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원에서 청송교도소까지

병원 근무

by 지와 사랑

"제가 징역 산 걸로 따지면 교정계 역사입니다. 소년원에서 청송까지 보호감호도 살았잖아요." 60대 후반의 입담 좋은 수용자 K는 대퇴부 골절로 외부병원에 입원하였으나 간도 안 좋고 대장에도 이상이 있어 어디서부터 치료를 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몸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교도관에게 자신의 화려한 교도소 경력 얘기들을 늘어놓는다.


어려서부터 비행소년으로 소년원에 들어갔으며 퇴원 후 범죄를 지질러 소년교도소 입소, 출소 후 또 범죄를 저질러 성인교도소에 수용되었고 출소 후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범죄를 저질렀고 범죄 횟수가 많아짐에 따라 보호감호형도 선고받았고 연고지 교도소에 수용될 때마다 교도관들로부터 "또 들어왔어?"라는 말을 듣고도 천연덕스럽게 너스레를 떨던 K가 출소 후 어쩐 일인지 5년여 동안 교도소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퇴직한 직원들이 교회에서 보았다는 소문도 들렸고 초등학교 근처에서 붕어빵 장사를 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런 그가 병원근무를 하는 내 앞에 몸 구석구석이 망가진 상태로 누워 있었다. 처음 병실에 들어서면서 낯익은 이름이다 싶어 얼굴을 쳐다보니 K였다. 처음에는 아무 말이 없던 그에게 나도 말을 붙이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입이 근질근질했는지 말을 붙여 오기 시작했다. "다시는 안 들어오려고 했는데 창피해 죽겠시유"라고 말하는 그에게 농담반 진담반조로 "창피한 줄은 알아요?"라고 대꾸하니 멋쩍게 웃으며 코로나19 핑계를 댄다.

붕어빵 장사 하면서 마음 잡고 잘 살고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장사가 안되어 망했다며 붕어빵 장사할 때 같은 교회에 다니던 퇴직교도관이 동료들을 데리고 와서 붕어빵을 사 먹었다는 얘기를 하며 보람 있는 일도 있었다며 근처에서 놀던 어린 학생에게 붕어빵을 공짜로 준 얘기를 하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 생각이 나 붕어빵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하여 가깝게 지냈는데 어느 날 아이가 군대 간다며 인사하러 왔다는.......

"자녀는 없냐?"라고 물어보니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내가 가출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는 얘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평생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가족도 없고 온몸에 병만 남아 마땅히 치료를 받지 못할 처지가 되자 교도소를 선택한 것 같았다. 교도소에 들어오면 약도 주고 심하게 아프면 병원 치료도 받게 해 주니 그것을 잘 아는 K가 교도소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K의 간병인 남자가 넉살 좋은 K와 친해졌는지 "할 일 없으면 간병인이라도 하지 교도소에 들어가냐?"며 농담을 하여 내가 50대 초반의 간병인에게 "자격증을 따야 하지 않냐?"라고 물어보자 협회에 가입하여 며칠 교육을 받으면 된다며 하루에 13만 원 정도 받을 수 있고 자신은 20일 정도만 일하고 10일은 쉰다며 노숙자들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범죄를 저지른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K를 쳐다본다. 남미 쪽에 이민을 가서 결혼도 하고 20여 년간 살다가 한국에 돌아왔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어 간병인 직업을 택하게 되었다며 고등학생 딸을 가르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K를 보며 소년원에서 청송까지 평생 교도소를 들락거린 K와 같은 사람들 중 젊었을 때 잘 나가던 수용자 N이 떠올랐다. D교도소 미지정 사동에 수용되어 있던 N은 D교도소에서 소문난 문제수였고 나이 많은 직원들은 그의 경력 때문인지 어느 정도 대우를 해주었다. 미지정사동에 혼거수용되어 있던 N이 운동시간에 조용히 내게 다가와 쪽팔리니 다른 사림들에게 얘기하지 말라며 독거실로 보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수용자들 속에서도 어느 정도 위치에 있어 대접을 받고 살았는데 세월이 흘러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젊은 수용자들과 말을 섞다 망신만 당하니 그런 부탁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거실사정이 좋지 않아 그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고 N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그럭저럭 견디어내고 있었다.

그를 아는 40대 후반의 수용자들은 N이 젊었을 때는 대단했는데 나이 먹어서 저렇게 되었다며 세월의 무상함을 말하고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7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젊은 수용자 못지않은 체력의 L은 30년 넘게 교도관 생활을 한 직원들에게 농담조로 "내가 징역을 40년 넘게 산 사람이오"라며 자신이 고참이라고 말한다.

무기수가 아님에도 소년원에서 소년교도소, 성인교도소에서 청송교도소 그리고 보호감호까지 40년을 넘게 대한민국 교도소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는 K와 N을 보며 악한 사림들은 아닌 것 같은데 어쩌다 저런 길을 걷게 되었는지 한숨짓게 한다.

선배 교도관들이 교도소형 인간이라고 말하는 수용자들이 K와 N 같은 수용자들이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교도소에 들어왔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도소 생활을 누구보다도 모범적으로 잘하서 출소하면 잘 살 거라는 얘기를 듣는데 출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도소에 들어오는 사람들이다. 소년원에서 흉악범들과 누범자들이 수용되는 청송(경북북부2)교도소를 거쳐 생의 마지막 순간을 교도소에서 맞이하게 될 K를 보며 만감이 교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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