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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Aug 25. 2023

사교적인 학생

이 챕터를 쓰기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던 중, 우연히 경제 유투버 ‘슈카’의 **“아싸는 살아남기 힘든 커뮤니티의 나라 미국”** 이란 영상을 봤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해당 영상의 내용을 인용해 이번 장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탑보딩의 학비는 만만치 않다. 내가 다녔던 디어필드 아카데미는 모든 기숙학생에게 연간 $67,520 (대략 팔천 칠백 구십만원) 을 받는다. 이런 엄청난 학비를 4년 동안 대려면 가족의 경제적 능력이 상당해야 한다 (학비 지원을 받는 학생들은 이 챕터에서 잠깐 제외하겠다). 유투버 ‘슈카’는 미국의 저명한 Think Tank 인 Pew Research Center 에서 발췌한 기사의 통계 자료를 그의 영상에 포함시켰다.

해당 기사의 제목은 “Americans with higher education and income are more likely to be involved in community groups”, 번역하면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수입을 버는 미국인들이 커뮤니티 그룹에 참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슈카’가 말하듯이, 여기서 “커뮤니티”를 한국의 게임 커뮤니티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미국의 커뮤니티 그룹은 골프 모임, 작가들 모임, 동네 농구 시합 등의 오프라인에서 정기적으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교류하며 친목을 쌓는 모임을 칭한다. 요약해 보면, 미국의 상위층들은 이런 커뮤니티 그룹에 참여하고 있을 확률이 더 낮은 사회계층의 미국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 것이다.

다음 통계는 위의 기사에서 가져왔다.

“A majority of college graduates are active in at least one community group, while only half of those with a high school education say the same (70% vs. 48%). And two-thirds of those who have a household income of at least $75,000 say they are active in at least one community group, compared with 47% of those with a household income of $30,000 or less.” “대학을 졸업한 미국인은 70%가 적어도 한 개의 커뮤니티 그룹에 참여하지만, 고졸 미국인들은 48% 만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적어도 $75,000 (대략 구천 칠백 칠십 만원) 이상을 버는 미국인들의 3분의 2가 적어도 한 개의 커뮤니티 그룹에 참여하는 반면에, $30,000 (대략 삼천 구백 만원) 이하를 버는 미국인들은 47% 만 그렇다.”

부가 커뮤니티 그룹 활동에 비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다. 좀 전에 언급한 보딩스쿨의 엄청난 학비를 댈 수 있는 미국의 상류층 아이들이라면 자연히 커뮤니티 그룹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문화에서 자라왔을 것이다. 일요일에 가족과 함께 폴로 게임에 가서 부모님이랑 친한 회사 CEO를 만나고, 비싼 식당에 가서 어릴 때부터 친했던 상류층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여름방학에는 케이프 캇 (Cape Cod), 바하마 섬 (The Bahamas), 발리 섬 (Bali) 등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큰 개인 요트를 타고 다른 상류층 커넥션들과 어울리는 그런 문화. 그들은 대화와 만남를 통해 인맥을 만드는 문화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이런 미국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명문보딩스쿨에 가서 꽤 많은 한국 아이들이 ‘아, 여긴 그들만의 리그구나’ 라고 느낄 법하다. 처음에는 나도 그랬다. 학교의 미국 아이들이 서로 처음 본 사이어도 대화를 너무 술술 잘 하는 광경을 보고선 나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날아오고 싶었다. 오랜 친구가 아닌데도 저렇게 대화할 수 있다고? 디어필드의 사교 환경 속에서 나는 갓 걸음마를 뗀 아기 같은데, 네 다섯살 많은 형제자매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쌩쌩 앞서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아서 절망감이 들었던 게 기억난다.

“How are you?” “너 오늘 어때?” 라는 질문을 들은 순간, 나의 뇌가 얼어버렸다. 한국의 “안녕” 과 너무 다르게 느껴지는 인사법이었다. ‘어떻게 답하라는 거지’ 생각하며, 어리벙벙함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내가 오늘 어떻지? 그냥 괜찮은데. 오케이라고만 하면 건성적인 대답으로 들릴 것 같고. 저기 다른 애는 “I’m good” “응 나 괜찮아” 라고 답했는데 그렇게 따라하면 될까? 그 후에는 뭐라고 대화를 이어나가지? 나에게서 뭘 원하는 거지?

지금이야 당시 내 머리를 지나치던 패닉 상태를 웃으며 설명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로 디어필드에서 어떻게 친구들과 친해져야 할지 감이 안 올 정도였다. 많은 미국명문보딩스쿨 학생들이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더라도 언어적 능력이 문화적 차이를 자연스레 극복하게 해 주긴 어렵다. 아무리 몇 년간의 적응기를 가져도 내 문화가 아닌 문화에서 마치 멀쩡한 척, 이 문화의 뉘앙스를 다 아는 척 능청스럽게 “진짜 미국인”처럼 녹아드는 건 꽤 힘들다. 나도 타고난 기질이 꽤 사교적인데, 디어필드의 문화에 처음 적응할 때는 다소 기에 눌려서 전보다 많이 소극적으로 변하기도 했었다. 나보다 훨씬 사교적인 친구들은 덜 고생하는 것 같았지만, 나중에 그들과 얘기해 보니 그들도 문화 차이에 적응하기 꽤나 어려웠다고 말해줬다. 그들은 티가 덜 났을 뿐이다.

한국인과 미국인의 정서 차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크다고 느꼈다. 한국인들은 택시 안에서도, 카페에서도 기사 아저씨의 안부를 묻거나, 옆에 앉아있는 가족에게 일상적인 대화를 거는 일이 드물다. 정식으로 만나고 알게 되기 전까지 한국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라는 선을 꽤나 분명히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탑보딩에서 만난 미국 아이들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정해놓은 선을 정말 스스럼없게 넘나들었다. 첫만남부터 나를 보며 반갑다고 안아주는 친구도 있었다. 그때 너무 놀라서 5초 버퍼링 후에야 내 팔을 올려 그 친구의 어깨를 감싸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게 미국 상류층, 미국명문보딩스쿨의 문화다. 서로 처음 봤어도 마치 십년지기 친구인듯 인사하고. 식당 문이 닫힐 것 같으면 잡아주고. 선생님이 키우는 개의 안부를 물어보고. 같은 테일러 스위프트 팬이면 서로의 최애 테일러 엘범에 관해 열변을 토하고. 서로의 옷 칭찬을 열정적으로 하고. 파티에서도 마찬가지다. 보딩스쿨에는 거의 매달 파티가 있다. 까만 옷 드레스 코드, 흰 옷 드레스 코드, 서부 카우보이 테마, 크리스마스 세미 포멀 댄스, 할로윈 댄스 등등. 춤 추며 이야기하는 파티가 늦은 저녁까지 이어진다. 전부 개성있게 차려입고 친구들과 등판해서 사진찍고, 유행하는 틱톡 댄스를 같이 하며 원래 별로 친하지 않았던 학생들과 친해지고, 처음 보는 학생들과 목놓아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사교적이지 않은 문화에서 자라온 한국 아이들이 미국의 이런 대면적인 친목 도모의 문화에서 적응을 쉽게 못 하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명문보딩스쿨에 자녀를 보내시려는 부모님들은 이 문화를 염두에 두셔야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예외도 있다. 원래부터 성격이 워낙 사교적이고 유쾌해서 경비아저씨께도 강아지 안부를 묻고, 딱히 살 것도 없는데 문구점에 들러 아주머니께 일상적인 코멘트를 생활적으로 던지며, 발이 넓고 만나는 사람마다 금방금방 친해지는, 그런 사회적 기술이 워낙 좋은 한국 학생들이 있기도 하다. 그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미국명문보딩스쿨의 사교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적을 것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미국은 인맥으로 돌아가고, 망했다가도 인맥으로 살아나는 나라다. 그러니 사교적이지 않으면 미국 생존이 힘들다. 다행히 사교성이란 건 선천적으로 부족하더라도 후천적 노력을 통해, 더 많은 부류의 사람과 더 자주 부딪혀 볼 수록 발달되고 능숙하게 되어 간다. 그러니 원래 성격이 별로 사교적인 편이 아니라도 주변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걱정을 그리 많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학업보다도 더 잘 준비해 가야 하는 것이 바로 사교적 스킬이고,  계속 그 스킬은 계속 발전하고 연마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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