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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Oct 07. 2023

아들의 가을

내게도 애인이 생겼어요

추석 연휴에 집에 온 막내아들이 갑자기 폭탄선언을 하겠다며 느닷없이 “내게도 애인이 생겼어요” 하며 들뜬 목소리를 냈다. 점심 식사를 막 끝내고 식기들을 정리하느라 다소 어수선한 시간이었다. 아마 적당한 찬스를 보고 있다가 ‘이때다’ 하고 급습한 것 같았다. 순간 식구들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쟤가 무슨 말을 한 거야?’ 하는 표정들이었다. 제 딴에도 쑥스러웠던지 춤추듯 거실을 왔다 가며 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했다. 곧이어 누나들이 환호(?)를 터뜨렸다. 나와 아내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그저 멍할 뿐이었다. 이어서 식구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언제부터야?” “어떻게 만났어?” “몇 살이야?” 등등. 아들 말로는 회사 동료 직원이 소개를 했고, 나이는 저보다 두 살이 많으며, 결혼한 언니가 있다고 했다. 소개받은 건 한 달쯤 전인데 두 번 만났으며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어서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고향은 어디라는 말이 이어졌다. 아마 소개를 받고 한동안 망설이다가 만날 결심을 한 것 같은데 두 번을 만났다는 걸 보니 첫인상이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나 (특히) 아내는 뭔가 ‘애매한’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요즘 남자들의 결혼 평균 나이로 보면 아들은 아직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두 살 많은 여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연애 경험이 없는(없는 걸로 보이는) 아들은 꼭 결혼이라는 걸 염두에 둔 건 아닌 것 같지만 상대방은 생각이 다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상대방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사귀는 게 순서가 아닐까?, ‘순진한’ 아들이 첫 연애의 달콤함에 한 면만을 보고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같은 것이다. 그날 저녁 아내가 아들과 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도중 아내는 아들에게 이런 우려를 전하며 여자 친구에 대한 몇 가지 추가 정보를 물어보았던 것 같은데, 이걸 아들은 ‘조건’ 같은 것을 따지는 분위기로 받아들였던지 반발심이 발동한 듯 격한 반응을 보인 모양이었고, 아내는 예상치 않은 아들의 반응에 당황한 것 같았다. 아들 입장에서는 이제 두 번 만난 사람을 마치 결혼 대상자로 정해진 듯 너무 앞서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들은 다음날 제 자취방으로 돌아갔는데 올 때와 달리 기분이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그날 밤늦게 딸들과 아들의 ‘연애’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딸들의 의견은 대체로 이랬다. 엄마 아빠는 아들이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저희들끼리 대화를 해보면 겉보기와 달리 신중하고 속이 깊다. 아들은 식구들이 모인 떠들썩한 자리에서 지나가듯 가볍게 자신의 연애 사실을 토로함으로써 심각한 분위기를 피하려고 ‘고백’ 타이밍까지 미리 ‘계산한’ 것으로 보이는데, 엄마 아빠가 너무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아들의 그런 고백은 얼마나 ‘건강한가!’. 부모 입장에서의 엄마 아빠의 생각은 이해하지만 그런 태도가 아들을 위축시켜 앞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 사태를 만들면 안 된다. 아들이 지금 만나는 사람과 결혼까지 가든 아니든 관계없이 결혼 전 연애 경험은 아들에게 바람직한 것이니 응원해 주어야 한다. 아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가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만 강조하고 지켜보는 게 좋겠다···. 이에 대해 아내와 나는 철없는 시절의 풋사랑이 아닌 바에야 실제적인 부분도 고려해 가면서 사귀는 게 좋겠다는 게 부모의 마음인지라 그런 염려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여전히 개운치 않은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그리고는 딸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니터링’을 하도록 당부했다.       



나는 연애 경험이 없다. 나는 꽤나 늦은 나이에 결혼했는데, 지금 기준으로 해도 만혼晩婚이었다. 대학 때나 직장에서 연애할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친구나 동생처럼 친하게 지낸 후배나 동료도 제법 있었다. 그러나 젊은 시절 나는 이상한 ‘철칙’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집단, 예를 들어 같은 동아리, 같은 작장 안에서의 연애(특히 결혼)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주변에는 학창 시절 친구 사이였다가, 또는 회사 동료로서 사내 커플로 발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일한 집단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유사한 사회적 경험을 하기 때문에 모든 게 다 노출된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가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급여는 얼마나 받는지, 어떤 상사, 어떤 직원과 다툼을 벌였고, 어떤 추태를 부렸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과 살고 싶지 않았다. 학교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나만 알고 싶은, 알리고 싶지 않은 이러저러한 ‘비밀들’을 알고 있는 것이 싫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 이런 생각들이 꼭 옳았던가 하는 회의가 들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이런 자연스러운 기회를 배제하고 나니 연애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란 결국 결혼을 전제로 한 ‘중매’ 거나 누군가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그건 결국 ‘조건’이 갖추어져야 성사되는 일인데 내 경우는 그 조건이라는 게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집도 가난하고, 겨우 학교를 마치고 직장이라고 들어갔지만 벌어 놓은 것도 없고, 무엇보다 ‘홀어머니에 장남’이라는 조건이 대상 폭을 좁게 만들었다. 게다가 태어난 곳도 완고하고 보수적인 유학의 고장이라 이것저것 넘어야 할 ‘허들’이 있었다. 그런 조건이니 쉽게 성사가 되겠는가. 당시로는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에 가까스로 지금의 아내와 중매로 만났다. 물론 당시는 지금보다는 중매결혼의 비율이 높긴 했다. 그렇지만 나와 동년배의 친구들 중에도 반 넘어가 연애결혼이다. 아내나 아이들이 나를 ‘빵점짜리’ 남편이라고 하는데 스스로도 생각해도 그렇다. 성격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이는 연애 경험의 부재에서도 연유하는 것 같다. TV 프로그램들을 보면 중장년 남자들이 ‘사랑 표현’에 쑥스러워하는 것을 자주 본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 표현하는 데 서툴다’고 한다. 그 시대의 남자들이 자라온 환경이나 사회적 관습이 그렇기도 했지만 연애 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것도 요인의 한 가지일 것이다. 비혼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세태에 아들의 연애를 응원한다. 그 연애가 꼭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한 인간으로서의 성숙과, 앞으로의 결혼 생활(아들이 비혼주의자는 아니니 결혼을 전제로 하고)에 큰 경험으로 작용하게 될 테니 말이다. (왜 그런 말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데 이 가을 아들의 연애를 축하한다. 아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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