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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Aug 25. 2023

관심사가 있는 학생

전반적으로 미국명문보딩스쿨 학생들은 다들 무언가 하나에, 또는 여러 가지에 미치도록 관심이 많다. 밀원에 관심이 많아 어릴 때부터 벌집을 키우는 학생, 춤에 열정이 있어서 힙합 댄스 학원에서 클래스를 기획하는 학생, 토론을 좋아해서 세계 토론 챔피언이 되는 학생 등이 있다. 이런 학생들은 특정 분야에 깊은 관심이 있고, 그 관심에 빠져들다 보니 그 지식이 굉장히 전문적인 수준까지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디어필드에서 만난 내 친구 한 명은 미술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도서관에서 아무도 빌려 읽지 않는 고대 문양들에 관한 두꺼운 서적들을 빌려 읽는다. 자기 방을 갤러리처럼 꾸미고, 학교 패션 매거진의 사진사로 활동한다. 아무리 공부가 바빠도 이 관심사는 계속 병행해서 파고든다. 이번 여름에도 유명한 디자이너 밑에서 인턴쉽을 하고 있다. 이처럼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는 학생은 솔직한 열정으로 불타올라서 자발적으로 그 관심사에 대해 계속 배워 나간다.

그럼 관심을 가지는 능력이 특히 미국명문보딩스쿨에서 너무 중요하다. 미국명문보딩스쿨의 큰 과제나 프로젝트가 대부분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방향성이 정해지는 맞춤형 리서치 과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12학년 봄 학기 때 들었던 사회학 수업 ‘아편의 역사'의 최종 프로젝트도 역시 리서치 프로젝트였다. ‘아편의 역사' 수업중 배웠던, 아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를 골라서 조사해야 했다. 또한, 그 주제를 설명하는 매체 (서적, 영화 또는 예술) 한 가지를 골라서 그 매체가 왜 다음 해에 이 수업을 들을 학생들이 꼭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주장이 담긴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 결과물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변론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논문, 뉴욕 타임즈 형식의 책 리뷰, 수필, 예술작품 등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서 제출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의 리서치 주제부터 매체, 결과물까지 전부 학생의 관심사를 따라가게 되어 있었다.

나는 미국 사진작가 난 골딘 (Nan Goldin) 의 시위운동에 대해 조사했다. 골딘은 새클러 집안 (the Sackler family)이 예술계에서 쥐고 있는 영향력을 무너뜨리려고 세계 최고의 미술관들 (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 테이트, 루브르 등등) 에서 일명 “죽음시위”를 여러 차례 예술적으로 시전했다. 흔히 미국의 전염병 (epidemic)으로 불리우는 아편성분 마약 확산의 원흉은 새클러 집안이 퍼듀 파마 (Purdue Pharma) 라는 큰 제약회사를 만들면서 불붙었다. 퍼듀 파마는 고용량 아편성분의 진통제를 통증을 호소하는 일반 미국인들에게 대량 생산, 배포했다. 새클러 집안의 수장 아서 새클러 (Arthur Sackler) 는 디자인적 감각을 이용해 이 약들을 미국의 수많은 소비자들에게 마케팅했다. 아편성분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잘 모르는 일반 미국인들은 통증이 생길 때마다 그 약들을 섭취하며 아주 빠르게 아편성분에 중독되어 갔다. 골딘 역시 새클러 가의 전략대로 퍼듀 파마의 진통제를 먹고 아편 성분에 중독된 이후, 훨씬 치사량 높은 아편 성분 마약인 펜타닐 (fentanyl, a dangerous synthetic opioid)을 섭취하게 되었다. 골딘은 펜타닐을 섭취하고 느꼈던 감정을 마치 영원한 암흑같았다 (정확한 표현 조사하기)라고 묘사했다.

회복한 골딘은 새클러 집안의 영향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행동을 개시했다. 새클러 가의 이름 아래 특별 전시관을 만들거나 새클러 가로부터 기부자금을 조달하는 유명 미술관들에서 “죽음시위”를 했다. 아편중독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창업한 비영리단체 P.A.I.N.의 일원들과 함께 미술관 바닥에 붉은 천을 구불구불하게 깐 뒤, 그 ‘피의 강' 위에 죽은 시체들처럼 누웠다. 나머지 일원들은 일반 관객들 사이에 숨어들어 피처럼 붉은 글씨로 쓰여있는 처방전과 아편 약병을 위층에서 던졌다. 골딘은 자신의 예술로 새클러들의 예술에 맞서 싸우는 데 성공했고,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나는 골딘의 삶, 그녀의 반새클러 운동과 그 파장을 조사한 후, 그녀의 아편 일대기가 담긴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라는 다큐멘터리를 내 매체로 선택했다. 그리고 이 매체가 왜 ‘아편의 역사' 수업 커리큘럼에 포함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리서치 아웃라인(논문의 뼈대가 되는 문서)를 썼다.


내 아편의 역사 파이널 리서치 프로젝트를 위한 리서치 아웃라인.


그 이후, 꼬박 이틀 동안 도서관 지하 랩에 틀어박혀서 골딘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집트 관 (한때는 새클러 관이었고 골딘의 시위활동으로 현재 그 이름이 지워진 상태다) 에서 기획한 죽음시위의 소형 모델을 만들었다. 밑의 사진들이 최종 결과물을 보여준다.

이집트 관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레고 블럭을 맞추고, 시위하는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 미니어처 사람들을 배치하고, 밑바닥은 택배 상자와 천, 문양지를 조합해서 만드는 등 여러 작업이 들어갔다.

이 모든 작업을 완성도 있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자체가 이 학생의 관심사에 의해 유기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평소에 시사나 특정 분야 (예를 들어 환경운동, 패션, 테크, 여성인권) 등에 특별한 관심이나 열정이 없고 그에 대한 소식을 나서서 찾아보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리서치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관심 가는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무척 힘든 관문이 되어버린다. 디어필드 아카데미에서 내 친구들 대부분은 많은 양의 숙제를 재 시간에 맞춰 완성도 있게 제출하면서도, 평소 관심 가지는 분야에 대한 새로운 기사가 출판되면 시간 내어서 그걸 꼭 읽는다. 그리고 새로 배운 정보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이어가곤 한다. 이처럼 일명 토끼굴 (rabbit hole)에 빠지는 열정을 가진 학생들이 미국명문보딩스쿨 생활을 잘 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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