그게  시작이라고 했으니까. 

‘오늘도 그 신사는 자료실 창가 자리에 앉아있었다’ 또는 

‘하필 그 자리가 비었을까. 무슨 서류 봉투 같은 것이 그곳에 놓여있었다’ 

아니면

‘몇 날 며칠 빵을 먹었더니 이제 빵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등등.

2) 사건의 인과 관계를 명심하며 문장을 이어나가 일단 초고를 만든다.

3) 초고를 읽어 보고 고치고 다시 고치고···. 더 이상 고칠 것이 없을 때까지 반복한다.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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